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라는 권력…명망가들 왜 그토록 되려고 애쓰나

2008.04.02 14:55 입력 2008.04.02 14:57 수정 유인경 선임기자

목사도 떨어뜨리는 평신도 최고 직급

봉사활동·돈 필수 ‘신앙심만으론 안돼’

교회사업과 정치 ‘입김’ 끊임없는 분쟁

“대통령직은 잠시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어쩌면 대통령직보다 (장로라는 직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도 기독교 장로가 (대통령을) 해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대통령 당선 뒤 소망교회로 예배보러 가는 이명박 대통령(위).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 시절 한 얘기다. 이처럼 이 대통령은 자신이 장로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표시했다.

이승만(정동 제일교회), 김영삼(충현교회)에 이어 대한민국의 3번째 장로 대통령이 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도 소망교회 부활절 예배에 참석할 만큼 ‘장로’로서의 소명을 다하려 한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도 소망교회 장로이고, 최근 홍성교회에서 안수집사가 된 정두언 의원은 “빨리 장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왔던 정근모 전 장관 역시 장로이다. 급기야 11대 국회의원인 최수환 장로를 비롯한 많은 교회의 장로들은 ‘하나님이 보우하시는 대한민국, 희망이 있습니다’를 모토로 내걸고 한국기독당을 창당, 총선에 출마했다. 바야흐로 정계에 ‘장로 바람’이 뜨겁다. 장로의 파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3월26일 소망교회에서는 장로 선거가 있었다. 결과는 45명의 후보 가운데 김태승 한양대 정형외과 교수만의 당선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되는 것보다 장로 되는 게 더 어렵다’는 소문을 입증했다. 소망교회는 7만여명의 교인에 비해 시무장로는 103명(2008년 3월 기준)으로 적은 편이다. 그런 소망교회에서 1999년과 2007년에는 장로를 아예 배출하지 못했다. 이유는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망교회 규정상 최종 15명 선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40대 이상의 연령에, 신도 30명 이상의 추천을 받고, 7년 이상의 집사 경험을 갖추는 동시에 교회 등 각 기관에서 7년 이상 봉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직계가족이 모두 소망교회 신도여야 하며 장로 투표일에 참석자 3분의 2의 찬성표를 얻어야 장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김 교수 혼자 그 관문을 넘은 것이다.

김 교수와 더불어 후보에 올랐던 이들의 면면을 보면 장로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이 난다. 79년부터 이 교회의 독실한 신자인 김신배 SK텔레콤 대표이사를 비롯, 조건호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홍승표 이수화학 감사, 이병화 금융감독원 국장, 임진택 한양대 겸임교수, 임순호 삼성의료원 치과부장 등 18명의 CEO, 4명의 교수, 5명의 이사, 고위직 공무원 3명 등이다. 이 교회 장로인 대통령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인사들이 새정부 요직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이 대통령의 ‘흔적 밟기’ 혹은 ‘기(氣) 받기’라는 말까지 유행했다. 이렇듯 장로 후보들이 모두 대한민국의 파워 엘리트임에도 고배를 마셨으니 소망교회 장로선거가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장로 선거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대부분 내년에 다시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장로 후보는 “장로직이 세속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고 출세 교두보를 구축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명예로운 직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도 한 번에 된 것이 아니라 재수 끝에 당선되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 시절에 소망교회의 건물 신축을 해주는 등 큰 도움을 주었고 92년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매주 일요일 새벽 주차 봉사를 3년4개월간 했다. 그래도 재수 끝에 95년에 장로에 선출되었다. 소망교회엔 정치인만이 아니라 장성들도 많아 소망교회 별(장군)만 합쳐도 200개라는 소문이고 연예인들도 100여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명망가들조차 이토록 ‘장로’가 되려고 애쓰는 이유가 뭘까.

돈이 있어야 장로가 된다?

