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즐기던 그 바다는…없다

2023.08.06 21:17 입력 2023.08.06 23:09 수정 손우성 기자

전 세계 ‘이상 기후’로 몸살

폐사한 산호초 한 스쿠버다이버가 5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보인톤 비치 앞바다에서 해수 온도 상승으로 폐사한 산호를 조사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미국 대표 휴양지 플로리다
수온 32도의 ‘목욕물’ 바다 돼
그리스 로도스섬은 산불 대피

“앞으론 북유럽에 몰릴 듯”
전통 명소·관광업계 타격

8대째 미국 플로리다주에 사는 재키 바버는 매년 여름휴가를 동네 해변에서 보냈다. 하지만 올해는 계획을 취소했다. 바닷물이 지나치게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바버는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수온이 32도에 달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플로리다주 사람들은 허리케인과 열대성 폭풍, 심한 뇌우엔 익숙하다”면서도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너무 더워서 해변에 가지 못하겠다’고 말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를 덮친 이상 기후가 전통적인 여름휴가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바다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산은 화염에 휩싸였다. 한편에선 폭우와 홍수로 각종 공연이 잇따라 취소됐다. NYT는 “화재와 홍수, 토네이도와 우박 폭풍에 이르기까지 기후변화가 전 세계 여행자들의 계획을 방해했다”며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여름휴가의 끝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바다는 목욕물처럼 변해버린 수온 탓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유럽 중기예보센터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세계 해수면 평균 온도는 20.96도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고치였던 2016년 3월 20.95도보다 0.01도 높다. 지난달 24일 플로리다주 남부 해수 온도는 38.4도를 찍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이 지중해 대신 북유럽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NYT는 “유럽 남부는 예년과 비교해 약 10%의 관광객을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환경단체인 ‘새로운날씨연구소’ 공동 책임자인 앤드루 심스는 영국 BBC에 “내년 여름부턴 비교적 선선한 북해와 발트해 해변으로 관광객들이 몰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달 18일 거대한 산불이 덮친 그리스 동남부 로도스섬에선 주민과 관광객 1만9000여명이 육로와 해상으로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로도스섬은 특히 영국과 독일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매년 약 250만명이 트레킹과 야영을 즐기기 위해 방문한다.

피난 행렬에 있었던 영국인 사이먼 휘틀리는 BBC에 “우리는 그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을 뿐”이라면서도 “내년 휴가는 (여름이 아닌) 연초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로도스섬을 찾았다가 낭패를 본 관광객들에게 내년 봄 또는 가을에 로도스섬에서 일주일간 무료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조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홍수와 뇌우, 우박도 여름휴가를 떠나려는 사람들을 심란하게 하고 있다. 네덜란드 최대 음악 축제인 어웨이크닝은 최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우박과 번개, 뇌우에 대한 우려로 올해 행사는 취소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명소들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달 폭염에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출입을 제한했고, 프랑스 파리 에펠탑엔 더위를 식히기 위한 대형 분무기와 급수대가 설치됐다. 입장권 판매 방식 또한 온라인 예약 시스템으로 전환해 대기 시간을 줄였다.

관광업계는 울상을 짓고 있다. NYT는 “호텔과 여행사, 서비스 제공 업체는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아솔로에서 숙박업을 하는 피어스 매컬리는 “매년 여름이면 등산객과 자전거 하이킹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며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전체 예약의 4분의 1이 취소됐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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