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같기도 와인 같기도 한 막걸리··· 20대 사장의 ‘전통주 혁신’ 선보이는 DOK브루어리

2020.02.28 16:41 입력 2020.03.05 14:46 수정
글·사진 김형규 기자

요리를 배운 20대 사장이 만든 막걸리는 마시는 방법에 따라 와인 같기도 하고 맥주 같은 맛도 낸다.

요리를 배운 20대 사장이 만든 막걸리는 마시는 방법에 따라 와인 같기도 하고 맥주 같은 맛도 낸다.

평범한 플라스틱 막걸리통에 담긴 술 색깔은 짙은 핑크빛이었다. 간결한 선과 색으로 꾸민 라벨은 미니멀한 추상화 같았다. 술 이름은 ‘걍즐겨’. 분명 막걸리라고 했는데… 궁금해서 안 마시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

마시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했다. 병 아래 가라앉은 탁한 섬유질을 섞지 말고 말갛게 뜬 윗물만 먼저 따라 마셔보라고 했다. 옅은 탄산에 매끄러운 목넘김이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는 듯했다. 아랫부분까지 잘 섞어 다시 한 번 들이켜니 이번엔 부드럽고 달달한 게 사이다 같기도 하고 맥주 같기도 했다. 분명 쌀로 만든 술인데, 늘 마시던 익숙한 막걸리의 향과 맛은 희미하게 가려져 있었다. 저만치 떨어진 나무 뒤에 숨어 몰래 미소 지으며 지켜보는 개구쟁이처럼.

히비스커스 꽃잎과 석류즙을 첨가해 개성을 살린 ‘걍즐겨’는 지난해 9월 서울 수유동에 문 연 신생 양조장 ‘DOK 브루어리’의 작품이다. 주세법상 탁주로 분류된 술을 만드는 막걸리 양조장이지만, “고정관념을 깬 캐주얼한 전통주를 만든다”는 소개답게 시장에 내놓은 3종의 술이 전부 발랄하고 재기 넘친다.

카페처럼 꾸민 DOK브루어리

카페처럼 꾸민 DOK브루어리

라임과 레몬, 스리랑카산 홍차(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넣어 만든 ‘뉴트로’는 윗물만 마시면 IPA 맥주 같고, 섞어 마시면 밀크티 느낌이 난다. 은은한 시트러스향과 홍차에서 나온 쌉쌀한 맛이 술의 독특한 풍미를 살린다. 밀가루를 첨가한 막걸리인데 그냥 밀가루가 아니다. 빵 만드는 천연발효종을 넣은 ‘두유노’는 내추럴 와인처럼 다소 거칠지만 계속 다음 잔을 부르는 힘이 있다. 배, 열대과일, 매콤한 향신료 등 다층적인 향도 매력적이다.

하나의 술이 보여주는 여러 얼굴은 보통 막걸리와 확연히 구별되는 특별한 제조법에서 온다. 대표적인 게 IPA 맥주를 만들 때 흔히 쓰는 드라이 호핑(Dry Hopping) 기법의 차용이다. 드라이 호핑은 발효가 끝난 술에 마른 홉을 추가로 넣어 홉이 가진 향미를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전통주의 경우 부재료를 덧술 때 함께 넣어 발효시키기 때문에 부재료가 가진 향과 맛이 발효 과정에서 휘발되는 경우가 많다. 드라이 호핑 하듯 발효가 끝난 술에 꽃이나 과일즙 같은 부재료를 넣어 냉침하면 그 특성이 술에 더 진하게 남는다는 점을 터득한 것이다.

‘걍즐겨’는 미리 만든 밑술에다 멥쌀로 찐 백설기로 1차 덧술을 하고 찹쌀 고두밥으로 2·3차 덧술을 하는 삼양주다. 발효에 열흘 남짓, 드라이 호핑을 거친 저온 숙성에 사나흘을 더해 2주에 걸쳐 술을 완성한다. 전통 누룩에 프렌치 세종(saison) 맥주에 사용하는 효모를 함께 쓴다는 것도 특징이다. ‘걍즐겨’와 ‘뉴트로’는 원주에 물을 타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일반 막걸리와 달리 완성 후 그대로 출시된다. 막걸리치고 높은 8도인데도 세게 느껴지지 않는다.

DOK 브루어리 창업자인 이규민 대표(29)는 대학에서 한식조리를 전공했다. 졸업 후 덴마크 코펜하겐의 유명한 브루펍(brewpub·직접 만든 맥주를 파는 술집)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덴마크를 첫 일터로 택한 건 발효 등 최신 미식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에서 배우고 싶어서였다. 햄버거에 오이김치, 백김치를 곁들이는 등 한식을 응용한 메뉴를 선보이며 잘 적응했지만 정작 그가 관심을 가진 건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맥주를 만드는 그들의 문화였다.

거기서 어깨너머로 배운 맥주 기술에 더해 대학 때 전통주를 빚어본 경험을 살려 귀국 후 양조장을 차렸다. 술독에서 양조장 이름 DOK을 따왔다. 새 술을 만들 때마다 매번 다른 디자이너를 섭외해 함께 시음하고 토론하며 어울리는 라벨을 만들었다. 술을 구입할 때 술맛만큼이나 외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인의 취향을 철저히 따랐다.

서울 수유동 DOK브루어리

서울 수유동 DOK브루어리

펍이 딸린 DOK 브루어리는 카페로 착각하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로 깔끔하고 감각적이다. 전시회 등 문화행사도 종종 열린다. 600㎖ 병에 든 술은 마시고 가면 7000원, 테이크아웃을 하면 5000원을 받는다. 매장에선 원하는 음식을 싸오거나 배달시켜 먹을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dokbrewery)으로 예약하면 1인당 1만원에 시음을 포함한 양조장 견학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지역 특산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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