“군 조직, 성추행 사건 가해자면서 심판자 역할 자처”

2021.06.18 16:08 입력 2021.06.18 21:12 수정 김은성 기자

8년 전 비슷한 ‘오 대위 사건’ 대리한 강석민 변호사

2013년 상관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극단적 선택을 한 육군 오모 대위 측을 변호했던 군 법무관 출신의 강석민 변호사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가해자 개인 문제만 부각할 것”
“국방부 검찰단에 수사권 주는 건
한배 탄 친인척끼리 수사하는 격”
특검 등 수사권 민간 이양 제시

“국방부 검찰단이 향후 가해자들에 대한 수사 결과를 계속 발표하면서 개인 문제를 부각시킬 것으로 전망됩니다. 군 내 구조적 문제를 면밀히 밝혀내는 진상규명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 법무관 출신인 강석민 변호사(52)는 국방부 검찰단이 공군 이모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진행하는 수사에 대해 이 같은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17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번 사건의 본질은 조직 내 폭력으로 ‘사회적 타살’을 당한 것인데, 가해자인 조직이 수사를 하며 ‘심판자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 겉으로 드러난 (이 중사의) 피해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수준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상관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지만 되레 조직적인 회유에 시달린 이 중사는 8년 전 성추행에 이은 집단 괴롭힘 끝에 목숨을 끊은 육군 오모 대위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 2013년 당시 오 대위 유족을 변호했던 강 변호사는 “이 중사 사건에서 명백한 증거가 있고 가해자가 모든 혐의를 인정한 성추행 부분은 군에서 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촘촘한 보고 체계를 가진 군대에서 어떻게 보고가 누락되고 조직적으로 은폐됐는지에 대한 부분은 특검을 도입해서 밝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국방부 검찰단 수사는 같은 배를 탄 친인척끼리 수사하는 것과 같아서 조직 내 환부를 제대로 드러내기 힘든 구조”라며 “국회는 이번 사건에서 군내 모든 보고체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를 군에 요청하고, (이 중사) 유족들은 국방부를 상대로 지금껏 발표되지 않은 지휘체계 문제와 관련된 국방부의 감사 결과 공개를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군내 성고충상담관 등 피해자 보호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로 해당 직역을 맡은 사람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꼽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군내 구성원들은 피해자를 ‘조직에 해를 끼치는 가해자’로 본다”면서 “군 밑에서 해마다 평가를 받고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의 민간인이 피해자를 위해 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군 사법제도 개혁의 우선순위로 군 수사권의 민간 이양을 제시했다. 그는 “중대한 군 관련 사고는 초동수사에서 왜곡이 발생하고 책임 소재가 은폐돼 ‘2차 피해’로 이어진다”면서 “군 수사기관을 지휘권의 그늘에서 분리할 수 있게 민간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연장선상에서 부실한 군 급식이나 질 낮은 의료 서비스도 민간으로의 개방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과 대등한 입장에서 군을 지켜보고 협력하는 민간 조직의 참여가 더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군을 두고 모두들 한 번 갔다가 나오면 모두 잊어버린다는 의미를 함축해 ‘변소’라고 부른다. 여론이 한창 시끄러울 때 가해자를 처벌하고 실효성 없는 제도를 쏟아낸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며 “사법·인사·행정 등 모든 걸 다 거느리면서 사건 은폐의 유혹에 노출돼 있는 지휘권을, 일부라도 민간에 이양할 수 있도록 책임있는 기관들이 끝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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