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는 혼란스럽고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 3·11 대지진이라는 미증유의 국란에 이은 위기, 대전환의 시기에 봉착했으나 국민과 함께 이에 맞서야 할 정부의 힘, 국회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멜트다운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 사태의 중심에는 간 나오토 총리 문제가 있다. 간 총리는 사퇴 의사 카드를 내밀어 불신임 결의안을 부결시켰다. 민주당이나 정부 각료들과도 동떨어져 독자적으로 행동, 본인이 설정한 퇴진 3조건을 추진하고 있다. 그 첫째 조건인 제2차 보정(추경)예산안은 이미 통과됐다. 지금은 둘째 조건인 재정적자 해결을 위한 국채발행법안이 초점이 되고 있다. 세 번째 조건은 전력회사의 전력 매입 의무를 규정한 재생가능 에너지 법안이다. 보수파가 이에 반대하지만 자연 에너지 발전에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는 이상 이 역시 여름이 끝날 즈음엔 가시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9월에는 간 총리가 퇴진할 것임이 틀림없다.

간 총리가 무대를 내려온 후 정치적 위기가 극복될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 영구집권당 자민당은 정치적 책임 능력을 잃어버린 채 총리에 대한 공격만 반복하고 있는 꼴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하토야마, 오자와, 간이라는 세 거두가 모두 좌절해 소속 의원 모두가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 어디에서도 새로운 정치 이니셔티브가 나오지 않는다. 이 같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일본은 더욱 더 고심해 새로운 정치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와다 하루키 칼럼]동북아 안전공동체를 향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현재 일본은 4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대지진, 원전사고 피해의 책임 문제다. 정부는 원전사고와 관련,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고조사검증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지진의 피해 확대 및 원전사고 등 이번 재난의 모든 원인에 대한 조사를 벌여 기관 및 개인을 특정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둘째는 피해 복구와 부흥이다. 이오키베 마고토 위원장이 이끄는 부흥구상회의는 이미 답변을 제출,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예산은 제3차 보정예산에서 뒷받침될 전망이다. 복구 속도에 대한 현지의 불만, 지자체와 국가 간 관계, 정부의 정보 은폐 등 다양한 문제가 존재하지만 큰 흐름은 잡혔고 추진되고 있다고 본다.

세 번째 사안은 전력, 에너지 문제에 대한 기본방침이다. 원전사고 대응, 수습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아울러 가동 중지된 원전의 재가동 문제, 여름철 전력부족 대책, 에너지 정책의 대대적인 수정 문제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이게 최대 과제다.

네 번째로 3·11 대지진 이후 이웃 국가와의 관계 개선 문제가 있다.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문제, 영토 문제, 미국과의 오키나와 문제 해결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향후 에너지 문제의 기본방침을 짚어보자. 원전에 대한 일본 국민의 의식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오랜 시간 언론은 원전 반대 목소리에 등을 돌려왔다. 전력회사의 광고는 방송국이나 신문사로선 무시할 수 없는 큰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전반대 시위가 보도되지 않는 데 대한 항의 글이 신문에 실리고 언론이 시위 소식을 전하게 됐다. 2000년에 숨진 원전 반대론자 다카기 진자부로의 생애가 TV로 소개되기도 했다. 여론조사 결과 원전을 줄여나가며 없애자는 의견이 59%(마이니치신문), 줄여나가자는 게 60%(TV아사히)에 이르렀다.

