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근혜 청와대가 ‘창조경제 다루라’ 압력…시청자만 보고 버텼죠”

입력 : 2018.04.07 06:00:00 수정 : 2018.04.16 14: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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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주연

경향신문 기자

‘무한도전’ 13년 대장정 마친 김태호 PD

봄비가 내리던 지난 5일 김태호 PD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인도를 우산을 쓴 채 걷고 있다. 그는 13년간 <무한도전>을 진두지휘하며 이 프로그램을 대한민국 최정상 예능으로 자리매김시켰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봄비가 내리던 지난 5일 김태호 PD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인도를 우산을 쓴 채 걷고 있다. 그는 13년간 <무한도전>을 진두지휘하며 이 프로그램을 대한민국 최정상 예능으로 자리매김시켰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13년간 사랑받으며 ‘국민 예능’으로 불린 MBC <무한도전>이 지난달 31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시즌2’로 돌아올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사실상 종영이다. 마지막 방송 며칠 전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김태호 PD(43)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10년간 똑같은 고민을 했는데,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수화기 너머로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회색 비니를 쓰고 올해 유행한다는 청청패션으로 멋을 낸 남다른 패션감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패션은 내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우선 <무한도전>을 내려놓은 소회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시원섭섭하다”였다.

MBC 간판 ‘국민 예능’이 멈춘 이유는
“웃음엔 하루 총량이 있는데…에너지 고갈에 변화 고민”

“새로운 변화에 대한 고민은 2008년부터 했어요. 현재 시스템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콘텐츠를 보여드리기 어렵겠다고 판단했거든요. <무한도전>은 첫회 30분에서 방송길이가 계속 늘어나 지금은 80분이라는 영화 한 편 분량의 스토리를 매주 만들어내야 해요. 하지만 멤버들이 만들 수 있는 웃음에는 하루 총량이라는 게 있잖아요. 에너지 고갈과 함께 고민이 깊어졌어요.”

- <무한도전>을 멈추는 것과 관련해 멤버들에게는 언제 이야기를 했나요.

“작년 가을 MBC 파업기간에 유재석씨를 만나 논의했고, 다른 멤버들에게도 회식 때 종종 의견을 전달했어요.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PD라도 바뀌면 어떻겠느냐고요. 결과적으로 멤버들이 제가 안 하면 자신들도 안 하는 게 맞겠다고 해서 새 프로그램 출범이 결정된 거예요.”

- 회사 경영진 입장에선 꽤 어려운 결단이었겠어요. 수익성이 매우 좋은 ‘효자’ 프로그램이었으니까요.

“회사 입장에선 멈춰선 안되는 프로그램이죠. 그래서 과거에도 여러 번 새 변화에 대해 건의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이번에 최승호 사장과 권석 (예능)본부장이 제 뜻을 받아주신 거예요.”

<무한도전>은 2005년 4월 MBC 주말 예능 <토요일>의 한 코너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해 <강력추천 토요일- 무리한 도전>을 거쳐 2006년 지금의 이름으로 독립했다. ‘무리한 도전’ 때부터 연출을 맡은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을 캐릭터의 성장을 담은 리얼 버라이어티로 변모시켰다. 이후 진화를 거듭하면서 ‘이산’(2008) ‘특전사’(2008) 등 시청률 30%를 넘나드는 히트 특집들을 잇따라 탄생시켰다. ‘팬덤’ 현상까지 나타났고, <무한도전>은 ‘사회현상’이 됐다. 플랫폼이 다변화한 최근까지도 ‘최정상’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회당 1000만명이 유료 다운로드를 통해 <무한도전>을 본다. 시청률 조사에서도 주 경제인구인 20~49세 연령대에서는 모든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틀어 늘 1~2위를 차지했다. 당연히 광고주가 선호한다.

- 후속 프로그램이 준비될 때까지 이번주부터 3주간은 <무한도전- 13년의 토요일>이 방송되죠. 김 PD와 멤버 6명이 지금까지의 방송을 훑어보면서 촬영 뒷얘기를 전한다고요.

“후배들이 열심히 편집 중인데 저는 인터뷰이로 참여했어요.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역시 초창기부터 2008년까지 방송한 콘텐츠들이 정말 고민 없이 재미있게 보게 되더라고요. 어떤 소재를 가져와도 멤버들이 너무도 화려하게 채색해줬거든요.”

- 이후엔 그렇지 않았다는 건가요.

“2008년 하하씨가 군 입대하면서 <무한도전>이 흔들렸다고 생각했었어요. 유재석씨가 큰 그림을 그리면 하하씨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공을 적재적소에 넘기고 받는 역할을 잘했거든요. 하지만 불안감이 되레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이후부터 2012년까지 <무한도전>이 한층더 성장했으니까요. 추격전, 봅슬레이, 여드름 브레이크, 죄와 길 특집 등 기존 예능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다양한 포맷을 실험했고 시청자 반응도 뜨거웠어요.”

