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지난 13일 사퇴한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그간 윤석열 대통령과 민감한 관계에 있던 여당 핵심 인사들이 ‘정리’된 것은 모두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 등 사유로 자리를 비운 시점이었다. 주로 ‘윤심’(윤 대통령 의중)과 충돌하거나 대통령 국정 지지율 회복을 위해 퇴진 필요성이 언급된 인사가 대상이었다.
김 대표는 13일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국민의힘의 총선 승리는 너무나 절박한 역사와 시대의 명령이기에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反求諸己·어떤 일의 결과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의 심정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며 대표직을 사퇴했다. 그 전날인 12일에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나. 총선 승리가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래서 제가 가진 마지막을 내려 놓는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3박5일 일정으로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했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출국 전에 김 대표에게 ‘대표직은 유지하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불출마·험지 출마 요구에 호응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대표직은 사퇴해도 불출마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막다른 길에 몰린 김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표직 사퇴문을 올렸고 불출마는 언급하지 않았다.
올해 3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나경원 전 의원을 ‘축출’한 사건도 윤 대통령의 부재 중 본격화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14일~21일 6박8일 일정으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국빈 방문 및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포럼) 참석차 순방을 떠났다. 나 전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채 저울질하던 시기였다. 윤 대통령은 출국 전날인 13일 나 전 의원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각각 해임했다.
나 전 의원이 그에 앞서 사의를 표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굳이 대통령이 잘라내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이후 그달 17일 나 전 의원이 “해임이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친윤석열계인 박수영·배현진·유상범·이용 의원 등 여당 초선의원 48명은 같은날 “말로는 대통령을 위한다면서 대통령을 무능한 리더라고 모욕하는 건 묵과할 수 없는 위선이며 대한민국에서 추방돼야 할 정치적 사기행위”라며 나 전 의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결국 나 전 의원은 그달 25일 당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그 다음날인 26일 정진석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당 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점심을 함께 했다.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낸 과정에도 윤 대통령은 ‘부재중’이었다. 당 중앙윤리위원회가 이 전 대표에 대해 그해 7월8일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를 의결한 이후 같은달 31일 사상 최초의 여당 대표 공백에 따른 비대위 전환 논의가 본격화됐다.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그날 “직무대행으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겠다”고 밝히면서다. 8월5일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원회는 비대위 전환을 결정했고 9일 전국위원회와 의원총회에 따라 주호영 비대위 출범을 공식화했다. 윤 대통령은 그달 1일~5일 여름휴가였다.
윤리위는 두 달 뒤인 9월18일 또 한 번 이 전 대표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과 윤핵관 등을 비판하며 사용한 “양두구육” “신군부” 등 표현을 문제 삼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으로 출국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