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이 제주대 교수

2010.03.29 17:57 입력 2010.03.29 22:55 수정

“소외층만 지원 선별적 복지로는 사회 양극화 해소 불가능”

‘복지’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각 정당들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노인복지 등 복지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친환경 급식 등 복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내놓은 “복지 확충을 넘어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의제는 더욱 도발적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최소한 삶을 보장하는 시혜적·잔여적 복지가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복지를 적극적·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유시장과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하면서 사회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복지국가의 원리로 4가지를 제안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출생에서 사망까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대·강화를 가져오는 적극적 복지, 공정한 기업질서와 연대적 조세제도 등 공정한 경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노동의 유연 안정화 같은 혁신적 경제를 포함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지난 15일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출판기념회와 함께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 제안 행사를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공동대표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46)를 지난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복지국가론을 들어봤다.

-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경향과의 만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이 제주대 교수

“2007년 1월 민주정부 10년 동안 사회정책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전문가 그룹들이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모였다. 양극화,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는 등 복지 요구가 폭증했다. 복지 예산은 늘었지만 복지는 개선되지 않았고, 민생 안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 모두 늘어나면서 근본적 문제를 찾아볼 필요가 있었다. 결국 복지 확충만으로는 안되고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여 6개월을 준비해 <복지국가혁명>이라는 책을 2007년 7월에 냈다. 그러면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출범했다.”

- 왜 복지가 문제인가.

“우리 사회에서 회자된 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어렵게 사는 이들에게 국가가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시혜적 복지였고, 가정과 정상적인 사회구조, 시장을 통해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만 제공하는 잔여적 복지였다. 자산과 소득을 조사해 소외층을 골라 생계를 보장해주는 선별적 복지였다. 하지만 이를 갖고는 신자유주의와 그로 인한 양극화를 해소하기는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넘는 프로젝트가 필요해졌다. 사회구성원 그 누구에게도 상향 평준화한 양질의 복지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는 게 우리 구상이다.”

- 역대 정부와 현 정부도 복지를 확충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국민건강보험제도 창설, 장애인 복지 확충 등 ‘복지 대통령’이라고 불려도 마땅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 제도를 정착시켰다. 보육, 아동 복지를 키웠고, 복지 예산도 매년 10% 이상 늘렸다. 하지만 두 정부 모두 온정적이고 잔여·선별적 복지에 머물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상대적으로 축소됐다. 복지 예산 등 절대적 공급은 늘었지만, 복지 수요의 자연적 증가분도 따라가지 못한다. 저출산·고령화 때문에 복지 수요는 자연발생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를 더 강화했음은 물론이다.”

- 결국 역동적 복지국가가 되려면 세금을 올려야 하지만, 우리 국민은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국가에 대한 국민 감정은 두 가지가 양립한다. 월드컵 축구나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시합을 보면서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등 애국심이 매우 강하다. 반면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불신이 더 크다. 세금을 걷어가면서 간섭이나 하고, 애도 마음대로 못낳고,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불만이다. 노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럴 때 내 세금이 나를 위해 쓰인다는 인식을 명백하게 확인시키면, 증세 거부감도 줄어들 것이다. 중산층도 변하고 있다. 과거 ‘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 적용되지 나와 상관없다’고 인식했다. 그러나 중산층 자체가 축소되고 하향하면서 삶이 불안해졌다. 이에 ‘양질의 복지 서비스를 우리에게도 달라. 시민의 권리다’라는 인식이 자리잡히고 있다. 등록금 후불제, 무상급식 등은 중산층의 복지 욕구에 대한 정치적 응답이다.”

- 무상교육 논란도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제고에 역할을 한 것 같다.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다. 의도했든 안했든, 선별적이지 않고 보편적으로 무상 급식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추진한 것이다. 그게 보편주의의 핵심이다. 집권층은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대응하지 않다가, 호응도에 놀라면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는 철학적 배경이 있다. 선별급식이라는 저지선이 무너지면 연필, 필통, 준비물 같은 부교재도 지방정부가 줘야 하고, 보육도 무상으로 해야 한다. ‘아픈 게 죄냐’면서 무상의료도 해달라고 할 것이다. 선진화 담론자들은 이를 두려워해 사회주의,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 무상급식을 바라보는 진보·개혁 진영도 입장 차가 있다.

