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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맘!” “엄마 매직!”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열린 ‘도쿄올림픽 대표 선발전’ 여자 400m 결선에서 관중들은 “슈퍼맘”을 외쳤다. 결선 1, 2위를 차지한 선수 모두 어린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 선수였기 때문이다. 1위 쿠아네스 헤이스(29)는 2살 아들 드미트리우스를, 2위 앨리슨 필릭스(36)도 2살 딸 캠린을 안고 트랙에 서서 승리를 만끽했다.

23일 개막한 도쿄올림픽에 다수의 ‘엄마 선수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올림픽 금메달 6개를 보유한 ‘미 육상계 전설’ 필릭스를 비롯해 미 여자축구 대표 간판스타이자 주장인 알렉스 모건(32), 미 여자농구 대표팀 다이애나 타우라시(39) 등 미국에서만 12명의 엄마 선수들이 출전한다.

영국 허들 선수 티파니 포터(33), 러시아 아티스틱수영 선수 스베틀라나 로마시나(32), 자메이카 육상 선수 셸리앤 프레이저프라이스(35) 등 세계 각국의 스타 선수들이 출산 후에도 여전한 기량을 자랑하며 도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대표 선발전’ 여자 400m 결선을 마친 뒤 (오른쪽부터) 1위 쿠아네스 헤이스는 2살 아들 드미트리우스를, 2위 앨리슨 필릭스는 3살 딸 캠린을 데리고 승리를 만끽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대표 선발전’ 여자 400m 결선을 마친 뒤 (오른쪽부터) 1위 쿠아네스 헤이스는 2살 아들 드미트리우스를, 2위 앨리슨 필릭스는 3살 딸 캠린을 데리고 승리를 만끽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들의 도전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직업과 모성애 중 하나를 강요 받아왔다”면서 엄마 선수들의 고군분투를 전했다.

필릭스는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2 런던 올림픽, 2016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 총 6개를 휩쓸며 ‘레전드(전설적) 선수’에 등극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임신과 출산 앞에서 좌절해야만 했다. 필릭스의 스폰서사인 나이키가 ‘임신 기간 후원금 70% 삭감’ 정책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필릭스는 여성 선수들에게 부당하게 책정된 대우에 맞서 싸웠고, 결국 나이키는 임신 기간에도 후원금을 전액 지급하겠다며 항복했다.

그동안 유급 출산 휴가를 누릴 수 없었던 여성 프로 운동 선수들에게 필릭스의 싸움은 이정표가 됐다. 필릭스와 함께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헤이스는 “필릭스가 엄마 선수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싸워준 것에 감사하다”며 존경심을 표했다. 미국 여자 마라톤 대표인 알리핀 툴리아무크(32)도 “스타 선수들이 나서서 업계 관행을 바꾼 덕에 나같은 일반 선수들도 유급 출산휴가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고 WP에 말했다.

출산 이후 다시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는 것도 엄마 선수들에게는 혹독한 도전이다. 육상 여자 100m 역대 2위 기록을 가진 자메이카 금메달리스트 프레이저프라이스 또한 출산 이후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프레이저프라이스는 WP에 “예상치 못한 제왕절개로 회복이 더뎠다”면서 “원래 계획했던 5주 휴가가 아닌, 10주 휴가를 써야만 했다”고 했다. 그는 트렉에 다시 서기까지 요가와 필라테스 등으로 몸을 만들고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가야 했다. 뼈를 깎는 훈련 덕에 프레이저프라이스는 출산 후 2년도 안 돼 2019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육상 1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마미(엄마) 로켓’의 탄생을 알렸다.

때로 엄마 선수들은 육아에 전념하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러시아 아티스틱수영계 전설 로마시나는 지난 4월 국제수영연맹(FINA) 인터뷰에서 “도쿄올림픽 훈련 기간 동안 3살 딸 알렉산드라를 매달 이틀씩밖에 보지 못했다”면서 “마음이 아팠고, 내가 나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젖먹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선수들에게 코로나19 사태는 더 혹독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해외 선수들의 가족 동반 입국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7개월 딸을 키우고 있는 툴리아무크는 “아이와 강제로 떨어져야 하는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면서 “도쿄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고 했다. 다행히 지난 6월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선수 중 젖먹이 자녀를 둔 엄마 선수들은 자녀와 동반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WP는 “1900년 파리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미국 골프 선수 메리 아봇이 엄마 선수로 이름을 올린 이래 많은 엄마들이 올림픽 경기장에 섰지만, 여성 선수들은 커리어가 끝날 때까지 출산을 미룰 것을 강요 받아왔다”면서 “12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엄마가 되는 것’이 여성 운동선수 커리어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윤정 기자 yyj@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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