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구중서 신임 이사장

2010.03.01 18:33 입력 2010.03.01 23:26 수정

“정권은 임기가 있지만, 민주주의와 문학·예술은 영원합니다”

“문학은 길고, 정권은 짧다.”

[경향과의 만남]한국작가회의 구중서 신임 이사장

어떻게 보면 상식적인 이 명제는 한국작가회의의 역사 속에 들어 있다. 유신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한 작가회의는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 2007년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꾸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며 연행과 투옥 등의 고초를 겪어야 했던 고은, 신경림, 백낙청, 염무웅 등의 원로 작가들이 남긴 뛰어난 문학 작품들은 한국 문학사에 깊은 족적을 남기고 세대를 초월해 널리 읽히지만, 그들을 가두고 억압한 독재정권은 스러져갔다.

최근 한국작가회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진흥기금 3400만원 지원 대가로 ‘시위 불참 확인서’를 요구하자 확인서 제출을 거부하며 ‘저항적 글쓰기’ 운동을 이어갈 것을 선언했다. 지난달 20일 한국작가회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된 문학평론가 구중서씨(74)를 만나 작가회의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작가회의 이사장으로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의연한 자세로 의연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회의는 1970년대부터 독재권력 아래서 고난의 시절을 겪어왔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별로 동요하지 않습니다.”

-지난 총회에서 예술위의 확인서 제출 요구와 관련해 격론을 벌이셨습니다. 총회 분위기는 어땠나요.

“작가회의의 원로 및 중견 문인들은 70~80년대 수사기관에 연행되고 투옥당하는 일을 겪으며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중견 이상의 회원들뿐 아니라 후진 작가들도 선배들과 같은 정신과 역사의식을 갖고 작가회의에 들어왔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퇴보한다고 생각하면 참기 어렵습니다. 총회에 참석한 전원이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있는 현 상태에 대해 저항감을 많이 표출했습니다.”

-선생님은 작가회의의 출발부터 함께해오셨는데요, 지난 역사를 돌아보시면 어떻습니까.

“작가회의는 처음부터 관변의 지원을 받거나 협조하는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유신독재 시절에 수난을 겪으면서 자생적으로 양심의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정열을 갖고 형성된 단체입니다. 고은, 신경림, 백낙청, 염무웅, 이시영 등의 문인들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시작했는데, 말할 수 없는 억압 체제 속에서 이 나라를 민주화해야겠다는 열망이 어떤 사회단체나 분야보다 강했죠. 민주화운동의 대열에서 선봉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과 행동으로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제3세계 문학의 일환으로 한국 민족문학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서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었고, 세계화 시대 이후 민족이란 이름이 국수주의로 오해될 우려가 있어서 2007년 말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정부 지원금이 끊어진 상태에서 작가회의를 운영하는 데 부담이 크실 것 같습니다.

“작가회의는 원래 맨손으로 시작해 가난하게 단체를 운영해왔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일을 의연하게 해나갈 것입니다. 상식과 예의에 어긋나는 요구에는 절대로 응할 수가 없죠. 지원금은 작가회의가 사단법인이 된 1996년부터 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받았는데 그 후신이 현재의 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뀐 이유는 관변적 인상을 벗고 자율기관처럼 불간섭 원칙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표방한 원칙과 정반대로 인사 문제에서부터 간섭을 강화해서 김정헌 위원장의 중도사퇴 등이 일어났죠. 법에 의해 해고가 위법하다고 결론이 났는데도 복직시키지 않고 법을 준수하지 않는 행태로 독주하는 것입니다. 시위에 참여하면 지원금을 환수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요구했는데 이것은 한국의 대표적 문학 단체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인격적 모욕인 것이죠.”

-최일남 전 이사장을 통해서 원로 작가가 익명으로 3400만원을 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부의 확인서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고 밀어붙이는 것과 회원들의 기부 등이 이어지는 것이 작가회의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최일남 선생님을 통해 전달해왔고, 익명을 요구해서 그 원로 작가가 누군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정권의 위협적 확인서 제출 요구를 거부한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기부를 해왔습니다. 그 외에도 1000만원을 기부해 온 의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작가회의의 힘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 역행에 대한 우려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원래 집권의 개념이 아니고 봉사의 개념인데, 현 정권이 승자독식 의식으로 일방적으로 독주하고 있습니다. 대화란 승패가 없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죠. 그런데 현 정권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고 승자독식을 하려 드니 민주주의가 파탄에 처하고 있습니다. 장차 집권 세력에도 자승자박으로 이롭지 않은 결과가 올 수도 있습니다. 정권에는 임기가 있지만, 민주주의와 문학, 예술은 영원합니다.”