- 왜 2012년까지 성장했다고 하나요.

“2013년부터 기존 주축 멤버들이 빠지면서 상당한 위기가 왔고, 이후 지금까지는, ‘잘 버텼다’는 표현이 맞아요.”

<무한도전>의 전성기를 이끈 고정멤버는 유재석, 정준하, 박명수, 정형돈, 하하, 노홍철이다. 이 중 노홍철은 2014년 음주운전으로, 정형돈은 2016년 건강상의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 개성이 워낙 강한 연예인들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멤버들 간 갈등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조율했나요.

“여러 사람이 모이니 갈등이 없을 순 없죠. 그럴 경우 유재석씨가 실제 나이는 그렇지 않지만 큰형 역할을 했어요. 누구든 프로그램에 집중하지 않으면 나서서 잡아줬고요. 저의 행복 중 하나는 유재석씨와 제가 프로그램을 보는 시각이 많이 일치한다는 점이었어요. 주제든, 시스템이든 문제점을 찾아 바로잡는 데 유재석씨가 늘 도움이 됐어요.”

개성 강한 멤버들 지휘하기 힘들지 않았나
“유재석과 프로그램 보는 시각 일치, 큰형 역할에 든든”

- 유재석씨는 긴 세월 동안 최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스캔들 한번 없었고 안티도 없어요. 선한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도 그런가요.

“실제로도 그래요. 그리고 온 신경을 어떻게 하면 프로그램이 재미있을까에 집중하죠. 예전엔 체력이 약했는데, <무한도전>에서 추격전을 잘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을 정도예요.”

- 박명수씨는 어떤가요. 방송에서는 버럭 화를 잘 내고, 본인 입으로 유재석씨에게 얹혀 간다고 농담하곤 했잖아요.

“캐릭터 자체가 정리(진행)를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박명수씨에게 기대하는 것은 정해진 룰을 깨고 누군가 망설이던 것을 바로 이야기해서 통쾌감을 주는 캐릭터죠.”

- <무한도전>은 광우병, 메르스, 세월호 등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책을 자막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언급해 화제가 됐는데 당시 경영진이나 정부의 외압은 없었나요.

“<무한도전>은 높은 인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건드리기 어려운 프로였어요. 정권은 오히려 <무한도전>을 통해 정부정책을 홍보하고 싶어했죠. 2010년 ‘한식의 세계화’ 아이템은 마침 생각하던 아이템이라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지원도 받았지만 우리가 거부한 아이템도 많았어요.”

- 예를 들면 어떤 거요.

“박근혜 청와대가 ‘창조경제 다루라’ 압력…시청자만 보고 버텼죠”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이 CP(책임 프로듀서)에게 ‘창조경제’ 아이템을 다루라고 줄기차게 주문했어요. 우리는 ‘못한다’며 1년을 버텼죠. 하지만 끝내 말을 안 들으면 예능본부 선배들이 다칠 것 같았어요. 저는 제가 회사 명령을 거역한 것으로 하고 징계를 받으면 이 일이 무마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그 행정관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넘어갈 수 있었어요.”

김 PD는 MBC 파업 때마다 동참했다. 그 여파로 <무한도전>은 2012년 6개월간, 지난해에는 10주간 연속 결방했다. 2012년 총파업이 끝난 후 경영진은 파업을 주도한 노조원들을 스케이트장 관리 등 비제작부서나 한직으로 쫓아냈다. 그 결과 MBC는 공정성을 잃고 시청자 신뢰도 잃었다. <무한도전>의 인기는 여전했지만 보도 부문을 대표하는 <MBC 뉴스데스크>는 ‘애국가 시청률’(2% 안팎)이라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최근 MBC는 특별 내부 감사 결과 블랙리스트가 사내에 존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블랙리스트에 김 PD도 있나요.

“제가 포함됐는지 여부는 저도 몰라요. 2012년 파업 후 인사 불이익을 당한 동료들을 보면서도 더 이상 싸울 동력이 없었기에 정신없이 일에만 몰두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무한도전>이 사측이나 정부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할 때면 경영진에 찍혀 밀려난 동료들이 ‘무도 때문에 버틴다’며 응원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그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 무엇이 <무한도전> 정신인가요.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죠.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어요. ‘무모한 도전’ 시절에도 황소와 줄다리기,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 등에서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거든요. 실패가 미덕일 정도였지만 우리에겐 즐거운 과정이었어요.”