“무상급식을 보편주의 관점에서 보는 측과,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보는 이들이다. 의무교육의 일환이라는 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런 논리로는 복지의 ‘선별·잔여주의 대 보편·적극주의’의 담론이 아니라 ‘의무교육의 완전성 대 불완전성’의 대결 구도가 된다. 보편주의 담론을 펼쳐야 향후 무상보육과 무상의료 등 시민권 문제로 갈 수 있다.”

-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현 상황에 대해 진보진영의 무능을 비판해왔다.

“진보정당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도 내놓은 구호가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를’이었다. 계급주의에 철저한 정당에 맞는 구호였으나, 이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능동적 복지’와 다를 게 없다.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에서 발생하는 민생 불안을 해소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찍어줬다. 이제는 바뀌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모두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한다.”

- 복지를 말하면서 경제부문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 성장과 분배, 경제와 복지는 대립 개념으로 봤다. 진보는 분배를 우선시했고, 보수는 성장을 통해 복지 공급을 꾀했다. 우리는 이 개념을 거부한다. 복지와 성장은 한몸이다. 교육에 예산을 더 투입해 GDP 7% 수준으로 올리면 공교육을 완전히 현대화할 수 있다. 공교육 안에서 특기·적성교육이 가능하고 대학도 다 바꿀 수 있다. 그럼 양질의 교육 기회가 온다. 이게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보육, 의료 복지가 제대로 이뤄지면 인적 자본을 튼튼히 할 수 있다. 현재 시장 만능의 질서에서 주요 정책의 의사결정이 대기업, 특히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를 정치와 사회 통제권 안에 넣어야 한다. 공정하고 혁신적 경제가 구현돼야 보편적이고 적극적 복지가 가능해진다고 보는 근거다.”

- 복지국가의 이상적 모델로 북유럽식 사민주의 국가들이 꼽히는데.

“대표적 사례가 스웨덴이지만, 우리와 국가의 토대, 경제·사회·문화 등이 다르기 때문에 답습할 수 없다. 우리 현실에 맞는 토종형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 의료제도는 정부가 병원을 짓고 의료비도 정부가 조달하는 완전 공공 서비스다. 하지만 우리 병원 중 93%가 민간병원이다. 이 상황에서 스웨덴이 달성한 목표까지 가려면,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금 보장성(의료비 중 본인 부담을 제외한 비율) 수준이 62%밖에 안되는데 유럽은 90% 수준이다. 국고 지원을 늘리고, 기업과 국민도 보험료를 더 내서 건강보험 재정을 늘려야 한다. 그럼 민간 의료 시스템이지만, 그 속에서도 건강보험만 갖고 마음껏 진료받을 수 있는 게 가능해진다.”

- 향후 주요 목표와 활동 방향은.

“우선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시민단체이기도 하지만 싱크탱크다. 정책위원으로 참여하는 100여명의 전문가 그룹을 확대하고, 상근 연구진도 늘릴 예정이다. 두번째는 교육이다. 지금까지 지방을 돌면서 정책 아카데미를 해왔는데, 이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시민과 만나 복지국가를 향한 시민정치운동을 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치가 재구성돼야 한다는 점에서 조언자 역할을 하겠다.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정치세력의 탄생,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도 간판을 복지국가로 내세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보수의 ‘선진화’ 담론을 넘어설 수 없다. 이처럼 정치세력이 복지를 놓고 경쟁하면서 연합해야 한다. 시민사회운동과 정치의 재구성을 통해 위 아래가 조응케 해야 한다.”

▲이상이 교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의학박사이자 예방의학 전문의다. 내과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되려고 했으나, 서울대 의대 김용익 교수로부터 보건의료 정책을 공부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방향을 틀었다. 학자에 머무르지 않고 의료보험 통합운동을 벌였다. 의료보험 통합 관련법은 1989년 국회를 통과했으나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 통합은 10여년 뒤에나 이뤄졌다. 김대중 정부 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입법 및 의약분업 시행에도 관여했고, 노무현 정부 때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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