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때 보복 두려워 좀 주눅들었다”

2009.10.27 18:18 입력 손제민기자

강상중 도쿄대 교수 대담집서 드러난 ‘DJ의 고백’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인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언론사들의 보복이 예상돼 주눅이 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인 지난 4월7일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가진 재일한국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59)와의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2006년 7월20일 김대중도서관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강상중 도쿄대 교수.

최근 발간된 강 교수의 저서 <반걸음만 앞서가라>(사계절·오근영 옮김)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미디어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강 교수의 질문에 “올바른 언론은 목숨 걸고라도 지키고 존중하지만 옳지 않은 언론에 대해서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며 운을 뗐다. 김 전 대통령은 신문사 탈세조사 당시를 떠올렸다.

“대통령으로 있을 때 어떤 신문사의 탈세 문제를 다루는 어려운 국면에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실을 밝혀내서 공평하게 재판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기 때문에 보복이 예상되었습니다. 이때만은 나도 좀 주눅이 들었지요(웃음).”

김 전 대통령은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지금 여기서 타협하면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비슷한 국면을 만났을 때 그때까지의 정권은 미디어에 굴복하고 말려들었지만 나는 양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단호하게 싸우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아니나다를까 엄청난 반격을 받았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면서 “그러나 재판에 의해 그들의 죄는 폭로되고 유죄가 확정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시장 조사와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1999년 보광그룹 실소유주인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을, 2001년에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을 각각 구속했고, 송필호 중앙일보 사장 등은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대담이 이뤄지는 동안 자택 밖에서 수십명의 보수인사들이 데모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나는 이미 정치에서 은퇴했는데도 감시를 멈추지 않는다. 얼마전 한국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한 전면 참가를 발표했을 때 내가 반대했더니 ‘즉각’이더라. 나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를 간절히 원할 뿐인데 일부 사람들은 나를 신경질적으로 바라보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또 “5월 광주항쟁 뒤에 내가 민중봉기를 배후조종한 것처럼 써제껴 속는 사람도 많이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며 “신문 언론의 영향력은 강력하지만 민주화가 된 후에도 허위 기사를 쓴 데 대해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대담에서 훌륭한 리더십의 덕목으로 △민주주의에 ‘적’은 없다, 다만 라이벌이 있을 뿐 △프랑스혁명보다는 영국의 명예혁명을 △리더는 반걸음만 앞서가라 △결단할 때는 세 번 생각하라 등을 제시했다. 일본에서 활동해온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는 2003년 처음 만난 후 교류를 가진 김 전 대통령을 좋은 리더십의 전형으로 보고 <반걸음만 앞서가라>를 집필했다. 자기계발서인 이 책은 앞서 일본어로 출간됐다. 강 교수는 재일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도쿄대 교수가 됐으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1997), <고민하는 힘>(2009)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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