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과의 작업 소중한 추억”

전주영화제 찾은 佛 드니 라방

까치집 머리에 들개의 예리한 눈빛, 남루한 옷차림은 노숙자나 다름 없어 보였다.

사진제공|전주국제영화제

사진제공|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속에서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이미지의 드니 라방(46)은 절망 속에서 빛을 갈구하는 1980년대 중·후반 프랑스 영화의 얼굴이었다.

프랑스 배우 드니 라방이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 참석차 전주를 찾았다. 한국방문은 처음이다. 이번 전주영화제에는 소설 ‘모비 딕’에서 영감 받은 그의 출연작 ‘캡틴 에이헙’(감독 필립 라모스)이 국제경쟁부문작으로 상영된다.

라방은 레오 카락스 감독과의 작업으로 유명하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나쁜 피’(1986)는 80년대 영화광의 교과서 같았고, ‘퐁네프의 연인들’(1991)은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김기덕 감독의 초기작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에 출연해 한국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작업하는 데 하루밖에 시간이 없었어요. 짧은 일정이라 대화를 할 틈도 없었지만, 분위기만으로도 소통이 잘 됐어요. 소중했던 추억입니다.”

카락스 감독과의 인연을 묻자 이야기가 길어졌다. “카락스는 날 영화계로 이끌고 배우로서 나의 가능성을 단련시킨 사람입니다. 그가 훌륭한 감독이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그러나 카락스가 프랑스에서 새로운 작업을 할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만든 ‘폴라 X’(1999)가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공개를 앞둔) ‘도쿄!’는 일본에서 작업한 영화거든요.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찍을 때 전 20살, 카락스는 21살이었어요. 사실 우리 관계를 우정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작업하지 않을 때는 거의 만나지 않았습니다. ‘도쿄!’를 계기로 우리 관계가 20여년 만에 우정으로 발전할 것 같습니다.”

한때 프랑스 영화계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강력한 대항마로 여겨질 만큼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최근엔 1960년대 장 뤽 고다르, 80년대 레오 카락스에 비견할 만한 감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 시대는 정치,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중과 만나는 영화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 영화,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는 영화입니다. 예술가는 시대에 앞서 성찰해야 합니다. 제가 카락스와 작업한 이유도 그가 우리 시대의 비전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라방은 관객과 교감하는 연기를 즐기기 때문에 자신의 본업은 연극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다른 상업영화 배우처럼 경력이나 돈을 위해 영화에 출연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거친 외모와 달리 우아하고 지적인 체취를 풍기던 그는 40여분의 기자회견에서 단 4개의 질문밖에 받지 못할 정도로 유장한 답변을 내놓아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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