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군사기밀 유출 기무요원, 간첩죄 적용못해

2015.07.10 16:47 입력 박성진 기자

중국에 군사비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해군 장교가 10일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국내 형법상 북한을 제외한 제3국에 국가 기밀을 누출한 경우에는 형법상 간첩죄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군 검찰은 이날 기무사 소속 해군 ㄱ소령을 군사기밀보호법 및 군형법 위반(기밀누설) 혐의로만 구속 기소했다.

ㄱ소령은 2013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해군 함정과 관련된 3급 군사비밀 1건과 군사자료 26건을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인 남성 ㄴ씨에게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ㄱ소령은 중국 유학 중이던 2010년 같은 학교 학생을 통해 ㄴ씨를 소개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ㄴ씨는 중국 기관 요원이라는 알려졌으나 군 관계자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ㄱ소령은 군사비밀 1건을 기무사 소속 ㄷ대위로부터 받아 서울에서 발췌해 손으로 옮겨 쓴 다음 이를 사진으로 찍고 SD카드에 담아 ㄴ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 검찰은 ㄱ소령에게 군사비밀을 건넨 ㄷ대위도 보강 수사를 거쳐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ㄱ소령이 군사비밀과 군사자료를 ㄴ씨에게 넘기는 과정에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전달책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접선할 때 서로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활용하는 등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ㄴ씨는 ㄱ소령이 중국에서 여행할 때 여행 경비를 대주는 등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군 관계자는 “ㄱ소령이 유출한 자료 중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관한 것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월 ㄱ소령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국가정보원과 기무사는 지난달 11일 그를 체포했다.

군이 이번 사건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연루됐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ㄱ소령의 계좌 추적과 환전 내역 조사 등 가능한 방법을 다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군 당국은 사건이 확대될수록 중국과의 외교관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데다 사건 당사자가 기무요원으로 자칫 기무사 전체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사안을 축소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간첩행위의 상대를 ‘적국’으로만 한정해 미국이나 일본, 중국 요원이 한국을 상대로 간첩활동을 해도 처벌할 수 없는 헛점이 다시 드러났다.

적국이 아닌 우방, 심지어 동맹국에도 기밀은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스파이와 테러범에게 국가정보가 유출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1996년 해군 정보국에서 일하던 한국계 로버트 김에 대해 ‘북한 잠수함 정보를 동맹국인 한국의 무관에게 알려준 혐의’로 체포해 징역 9년, 보호관찰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간첩죄를 규정한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처벌만 놓고 보면 살인죄(5년 이상 징역)보다 무겁지만 간첩행위의 상대를 ‘적국’으로만 한정하고 있다.

2011년 송민순 당시 민주당 의원은 ‘외국 및 외국인 단체에 국가기밀을 누설해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지지부진하게 논의되다가 18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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