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n번방법’으로도 못 막은 성착취물 범죄, 근절책 강구하라

2022.09.01 20:53 입력 2022.09.01 21:14 수정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성착취물을 만들어 유포한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또 발생했다. 지난 1월부터 수사에 나선 경찰은 지금까지 피해자가 아동·청소년 6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초등학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n번방 사건 후 유사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법이 시행 중인데도 또 범죄가 발생했다니 답답하다. 경찰은 하루속히 범인을 검거하고, 당국은 왜 이런 범죄를 막지 못했는지 점검해 재발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범죄는 n번방 사건 때보다 수법이 교묘하고 대담해졌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운다. 범인은 텔레그램에 채팅방을 계속 열어두지 않고 방을 만들었다 없애기를 반복하며 감시와 추적을 피했다. 아이디와 닉네임도 수시로 바꿨다. 심지어 여성으로 가장하거나 n번방 사건을 취재했던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를 사칭해 피해자들을 돕는 척하며 유인하기까지 했다. 법망을 피해나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짜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들이 n번방 사건 등 이전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들을 본보기로 삼아 범행 수법을 진화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이번 사건의 주범은 2020년 조주빈·문형욱 등 n번방 운영자들이 구속된 이후 범행에 적극 나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n번방 일당이 붙잡히자 그 빈자리를 노렸다는 말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당국의 엄단 의지 속에 조주빈과 문형욱이 각각 징역 42년형과 34년형을 받은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범행에 나섰다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수사당국은 잠적한 주범과 복수로 추정되는 공범들을 신속히 검거해야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1일 디지털 성범죄에 엄정히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이 사안은 범인 검거로 그칠 일이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원인을 정부가 확실히 파악해 근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 제2의 n번방 사건은 불법촬영물로 의심되는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게재를 제한하는 정도의 법규만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성착취 영상 제작·유포자뿐 아니라 이를 시청하고 소지하는 소비자들도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와 시장이 있으니 공급자가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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