영어로는 엘더(elder), 히브리어의 Z^aq^en에서 유래한 장로(長老)는 우리나라를 비롯, 한자 사용권에서 사용하는 기독교 용어다. 한국 개신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장로교에는 장로, 집사, 권사 등의 직책이 있다. 집사는 교회 실무를 담당하고, 권사는 봉사·전도 활동이 중추인데 주로 여성신자에 대한 예우에서 맡겨진다. ‘장로’는 평신도의 최고의 직급이자 대표로서 교회 운영을 결정하는 당회에 참여하고 부서 책임을 맡기 때문에 그 임무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3월26일에 실시된 소망교회 장로선거 투표 장면

오랜 기간에 걸쳐 그 교회에서 부지런히 신앙생활과 봉사 활동을 하고 덕망이 높은 이들이 권사, 집사 등의 기간을 거쳐 장로에 이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말은 쉽지만 그 기간 동안 이명박 대통령처럼 대기업 사장이건 국회의원 신분이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같이 나와 자동차 주차는 물론 밥퍼주기, 청소, 보육시설 찾아가 노인 및 어린이 목욕 시켜주기 등의 봉사를 꾸준히 해야 한다. 또 교인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각 가정을 목사와 함께 방문해 기도도 해줘야 하고 교회 헌금 감독, 비품 구입이나 교회 건물 신축, 목사 교체 등 모든 교회 안팎살림과 행정을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지라 신앙심만으로 얻어지는 자리가 절대 아니다. 또 몸이 건강하다고 각종 봉사활동에 매진하거나 회계 등의 전공분야를 내세운다고 장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돈이 많아야 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장로와 관련된 질문 중 가장 많은 것은 “얼마나 돈을 쓰면 장로가 되나요?”란 다소 도발적이고 엉뚱한 질문이다. 그러나 그 질문에 관한 답변은 “신성한 장로직에 돈이라뇨?”란 힐난보다 “교회마다 다르지만 대개 3000만원 정도는 써야 한답니다” “우리 삼촌은 4억 정도 쓴 것 같아요. 돈 없으면 꿈도 꾸지 마세요” 등의 답변들이 올라와 있다. 장로직을 돈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장로에 올라가기까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란다. 이는 정치인과 비슷하다.

돈이 없어 장로의 꿈을 포기했다는 김동석씨는 “월급의 10분의 1을 내는 십일조만으로는 교회에서 눈에 띄일 수가 없다”면서 “각종 감사헌금, 기념일 헌금 등 많은 돈을 내고 교회신축을 할 때 거금을 내놓거나 평소 신도들 경조사에 꼬박 돈을 내고 가정방문에도 밥값이나 차비를 내줄 형편이 되어야 장로가 된다는 게 교계의 공공연한 진리”라며 허탈해했다. 모태신앙이라는 이장호씨는 “전에 다니던 교회 목사님에게 내가 많은 돈을 낼 형편이 못된다고 하자 ‘하나님으로부터 (부자가 될)은혜를 못받은 분은 장로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해 교회를 옮겼다”고 했다. 물론 일부 부도덕한 목사들의 발언이긴 하다. 장로가 되었다는 기쁨을 돈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문제다. 거액의 감사헌금은 물론 특급호텔에서 장로 취임식을 열며 결혼식때 축의금 거두듯 지인들에게 돈을 받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염치없는 장로도 있다.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에 활동비 등 돈을 써도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대부분 투표로 이뤄지는 장로 선거에서 선출되기 힘들어 교인 하나하나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소망교회의 경우에도 선거날 투표인의 3분의 2가 선택한 후보만 당선되는 것이 규정이어서 45명 가운데 1명만 선출된 것. 그야말로 신앙심과 봉사활동과 돈과 호감을 주는 매너까지 다 갖춰야 ‘장로’가 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오랜 기간과 돈, 봉사시간을 투자해도 떨어지는 아픔을 감수하며 ‘장로’가 되려는 이유는 뭘까. 교인으로서 가장 최고의 지위에 올라 봉사와 섬김의 그리스도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상식적인 정답이긴 하다.

