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2011.02.27 20:54 사진·글 강윤중 기자

상처 위에 다시 싹틔운 웃음꽃

<b>“누렁아, 고맙다”</b> 북한의 포격 이후 연평도를 떠났다가 석달 만에 돌아온 최남식 할아버지가 그간 홀로 집을 지키고 있던 ‘누렁이’와 입을 맞추다 밝게 웃고 있다. 누렁이는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에게 강아지 세 마리를 낳아 선물했다. 할아버지는 포격 이전의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누렁아, 고맙다” 북한의 포격 이후 연평도를 떠났다가 석달 만에 돌아온 최남식 할아버지가 그간 홀로 집을 지키고 있던 ‘누렁이’와 입을 맞추다 밝게 웃고 있다. 누렁이는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에게 강아지 세 마리를 낳아 선물했다. 할아버지는 포격 이전의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봄바람이 살랑 불면서 북한의 포격 이후 연평도를 떠났던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인천 옹진군 연평리 마을에서 만난 최남식 할아버지(81)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던 ‘누렁이’를 연방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버려두고 급히 섬을 떠났다가 석 달 만에 돌아와 보니, 어디로 가버리지도, 굶어 죽지도 않고 할아버지를 반겼다고 한다. 게다가 그간 앙증맞은 강아지 세 마리를 낳아 할아버지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있었다. 피란생활 동안 김포 양곡의 아파트에서 임시 거주했던 할아버지는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어. 내 집이 제일 좋더라고. 돌아온 첫 날은 불안해 잠을 못 잤지. 이틀, 사흘째부터는 나아지더라고.”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연평도로 돌아온 지 일주일된 할아버지는 포격 이전의 평온한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b>“얘들아 어서 오렴”</b> 연평초등학교 한상준 교사가 개학을 앞두고 교실 청소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방과후 수업 중 포격 소리에 놀라 아이들과 함께 대피소로 피했던 다급한 순간을 회상했다.

“얘들아 어서 오렴” 연평초등학교 한상준 교사가 개학을 앞두고 교실 청소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방과후 수업 중 포격 소리에 놀라 아이들과 함께 대피소로 피했던 다급한 순간을 회상했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되는 박병환군은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임시주택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흔적이 없어진 집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어요. 무섭지만 어떡하겠어요. 돌아왔으니 공부 열심히 해야죠.” 가족과 함께 김포에 머물다 지난 18일 섬으로 돌아온 박군은 또래보다 어른스러웠다. “임시주택이 좁고 불편하지만, 고향 연평도가 김포보다 나아요. 집이 빨리 복구됐으면 좋겠어요.”

<b>그래도 삶은 계속된다</b> 아이들이 포격으로 불에 타 뼈대만 남은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지만 포격의 상처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아이들이 포격으로 불에 타 뼈대만 남은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지만 포격의 상처는 도처에 널려 있다.

쓸쓸하고 적막했던 섬은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피란생활의 고단함과 걱정이 어려 있던 얼굴은 객지에서 그리던 고향 땅을 밟은 뒤, 하루하루 지나면서 점차 여유를 찾는 듯보였다. 집안의 묵었던 때를 벗겨내고 어질러져 있던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외벽과 담장에 새로 페인트칠을 하는 등 하루해가 짧다. 썰렁했던 학교운동장과 인적이 드물었던 골목에 끼리끼리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웃음이 흘러들었다. 바닷물이 빠지자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밀고 갯가로 나가 굴을 땄다. 지난 겨울동안 손을 타지 않은 터라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 소쿠리를 묵직하게 채웠다. 항구에는 어민들이 배를 점검하고 통발과 부표 등을 손보며 봄 꽃게잡이 준비에 분주하다.

<b>‘봄’을 칠하는 그림자</b> 한 주민이 포격의 충격에 균열이 생긴 벽을 꼼꼼히 메운 뒤, 그 위에 ‘봄’의 색인 노란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연평도로 돌아온 주민들은 집안 곳곳을 손보는 등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봄’을 칠하는 그림자 한 주민이 포격의 충격에 균열이 생긴 벽을 꼼꼼히 메운 뒤, 그 위에 ‘봄’의 색인 노란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연평도로 돌아온 주민들은 집안 곳곳을 손보는 등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수공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인부들이 동원돼 무너진 담을 다시 쌓고 깨지고 뒤틀린 창을 새로 갈아 끼우고, 겨우내 얼었던 보일러와 수도관 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마을을 채우던 망치소리가 잦아들자, 연통에 연기를 피워 올린 집마다 저녁을 준비하는 칼질 소리가 완연한 봄 공기에 떠다녔다. 식당, 민박집 등이 하나둘 다시 문을 열고 본격적인 손님맞이를 준비 중이다. 집과 골목에 오랜만에 켜진 등이 연평도의 밤을 환하게 밝혔다.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불타고 찢겨 폐허로 남은 포격 현장과 그 흔적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주민들이 겪었던 공포와 아픔 또한 일상 속에서 때때로 출몰할 것이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을 건너온 연평도. 포격의 상처를 안은 채 주민들은 다시 예년의 풍성하고 희망찬 봄을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b>할머니들의 콧노래</b> “고향 연평도가 제일 좋다”는 할머니들이 갯가에서 딴 굴을 유모차나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다리 위로 해병대원들이 구보를 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콧노래 “고향 연평도가 제일 좋다”는 할머니들이 갯가에서 딴 굴을 유모차나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다리 위로 해병대원들이 구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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