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세계읽기

줄줄이 “공장 철수”…중국 ‘왜 나만 미워해’ 할 때가 아니다

2020.05.08 16:25 입력 2020.05.08 23:52 수정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깊어지는 중국과 세계의 불화

미국은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미국 역시 67만여명의 적지 않은 인명피해를 입었지만, 이후 복귀 속도와 내용에서 타국을 앞서면서 슈퍼파워로 부상할 발판을 마련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외부의 방해 또는 반감이 적었다는 점이다. 당시 패권국인 영국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집중 견제했다면 미국의 비상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 분명하다. 영국뿐 아니라 당시 세계의 대미 정서는 코로나19 이후 대중국 정서처럼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덩샤오핑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발전을 모색하기에 이상적인 외부 환경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중국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은 강한 외부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자국 내 코로나19 피해를 중국 탓으로 돌리는 선전전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각국의 대중국 인식도 급속하게 악화하고 있다. 세계의 중국 견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어떠한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거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희화화한 스텐실 초상화 옆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박쥐’라는 한자가 적혀 있는 초상화에는 눈 부위가 훼손돼 있어 스웨덴 사람들의 혐중 정서를 대변한다. ‘아이언’이라는 이름의 스웨덴 작가가 그린 이 초상화는 스톡홀름 시내 10여곳에 나붙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지난 6일 현재 2만3216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이 중 2854명이 사망했다. 스톡홀름 | AP연합뉴스

■세계의 대중국 위협 인식

세계의 혐중 정서는 중국이 일견 자초한 측면이 있다. 각국이 코로나19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소방수’를 자처함으로써 반감을 부채질한 것은 물론, 트위터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맹활약을 해온 중국 외교관들의 ‘잔랑(戰狼·늑대 전사) 외교’가 화를 키우고 있다. 프랑스 외교부는 지난 4월 중국 대사를 초치, 서구의 바이러스 대책을 비난한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관 홈페이지의 글에 공식 항의했다. 카자흐스탄 외교부는 같은 달 14일 역시 중국 대사를 초치해 “카자흐는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의 일부”라는 주장을 내놓은 중국 포털 소후닷컴의 기사에 항의했다. 민주주의체제에서 언론 보도에 항의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중국 당국이 온·오프라인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르몽드는 최근 ‘중국의 잔랑 외교’ 특집에서 “중국은 강대국이 아니며 결코 강대국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덩샤오핑의 1974년 유엔 연설문을 거론하며 세계의 대중국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집중 조명했다. 세계의 코로나19 책임론에 대해 중국이 ‘마스크 외교’와 중국 모델 선전전을 동시에 벌이는 투트랙 접근의 부작용을 짚은 것이다.

중국이 상당한 재원을 투자해온 아프리카에서의 반중 정서는 뼈아픈 실책일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철도와 도로, 항만, 공항, 발전소 등 인프라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에 그동안 1430억달러를 투자해놓았다. 하지만 광저우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집과 호텔에서 쫓겨나 노숙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 뒤 아프리카 각국의 강한 외교적 반발에 직면해 있다.

‘소방수’ 자처하다 반감 사는 등
코로나 이후 ‘혐중 정서’ 확산

미·일·EU 제조업 탈중국 검토
투자 공들인 아프리카도 냉랭

톈안먼 못잖은 ‘반중’ 언급한
내부 보고서에도 표정관리만
‘혐중’ 받아들이는 방식 변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공세는 5월 들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종래 코로나19가 아닌 ‘중국 바이러스’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던 명칭 문제와 글로벌 대유행으로 번지기 전 중국의 초기 책임론에 집중됐었다면, 이제는 내놓고 대중국 보복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포스트 트루스(진실 이후) 시대’에 사실관계는 중요치 않다. 일단 말을 내뱉고 파장이 크면 슬그머니 수습하는 게 포퓰리스트의 전형적인 공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대한 (추가)관세 부과나 채권 상각 등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대중 보복의 운을 떼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3일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의 국립바이러스연구소에서 발원했다는 ‘거대한(enormous) 증거’가 있다고 공개 발언했다가 사흘 뒤 ‘상당한(significant) 증거’라며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는 지난달 30일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시작됐다고 확신한다. 증거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입증할 조사를 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책임이 확인된다면, (그에 따른) 후과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날렸다. 트럼프의 중국 공격은 일관되지만, 그 와중에 백악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 해체를 시사했다가 번복하는 등 바이러스 대책은 여전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직까지 미국이 말의 전쟁을 넘어 정밀한 대중국 정책을 내놓을 계제가 아닌 것이다.

