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검찰 공소장 보니…청와대에 ‘조기 폐쇄’ 결론 미리 보고했나

2021.01.29 11:31 입력 2021.01.29 16:49 수정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오른쪽)와 2호기. 경주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오른쪽)와 2호기. 경주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자료 530건에 청와대 협의·보고 문건이 여러 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삭제한 자료에는 여당 의원이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했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도 있었다.

29일 SBS가 전날 공개한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의 공소장을 보면 산업부는 2018년 5월23일 ‘에너지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과 향후 추진일정(BH송부)’ 문건을 작성했다. ‘BH’는 청와대를 뜻한다. 이 문건은 “2018년 6월15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청와대에 보고한 내용이다. 작성 시점은 경제성 평가 용역보고서 최종안이 나오기 전으로 이사회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때였다. 이사회는 예정대로 6월15일 열려 원전 조기 폐쇄를 의결했다. 검찰은 청와대와 산업부가 미리 원전 폐쇄를 정해 놓고 한수원을 압박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산업부는 한수원 이사회를 앞두고 ‘청와대 요청’을 반영한 여러 문건을 작성했다. 2018년 6월7일 ‘후속조치 및 보완대책(BH 송부)’, 10일 ‘대통령 에너지전환(원전) 보고(BH 수정요청 반영 재제출)’, 11일 ‘후속조치 및 보완대책(사회수석보고)’ 문건이 작성됐다. 11일 작성된 ‘산업비서관 요청사항’ 문건은 원전 조기 폐쇄 발표 보도자료에 노동자 고용보장 등을 포함하는 계획을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과 협의한 내용이었다.

산업부는 국정과제에 따라 국내에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한 문건도 작성했다. 검찰은 ‘60 pohjois’라는 폴더에 있던 ‘경수로 백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과제’ 등 파일이 삭제된 것으로 파악했다. ‘pohjois’는 핀란드어로 ‘북쪽’을 뜻한다. 이 문건들은 2018년 5월 전후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해 4월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한 언론이 지난해 11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산업부가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고 보도하자, 회담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남북정상회담 어느 순간에도 원전의 ‘원’자는 없었다. 제발 헛다리 짚지 말기 바란다”고 적었다.

산업부는 2018년 3~4월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원전수출 국민행동’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 동향’ ‘원전수출 국민 행동대회 동향보고(국장님)’ 등이었다. 이 단체의 집회신고서도 갖고 있었다. 산업부는 2018년 3월9일 한수원 노동조합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 ‘한수원 신임사장 관련 노조 동향’도 작성했다.

당시 산업부 문모 국장과 정모 과장의 지시에 따라 김모 서기관은 일요일인 2019년 12월1일 오후 11시부터 2일 오전 1시30분까지 세종시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 사무실에서 관련 자료 530건을 삭제했다. 2일 오전 감사원의 산업부 방문 조사 직전이었다. 김 서기관은 디지털 포렌식을 해도 문건이 제대로 복구되지 않도록 본문에 ‘ㄴㅇㄹ’ 등을 적고 수정·저장한 뒤 삭제했다. 검찰은 지난 25일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백 전 장관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거나 부당한 일은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라며 비판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입장문을 내고 “문재인 정부가 국내 원전을 폐쇄하면서 북한에는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며 “정권 운명을 흔들 충격적 이적행위”라고 밝혔다. 그는 “문 정부의 민간인 사찰 DNA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탈원전 강행을 위해 민간인 사찰 등 왜 이런 불법까지 서슴지 않았는지 정말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건영 의원은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해당 산업부 공무원이 (북한 원전 협력) 관련 내용을 검토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공무원의 컴퓨터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고 그것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정책 추진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