거액 스카우트 제안 받았다는 소리 자주 들리는데…“제 프로 재미있게 만드는 것보다 더 큰 유혹은 없었죠”

검증된 ‘스타 PD’인 만큼 호시탐탐 그를 영입하려는 곳은 많다.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올 초에도 그가 넷플릭스로 간다거나 YG로 옮긴다는 소문이 구체적으로 돌았다. 100억원을 투자받아 독립 제작사를 세운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는 부인했다. 2011년에도 그는 JTBC의 거액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PD로서 <무한도전>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보다 더 큰 유혹은 없었으니까요.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기에 어떻게 보답할지 책임감을 느꼈거든요. 이제 휴지기를 맞았으니, <무한도전> 외에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MBC 안에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죠.”

학창 시절엔 어떤 아이였나…앞으로의 계획은
“아침 드라마 보고 상습 지각…해외 연수로 재충전할 것”

- 왜 MBC에 남기로 한 겁니까.
- 돈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나봐요.

“지금 당장 돈을 욕심 내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돈은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디서 돈을 더 준다고 해서 옮겼다가는 빚진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고, 그러면 정작 콘텐츠는 2순위로 밀려나요. 생각의 틀을 벗어나 마음껏 새로운 형식의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무한도전>을 멈췄는데 이 기회를 그렇게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요.”

그는 충남 보령 출신이다. 대천해수욕장이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었지만 어머니는 1남4녀 중 넷째로 외아들인 그에게 행여 사고라도 날까봐 바다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 몰래 바닷가에서 놀고 왔다가 팬티 속에서 모래가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크게 혼난 기억이 있다”고 했다.

- 어떤 아이였나요.

“영화와 TV 보는 걸 좋아했어요.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는데 10살 무렵 혼자 극장에 가곤 했는데 로저 무어 주연의 <007 옥터퍼시>를 보며 액션과 신무기에 열광했던 기억도 나요. 또 집에서 TV로 쇼와 드라마를 보는 것도 좋아했어요.”

- 중·고 시절은요.

“늘 숨고 싶어하는 성격이면서도 장기자랑에는 나가서 트로트 가수 성대모사를 하곤 했죠(웃음). 고교 때는 비평준화지역인 공주(공주사대 부고)로 유학갔어요. 성적은 다른 과목은 괜찮았는데 ‘수포자’(수학포기자)였어요. 1학년 땐 두 학기 모두 ‘가’를 받았고, 2학년 1, 2학기 각각 ‘양’과 ‘미’를 받았죠. 상습 지각생이라서 벌로 매일 0교시에 운동장 청소를 해야 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길래 아예 집에서 아침드라마 <TV소설>을 보고 등교했어요. 대학 때도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길어지면 밤 10시에 혼자 집에 가서 TV를 본 다음 다시 나와 놀았고요.”

- 수포자인데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합격했군요.

“운이 좋았죠. 고2 겨울방학 때 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해 수능성적이 좋았고 대학본고사는 논술과 영어, 제2외국어로 봤거든요(웃음).”

- 패션에 대한 관심은 언제 생겼나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옷을 좋아했어요. 중·고 시절에도 한달 용돈을 받으면 옷부터 사느라 쫄쫄 굶기도 했죠.”

졸업 후 동아일보 입사시험에 합격했지만 모든 사안을 ‘글’보다 ‘이미지’로 떠올리는 게 익숙하고 편한 그는 가지 않았다. 제일기획은 최종까지 갔지만 재학증명서를 빠뜨려 탈락했다. 당시 제일기획 인사과장은 재학증명서를 퀵서비스로 보내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는 ‘설마’했다가 진짜 떨어졌다. 그리고 MBC에 합격했다.

- 드라마국도 있는데 왜 예능PD가 됐습니까.

“어릴 때부터 <연예가 중계>에서 본 미국 아카데미상, 에미상 시상식에 매료됐어요. 저도 저런 쇼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또 예능은 그 안에서 드라마(콩트)도 만들 수 있잖아요.”

- 예능의 역할과 책임은 뭘까요.

“재미와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2009년 결혼해 아들(5) 하나를 둔 그는 “휴지기와 관련해 제일 흥분되는 건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무한도전>과 함께한 지난 시간 동안엔 “아내와 평일 저녁식사를 같이 해보지 못했고 퇴근은 아이가 잠든 후에야 이뤄진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디어 충전을 위해 몇달간 가족을 동반해 해외 연수를 다녀올 생각”이라고 했다.

“저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중 하나가 틈틈이 구글 지도를 열고 가보고 싶은 곳에 별표를 찍어두는 일이에요. 어디로 떠날지는 좀 더 고민해보려고요. 많이 느끼고 담아오고 싶어요. 제 꿈은 지금도 다양한 시청자들을 저마다 만족시킬 수 있는 독특한 콘텐츠를 다채롭게 선보이는 거거든요.”

<무한도전>은 어쩌면 이제 수명을 다했지만 김태호 PD의 ‘무한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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