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거물들 검거된 상황서 노태우 정부 ‘범죄와의 전쟁’ 뒷북”

2012.02.14 21:20 입력 2012.02.14 22:44 수정 글 박주연·사진 박민규 기자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검사 실제 인물 조승식 변호사

1990년 10월 노태우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할 무렵, 부산의 ‘넘버원’이 되고자 하는 ‘나쁜 놈들’의 의리와 배신을 그린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 흥행 중이다. 영화에서 조직폭력배 잡는 ‘강골 검사’로 나오는 조범석(곽도원)은 실존인물 조승식 변호사(60·사진)가 모델이다. 대검 형사부장을 끝으로 2008년 3월, 28년6개월간 근무한 검찰을 떠난 조 변호사는 검사 시절 부임하는 곳마다 현지 폭력조직을 일망타진하면서 조폭 사이에서 ‘해방 이후 최고의 악질’로 불렸다. <범죄와의 전쟁> 윤종빈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여러 번 조 변호사를 찾아 자문을 구했다.

지난 10일 저녁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난 조 변호사는 “거물급 폭력배가 상당수 검거된 상태에서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미 성공단계에 접어든 검찰 수사 실적을 토대로 단기간에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였다는 것이다.

“1980년대 말은 깡패 세상이었어요. 전국 규모의 조직들이 출범했고 국제적 연계를 기도한 조직도 적발됐죠. 호국청년연합회, 화랑신우회, 일송회 등이 득세하고 이강환, 박종석 등 거물 깡패가 일본 야쿠자 조직과 결연의식을 치르는 일까지 있었어요. 1987년 대선 당시 안기부 실·국장급인 대선팀장 엄삼탁은 주요 조직의 두목들을 조종해 우익단체를 결성케 했어요. 노태우 후보의 전주·광주 유세 때 이 건달들을 동원했죠. 노태우 당선 후 이놈들은 ‘우리가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떠들어댔어요. 그러면서 정치권과 결탁해 각종 이권에 개입했죠. 하지만 깡패가 너무 설치면서 통제불능 상태가 되자 1989년 초 검찰청에 국민생활침해사범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됐고 이듬해엔 민생특수부와 강력부를 만들어 조폭 수사를 전담케 했어요.”

그는 1989년 서울지검 수석검사로 재직할 당시 호남 주먹의 대부 이육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마카오 원정도박 폭력조직 두목 이석권 등 거물급 폭력배를 대거 검거했다. 또 1990년 8월 부산지검으로 발령받아 칠성파와 영도파 등 부산의 폭력조직 4개파 50여명을 잡아들여 예외 없이 실형을 선고받게 했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은 자신의 비호 아래 조폭이 너무 커버리자 이를 누르기 위한 엄삼탁의 이중플레이 결과라는 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엄삼탁은 재일동포 일본 야쿠자인 기네야마 고사부로로 하여금 올림픽 성금으로 3억원을 내게 해 훈장을 받게 하고 대통령과의 만남도 주선했어요. 또 조폭 행사에 안기부 이름으로 격려금을 전달하고 나중에 0 하나를 더 붙여서 돌려받았다는 증언이 있었죠. 호텔 빠찡꼬 조정권이 안기부에 있는 것처럼 해 폭력배의 이권에 노골적으로 개입했어요. 결국 엄삼탁은 김영삼 정부 시절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잖아요.”

영화에서 검사 조범석은 억울함을 주장하는 조폭 피의자 최익현(최민식)을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실제로 그랬느냐는 질문에 그는 “폭력을 쓰는 방법과 잘해주는 방법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겠느냐”고 반문했다.

“범죄조직을 수사하려면 수십년간 이놈들이 어떻게 살았나를 들어야 하는데 목조르기를 해선 뜻을 이룰 수 없어요. 조폭을 잡기 위해 피해자를 조사할 때도 마찬가지죠. 검사에게 진실을 증언하는 게 자기에게 손해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하는 게 중요해요. 깡패에게 돈을 갈취당한 피해자를 조사하면 한결같이 피해사실을 부정해요. 보복의 두려움 때문이죠. 그럴 경우 탈세 등 피해자 약점을 조사해 압박을 가해요. ‘당신도 처벌받을 수 있다. 깡패 잡는 거 도우면 당신 죄를 문제 삼지 않겠다. 당신 증언만으로 깡패를 잡지는 않는다’고 어르죠.”

그는 폭력배 수사 때 실제로 깡패의 협박이나 모함, 검찰 안팎의 힘 있는 사람들의 로비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봐달라고 한 사람은 없었기에 청탁을 압력으로 여긴 적이 없어 원칙대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칠성파 두목 이강환과의 질긴 인연은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한결 공동대표로 재직 중이던 2010년, 그는 공갈과 공동상해 교사, 협박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이강환의 변호인이 돼 무혐의 처분을 이끌어냈다.

그는 지난해부터 강남에서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등 최근에 꼬리를 무는 검찰비리와 ‘검찰 위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그는 “업무수준은 높을수록 좋지만 생활수준은 없는 대로 맞춰 살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자주 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일부 검사들은 높은 생활수준이 검사의 격에 맞는 것이라고 착각해요. 그럼 스폰서밖에 없잖아요. 전 그런 검사는 웃음 팔고 몸 파는 기생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곤 했어요. 밥·술을 얻어먹고 용돈 받아쓰며 지조를 파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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