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은 여아, 파랑은 남아’ 기이한 제품 성별 구분 왜

2020.01.02 16:52 입력 2020.01.02 22:11 수정 박채영 기자

정치하는엄마들, 인권위에 “성차별” 새해 첫 진정

젖꼭지 등 상당수 제품서
성별 고정관념 주입으로
우리 아이들의 인권침해

“소꿉놀이는 엄마놀이”로
가사노동은 여성 몫 왜곡도

“여자 것도 남자 것도 없다”
만연한 성차별 시정 촉구

“엄마는 왜 아빠 머리했어? 엄마도 치마 입어봐.”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다섯 살 딸의 질문에 충격을 받았다. 2015년생 딸은 1977년생인 자신보다도 더 고루한 성별 고정관념에 찬 말을 했다. 여성도 짧은 머리를 할 수 있고 남성도 머리를 기를 수 있다고 수차례 설명을 해줬지만, 유치원과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성별 고정관념을 주입받은 아이는 자꾸만 “여자도 남자 것 해도 되지? 남자도 여자 것 해도 되지?” 확인을 받고 싶어 한다.

정치하는엄마들은 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색깔 등에 따라 여아용과 남아용 제품을 구분하는 것이 영·유·아동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성차별적인 제품의 유통 행태를 시정해달라”는 진정을 냈다. ‘세상에는 여자 것도, 남자 것도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인권위에 접수된 ‘1호’ 진정이다. 이들은 “분홍색 제품은 여아용, 파란색 제품은 남아용으로 소개하는 등 성별 따라 제품을 구분하는 것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젖꼭지부터 초등노트에 이르는 상당수 유·아동용 제품에서 성차별적인 성별 구분이 발견됐다. 모닝글로리와 영아트에서 만든 스케치북·초등노트의 경우 짙은 색 바탕에 자동차, 비행기, 탱크, 로켓, 운동선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제품에는 ‘남(아용)’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반면, ‘여(아용)’라는 설명이 붙은 스케치북과 노트에는 옅은 분홍색 배경에 토끼, 고양이 등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심지어 모나미는 크레파스 케이스의 색깔에 따라 분홍색은 ‘여’, 파란색은 ‘남’이라고 소개해놓고 노란색은 ‘중성’이라고 구분했다. 더블하트의 젖꼭지와 메디안의 칫솔 역시 분홍색 제품에는 ‘여아용’, 파란색 제품에는 ‘남아용’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모두 기능과 무관하게 색상이나 그림에 따라 성별이 구분됐다.

이외에도 정치하는엄마들은 ‘소꿉놀이’를 ‘엄마놀이’라고 표현하는 어린이용 장난감이 아이들에게 성역할 고정관념을 주입하고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콩순이 팝콘 가게’의 제품 소개에는 “소꿉놀이, 엄마와 아이 역할을 모두 체험”이라고 적혀 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해 3월부터 미디어 속 혐오 차별 콘텐츠를 수집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핑크 노 모어’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앞서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 성별에 따라 장난감을 분류하는 행태를 지적해 온라인 쇼핑몰들의 자발적인 시정 조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실태조사에 참여한 남궁수진 활동가는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여자 것’ ‘남자 것’이란 규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는 엄연한 인권침해며 인권위가 만연한 성차별을 방관하지 말고 상식적인 결정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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