아사히신문이 7월13일자에서 두 면 반을 할애해 ‘원전 제로 선언’이라는 대형사설을 게재했다. 원자력 개발을 추진한 쇼리키 마쓰타로가 사주였고, 지금도 원전 수호의 논진을 꾸린 요미우리신문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날 저녁 간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각료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의견이었다. 각료와 논의했다면 불가능했을 언급이다. 그런 의미에서 총리의 기자회견은 아사히의 사설에 비해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그러나 총리의 기자회견 전날 아키타에서 열린 전국지사회의에서 야마카타 시가현의 여성 지사가 ‘졸(卒) 원전’ 공동성명을 냈다. 더군다나 13일 당일에는 간 총리의 맹우(盟友)가 된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이 35개 현의 지사들과 독자적인 모임을 갖고 전국 휴경지에 메가솔라 패널(태양광 발전소)을 건설해 태양광 발전을 일거에 확대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자연 에너지 추진협의회 설립을 선언했다. 경제계는 요네쿠라 히로마사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처럼 총리에게 적의를 보이는 원전 수호론이 강하지만 7월15일 경제동우회는 원전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재생가능 에너지를 지향하는 ‘축(縮) 원전’ 입장을 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두 차례의 충격적인 원전사고를 경험했으니 이런 기운이 일본에서 고조되는 건 당연하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매우 심각하다. 필자는 7월16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 떨어진 출입금지구역 히로노초의 금지선에 섰다. 이곳은 원전사고에 정면으로 맞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활거점 J빌리지 인근이다. 경계선을 지키는 경찰이 가슴에 단 방사능 계측기는 1마이크로시버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출입금지구역의 바깥을 돌아 북쪽의 후쿠시마현 이이다테무라로 향했다. 30㎞권 밖이었으나 고농도 방사능이 검출돼 사고 2개월 후 계획적 피난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아부쿠마 고지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산림업과 소사육을 주 생업으로 했다. 마을 사무소나 병원 모두 훌륭하게 지어져 사람들이 여유있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이 무인화됐다. 마을 사무소 앞의 방사능 계측기는 3.5마이크로시버트의 높은 수치를 보였다. 6500명의 주민은 마을을 떠났다. 과연 그들이 마을로 돌아오는 날이 올까.

체르노빌 사고를 분석해온 벨라루스의 과학자 마리코는 체르노빌 사고에서 퇴거한 40만명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후쿠시마 사고의 심각성은 그 누구에게도 원전에 대해 안이한 태도를 취할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 국민은 탈원전의 길로 나아가기를 말 그대로 압박받고 있는 셈이다.

그 길을 어떻게 만들까. 지금부터 진지한 토의를 이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웃 국가와의 협력, 지역 협력이다. 원전사고는 이웃 국가를 같은 운명으로 끌어들인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은 이웃 국가로 흘러, 방사성물질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지진을 당한 우리 사회가 생활을 지탱하는 데 이웃 국가인 한국, 러시아, 미국의 지원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아울러 원전사고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는 사실도 명확해졌다.

원자력발전소는 일본에 54기, 한국에는 21기가 있다. 이 가운데 일본 33기, 한국 10기가 동해(일본명 일본해)를 감싸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가 없는 한국에서도 인위적 실수에 의한 사고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모든 원전사고는 인위적 실수가 영향을 미친다. 동해 주위의 원전 43기 중 단 한 곳에서도 사고를 일으키면 이 바다는 죽음의 바다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은 원전 문제에 대해 계통적이고 지속적인 협의를 해야 한다. 우선 과제는 원전의 안전성 확보를 둘러싼 협력이다.

7월18일 도쿄대학에서 강상중 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현대한국연구센터가 주최한 심포지엄 ‘동아시아 안전 공동체를 향해-에너지 리스크 거버넌스’가 열렸다. 필자도 보고한 이 자리에 한국에서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이원근씨가 참가했다. 우리는 한·일 간 안전 협력을 동아시아의 안전 공동체로 확대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중국은 지금 13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지만 현재 30기를 짓고 있으며 여기에 23기 건설이 계획돼 있다고 한다. 중국은 지진국이다.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도 원전의 안전성을 당면과제로 생각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자연에너지에 의한 발전 방식의 개발도 동북아시아, 동아시아의 공통된 과제다. 진정한 의미의 안심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선 이 분야에서의 협력이 절실하다. 원자력발전의 시비에 대해 토론하고 공통된 장래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탈원전을 결정하고 프랑스는 원전 추진 중심국이 되며 각자의 행보를 존중하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동아시아는 한·중·일이 진지한 토론을 계속해 같은 지향점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공통된 미래와 삶,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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