-작가회의는 출발부터 정치·사회와 밀접한 연관을 맺었습니다. 문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학은 당연히 사회에 참여돼 있는 것으로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죠. 작가의 언어와 경험이 다 역사와 현실에서 받은 것입니다. 언어 자체가 진실된 소통의 수단이고, 그래서 존재와 만나는 것이 언어입니다. 문학은 좋은 언어로 사회를 인간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발전한 상태에서 이제 경제입국이 아닌 문화입국을 해야 할 단계입니다. 문화입국을 통해 정치적인 비민주화 현상, 경제적 부의 편재 등 비인간화 현상도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서 쓰여야 할 국민의 세금을, 정신적 가치의 발전을 위해 잘 써달라고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제의 수단으로 위협을 가하듯 다루는 것은 아주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한 해는 작가회의가 여러 사회적 발언들을 많이 했던 해인 것 같습니다. 용산 참사가 있었고, 전직 대통령들의 죽음이 잇따르면서 정권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또 젊은 작가들이 중심이 된 ‘작가선언 6.9’가 만들어져 발언하는 등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 원칙을 거스르고, 억압적이고 비인간적 상황에 대해 동참하고 위로하고 작품화하는 것은 문학의 당연한 사명입니다. 문학은 나아가 문제적 상황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외연적 현실과 함께 인간의 깊은 내면까지 총체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문학이 하는 일은 획일적이고 도식적인 게 아니라 인간본성과 사회질서를 총체적으로 다뤄내는 게 문학입니다. 그것이 작가회의의 리얼리즘 정신을 계속 견지하는 것입니다.”

-고은, 신경림 시인 등 원로 작가분과 현 상태에 대한 대화는 나누셨나요.

“자주 보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옛날에 더 심한 일을 많이 겪어서 이 정도는 일도 아니라고 농담을 합니다. 논어에 ‘예의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의가 아니면 상대해서 언급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좋은 언어로 문화예술 창작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을 합니다. 잘못된 일에 대해 당사자들이 성찰도 하고 고치자고 할 수 있는건데 이런 것을 전혀 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자업자득, 사필귀정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대로 정대하게 작업하고 발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인촌 장관이 확인서 요구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고 하고,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사과를 하기도 했는데요. 변한 것은 없습니까.

“유인촌 장관도 불법 시위단체에 지원금을 지급 안 하는 게 원칙이라면서 확인서 요구는 방법론적으로 잘못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방법론이 아니라 원칙이 잘못된 것이죠. 그런 사과는 형식적인 것이고, 원칙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해결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저항적 글쓰기 운동을 벌이기로 하셨습니다. 앞으로 작가회의 운영 계획이 있다면요.

“총회 당일 158명의 회원들이 저항적 글쓰기에 동참하기로 했고, 나머지 회원들이 더 참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항적 글쓰기란 역사에 역행하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문학적 화법으로, 인간다운 사회의 구현을 위해 발언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독자들이 동감하고 동의할 수 있다면 좋겠죠. 정부 지원금뿐 아니라 기업 등 외부의 재정적 지원이 끊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계간 문예지 ‘내일을 여는 작가’ 봄호를 찍지 않기로 했습니다. 회원 회비 납부를 늘리면서 향후 사업 계획을 세울 작정입니다. 경제적 상황이나 형식에 상관 없이 좋은 언어로 글을 써서 사회에 남기는 작가회의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나갈 것입니다.”

▲구중서는

문학평론가인 구중서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1936년 경기 광주 출신으로 중앙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3년 ‘신사조’에 ‘역사를 사는 작가의 책임’을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한 이래 당대 현실과 밀착한 문학정신을 주창해왔다. 현재 수원대 명예교수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을 역임했다. <민족문학의 길> <분단시대의 문학> <자연과 리얼리즘>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88년 요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김수환 추기경의 평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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