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서양 카메라 畵法’ 도입했다”

2004.08.18 17:59 입력

광학기구를 이용해 원근법과 입체감을 나타내는 서양의 회화기법인 ‘카메라 옵스큐라’가 조선시대에 이미 도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서양미술의 인물화, 풍경화 등에서 활용된 카메라 옵스큐라가 조선시대 화법에서 사용됐을 것이라는 추정은 제기돼 왔으나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이교수는 먼저 다산의 산문들에 나타난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증언을 예로 들고 있다. 여유당전서에 실린 ‘칠실관화설(漆室觀火說)’은 다산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구체적으로 실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칠실관화’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한자말.

다산은 또 ‘복양 이기양 묘지명’에서 한 화가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유학자 이기양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장면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복양이 일찍이 나의 형(정약전) 집에 칠실파려안(카메라 옵스큐라)을 설치하고 거기에 비친 거꾸로 된 그림자를 따라서 초상화의 초본을 그리게 하였다.”

이교수는 다산이나 이기양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한 시기를 1780년대 중반쯤이라고 밝혔다. 다산이 이기양과 교분을 갖고 서학에 심취할 때로, 북경에 다녀온 다산의 매부 이승훈이나 장인 홍화보 등으로부터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교수는 이와 함께 다산과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 이명기의 초상화에서도 카메라 옵스큐라의 기법을 확인했다. 이명기는 정조의 초상화 제작을 지휘했던 당시 최고의 궁중화가. 현재 전하는 ‘강세황 71세상’ ‘채제공상’ ‘유언호상’ ‘서직수상’(김홍도와 공동작업)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교수는 이 중 유언호 초상화를 카메라 옵스큐라를 적용한 구체적인 사례로 꼽았다. 옷주름의 선명한 입체감, 생동감 있는 눈동자, 투시도법이 활용된 의자·족좌·화문석의 배열 등이 기존 초상화와는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는 게 이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교수가 가장 결정적인 증거로 든 것은 초상화 여백에 써놓은 짧은 글.

“(그림의) 얼굴과 몸의 길이와 폭은 원래 (유언호) 신장의 절반으로 줄어 보인다”라는 내용에서 이명기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 유언호의 실제 키와 그림의 키 배율을 계산해 그렸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다산의 증언과 이명기의 초상화는 조선 후기 화단에 카메라 옵스큐라가 활용됐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이러한 증언과 증거를 구체적으로 남긴 일은 세계과학사나 회화사에서도 소중한 기록”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교수는 오는 25~26일 다산학술문화재단 주최로 강진 다산초당에서 열리는 제4회 다산학술대회에서 이 논문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조운찬기자〉

- 카메라 옵스큐리란 -

‘어둠 상자’라는 뜻의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암실이나 밀폐된 공간에 작은 구멍을 통과해서 들어온 빛이 형상으로 변하는 자연현상을 응용한 광학기구.

서양에서는 이 장치가 사물의 윤곽을 쉽게 그릴 수 있다 해서 화가들 사이에 인물화나 풍경화에 입체감과 투시원근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널리 활용됐다. 풍경화가인 베르나프도 카날레토나나 인물화가인 얀 베르미어 등 17~18세기의 많은 서양화가들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은 이같은 광학기술 등 자연과학을 그림 그리기에 활용한 사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의 카메라는 이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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