그러나 ‘장로’가 되면 개인적 명예와 보람은 물론 실질적 이득도 많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회와 관련된 사업을 맡아 개인적 치부를 한 장로들도 많고, 규모가 작은 교회의 경우 마음에 들지 않는 목사를 바꾸거나 교인들을 규합해 교회를 따로 나가 세우는 이들도 많다. 수시로 교세를 확장하고 성전을 크게 짓고, 수만명의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담당하는 교회에서는 어지간한 기업체보다 더 많은 예산이 집행되고 사업들이 이뤄지는데 ‘장로’의 입김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대통령 선거나 총선에서처럼 목사나 장로가 예배나 교회 모임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공공연히 홍보하는 ‘정치적 개입’도 한다.

하지만 장로들이 자신들의 소명의식을 바로 알 때 교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한 진정한 ‘파워 엘리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 실천하도록 만드는 데도 장로의 역할은 막중하다. 또 사생활이나 여러가지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목사들에게 주의를 주고 목사직을 박탈하게 하는 것 역시 장로의 책임이다. 목사가 잘못을 저지르면 장로들이 중심이 되어 성도들의 서명을 받아 노회에 제출하면 노회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데 장로들의 영향이 가장 강하다.

사실 얼마전까지 소망교회는 장로들과 목사들의 갈등이 심했다. 77년 소망교회를 만들어 소망교회의 얼굴로 알려진 곽선희 목사의 은퇴와 후계자 문제로 장로들의 반발과 고소가 잇달았으며 현 김지철 목사를 지지하는 장로들이 2007년 5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인 인명진 목사를 업무상 횡령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인 목사가 아니라 전임인 곽선희 목사를 겨냥한 사건이란 소문과 함께 교회 안팎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이명박 장로의 대통령 탄생과 더불어 교회가 일치단결해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망교회만이 아니라 대형 교회에선 ‘장로’들이 중심이 된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원로목사 지지파와 담임목사 지지파가 서로 갈려 싸움을 벌인 서울 송파구 광성교회는 한때 수만명의 교인이 등록된 대형 교회였으나 2년간 분규가 계속되며 교회도 나뉘고 교인수도 수천명으로 급감했다. 75만여명의 신도와 1500여명의 장로들이 있는 순복음교회 역시 조용기 목사의 은퇴와 재정비리 의혹 등을 장로들이 문제삼아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하지만 장로들 역시 원로장로파와 신진장로들로 나뉘어 한 목소리를 못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목사보다 장로의 발언권이 더 셀 때도 있다. 교회 인근에서 사업을 크게 하며 교회를 세운 한 장로는 교회 신도들 역시 대부분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 직원, 거래처 사람들이어서 교회 직원을 자기사람으로 교체하거나 전화를 도청하고 목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쫓는 등의 만행을 일삼다 기독교단체에 고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협회’의 장로섬김수련회에서는 일부 장로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과 함께 ‘장로 때문에 교회가 10년간 고생한다’ ‘장로가 되면 3년 만에 은혜가 마른다’ 등 교계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나와 장로 성토장이 되기도 했다. 기독교 인터넷신문 ‘뉴스앤조이”의 김종희 전 대표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목사들의 권한이 너무 크다는 것과 더불어 목사와 장로의 싸움을 한국교회를 해치는 행위로 꼽는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전국장로회연합회의 박래창 회장(65·소망교회)은 “엘더(장로)스쿨을 만들어 장로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기관을 만들겠다”고 했다. 박 회장은 “장로들이 교단 화평을 위해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언제부터인가 교회 노회 총회 때마다 크고 사소한 충돌이 많았다”며 “2만4000여 시무장로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장로 위상을 재정립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통령도 잠시, 그리고 목사도 임기가 있지만 장로란 직함은 영원하다. 하지만 장로건 정치인이건 ‘자신을 낮추고 교인과 국민을 섬기는 것’이란 걸 안다면 국회의원이나 장로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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