■중국의 대외 위협 인식

중국 지도부가 악화되는 반중 정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4일 로이터통신 보도로 그 일단이 공개됐다. 로이터는 1989년 6월4일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못지않은 반중 감정이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는 중국 내부 보고서 내용을 발굴, 보도했다.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 관영 싱크탱크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이 작성, 지난달 초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지도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톈안먼 사태 당시 중국 당국의 유혈진압 이후 미국과 서방은 대중국 무기 및 기술이전을 제한하는 제재를 부과했었다. CICIR은 이와 관련한 로이터의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고, 중국 외교부는 “관련된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보도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시 주석이 지난달 말 “전례 없는 외부의 역경과 장기적인 도전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고 말한 것은 이 같은 위협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당 정치국 회의에서는 외부 세계의 변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대비’를 주문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육·해상 실크로드(BRI) 차질 가능성을 지적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로 ‘미·중 무력대립’을 꼽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군사적 갈등은 정면충돌이라기보다 기왕에 긴장이 조성돼온 남중국해에서의 국지적 충돌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이 중시하는 관점은 이념이다.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시진핑 주석의 대내 방침은 최근 산시성 시안 시찰 길에 발표한 ‘여섯 가지 안정’(六穩)과 ‘여섯 가지 보호’(六保)로 요약된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내놓은 여섯 가지 안정은 취업·금융·대외무역·외자·투자·기대시기 안정이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주민취업·기본민생·시장주체·식량과 에너지 안전·산업(가치)사슬 및 공급사슬 안정·기층가동 등 여섯 가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책이다. 기층가동은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이 기층(동사무소 등 일선 행정기관)에서 잘 가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시 주석은 지난 3월 우한과 이후 저장성, 산시성 방문 등을 통해 코로나19 방역과 경제사회 발전의 두 가지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섯 가지 보호책 중 단기적으로 중국 고용시장에 가장 큰 위협은 각국의 가치사슬 및 공급사슬 조정 움직임이다. 코로나19 이후 각국이 보건의료 관련 장비·물품을 중심으로 중국에 의존했던 공급체계에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을 포함한 4대 교역주체 중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제조업 공장의 탈중국 방침을 발표 또는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22억달러를 투입해 중국 내 일본 기업의 본국 또는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 이전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필 호건 EU 교역 담당 집행위원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교역 의존도를 낮출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탈중국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단계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철수하는 비용을 정부가 지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커들로 위원장은 폭스뉴스에 “공장, 장비, 지적재산권, 구조물, 혁신안 등 (중국으로부터 철수하는 데 필요한) 즉각적인 경비의 100%를 말한다”고 강조했다. 미 의회는 공급사슬의 대중국 의존도 축소를 의무화한 법안을 지난달 통과시켰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플로리다)이 발의했지만 3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합류해 초당적 결의를 내보였다. 하지만 시급하게 미국 내로 생산기지를 옮겨야 할 항목으로는 22개의 방호복과 30개 정도의 약들로 국한된다고 SCMP는 전했다. 세계 1위 제조업 기지에 세계 1위의 소비자를 갖고 있는 중국 시장을 포기할 업체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중국 대 서방, 헐뜯기 경쟁

로이터가 보도한 CICIR의 내부 보고서 내용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오히려 현 시기 각국의 대중 인식을 톈안먼 사태와 비교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1989년 6월4일은 중국 지도부 내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온건파가 사라지고 강경파 일색으로 바뀐 날이다. 마이크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센터장의 <백년의 마라톤>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교과서 등에 미국을 중국 지배를 획책해온 ‘사탄’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코로나19로 촉발된 혐중 의식을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SCMP가 ‘포퓰리스트 이론’이라고 소개한 만주족의 만리장성 돌파론이 흥미롭다. 중국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 글은 명나라를 멸망시킨 만주족이 명의 방식과 제도를 따른 게 아니라 만주족의 방식으로 만리장성을 돌파했음을 강조한다. 명이 만주족을 오랑캐로 보았듯이 미국과 서방이 중국을 그리 보고 있다면서 “우리가 무엇을 하건 틀렸다고 볼 것”이라고 단언했다. 톈안먼 이후 중국은 세계경제에 적극 뛰어들면서도, 서방과 이념적 벽을 허물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경제적으론 개방을 유지하면서도 서방과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올림픽에서 각국의 경쟁이 벌어졌을 올여름, 중국과 서방은 서로 헐뜯기 경쟁을 벌일 것 같다.” 갈 러프트 워싱턴 글로벌안보분석연구원(IAGS) 국장의 말이다. 중국 책임을 둘러싼 국제적인 소송전도 예상되는 그 싸움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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