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 검거한 황상만 전 형사반장 “권력남용으로 피해당하는 억울한 사람 다신 없어야죠”

2021.01.17 13:37 입력 2021.01.17 15:57 수정

익산 약촌오거리살인사건 진범을 검거했던 황상만 전 형사반장이 국가배상판결이후인 16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그간 심경을 밝히고 있다.

익산 약촌오거리살인사건 진범을 검거했던 황상만 전 형사반장이 국가배상판결이후인 16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그간 심경을 밝히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3일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옥살이를 했던 최 모씨(36)에게 국가는 16억원을 지급하라는 배상판결을 내렸다. 2013년 시작된 재심과 무죄판결, 국가 배상판결까지 8년간의 여정이 일단락된 순간이었다. 이날 최 씨와 박준영변호사 곁을 지킨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재심과 무죄판결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도왔던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69)이다. 그는 18년전 진범을 검거했던 이다. 7년전 퇴직한 후 군산에서 행정사 사무실을 연 그를 16일 만났다. 황 씨는 “배상판결까지 끝났으니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놓은 것 같다. 최 씨가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시작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시민 몇명이 행정사 사무실 문을 열고 “그간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사라졌다.

“사건발생부터 치면 21년이 흘렀으니 참 오래도 끌었지요. 그 세월동안 늘 가슴에 담고 있었던 일인데 액수를 떠나 청구한대로 판결이 거의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해요. 많이 홀가분해 졌지요”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 최 씨(당시 15세)는 약촌오거리에서 칼에 찔려 쓰러져 있는 택시기사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되레 범인으로 몰렸다. 최 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2010년 만기출소했다.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던 황 씨는 2003년 진범을 검거했지만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최 씨는 사건 발생 16년만인 2016년 11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누명을 벗었다.

사건 중심에 있었던 황 씨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일단락되겠지만 남겨진 교훈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누군가의 인권을 묵살하고 짓밟아 버리는 행위는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는 말에 힘이 실렸다.

“떠올리기도 싫지만 진범을 검거했을 당시 검사가 용의자를 한번만이라도 불러 ‘범인이 맞냐’고 확인하고, 도장만 찍었으면 다 끝날 수 있었어요. 몰라서 그런게 아니라 안 한 겁니다. 명백한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이었죠”

그로 인한 피해자는 한 둘이 아니라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최 씨는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죗값을 치르겠다고 자백까지 했지만 풀려나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했던 진범 김 씨는 13년만에 다시 검거됐다. 그는 15년형을 살아야 한다. 김 씨를 숨겨줬던 친구와 경찰관 한 명도 목숨을 끊었다.

“나도 고초를 겪었어요. 수사종결후 느닷없이 강력반에서 지구대로 발령이 나 버렸어요. 뜬금없는 생활이 시작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 졌지요. 몸이 망가져 뇌경색으로 한 참을 고생해야 했어요. 사건 피해자의 한 사람인 셈이죠”

그는 박준영변호사와의 만남을 떠 올렸다. 2013년 늦 봄, 박 변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지구대에 근무하고 있던 황 씨는 손사래를 쳤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한나절을 버티며 설득했다.

“나를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한다며 정신병자, 미친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혼돈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최 씨가 사건 현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요. 최 씨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마음이 이상해 지더군요. 그가 억울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일어선 것이 전국을 헤매고 다니게 된 거죠”

재심사건에 언론이 관심을 가지면서 인터뷰도 많이 했다. 현직 경찰관 신분이어서 상부에 언론접촉 보고를 해야 했으나 모두 생략해 버렸다. 보고를 하면 응하지 말라고 할 게 뻔하고 그러면 항명이 불가피했다. 진실을 알리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하소연이 가장 빠르다는 판단이 들었다.

“방송 인터뷰에서도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그만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지금도 확연한 것은 진범을 숨겨준 임 씨가 흉기의 끝이 구부러져 있었다는 진술을 했는데, 김 씨 진술도 택시기사 어깨에 칼이 들어가는 순간 무언가(쇠골뼈)걸린 것 같았다고 일치한 거였어요. 이런 사실들을 국민들에게 호소한 것이죠”

진범을 잡고도 덮어버린 결정적 이유는 물증인 흉기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진범과 친구 임 씨는 언론앞에서도 자백을 인정했다. 자백보다 더 완벽한 증거는 없었으나 영장은 기각됐다. 불구속 수사로 전환된 후 진범은 자백을 번복하며 심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변호사는 김 씨와 임 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상황은 180도 변했다.

“범행에 쓰인 흉기를 찾아내려고 백방으로 뛰었지요. 흉기 이동경로가 파악됐어요. 맨 처음 김씨가 임 씨에게 줘 매트리스밑에 숨겨놨었어요. 꿈 속에서 가위에 눌리자 임 씨가 다시 김 씨에게 줬고 김 씨는 자기가 살던 외할머니집 화단 나무밑에 묻었다가 2층 올라가는 계단밑에 던져 놓습니다. 그러다 이사를 가게 됐고 새 주인이 칼을 보고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흉기는 익산 쓰레기매립장에 묻혀 있었다. 황 씨는 매립 데이터 자료에 흉기가 묻혀 있는 예상 지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검찰에 수색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적지 않은 발굴비용이 들고, 찾아내도 감정이 제대로 될 지 의문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흉기는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 검찰은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전에 수사할 때는 진범을 잡아 놓고도 검사와 한번도 통화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교류를 많이 했어요. 검찰이 최씨 무죄선고이후 다시 진범 수사에 착수하면서 내가 갖고 있던 증거자료를 요구해 줬고, 참고인 진술도 해 줬어요. 진범 검거를 놓고 검찰과 원팀으로 움직이기도 했지요. 최 씨 무죄선고 4시간만에 진범 김 씨의 소재를 파악해 검거한 것도 그 결과일 수 있지요”

황 씨는 이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인권유린과 억울한 일이 당하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재심과 배상판결을 이끈 박 변호사를 “정의롭고 욕심이 없는 선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그는 “청춘을 빼앗긴 최 씨가 나에게 아버님이라 불러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울컥하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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