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신의 사랑 언어, 추구미

2024.02.09 15:00 입력 2024.02.09 15:03 수정
정유라

[언어의 업데이트]가장 최신의 사랑 언어, 추구미

가장 최신의 사랑 언어를 좋아한다. 최고로 좋아한다는 의미의 ‘최애’, 나의 유일한 선택이라는 ‘원픽’처럼 좋아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언어들은 나를 좀 더 다정하고 선명한 세계로 이끌어준다. 최신 사랑 언어는 조금씩 달라지는 사랑의 모양과 색을 담아 태어난다.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천천히 물을 마시게 한 제스처에서 사랑을 읽어낸 인물들이 세운 나라를 우리 역사라 배우고 자란 나는, ‘내 돈을 가져가’라는 뜻의 ‘텍마머니’(TAKE MY MONEY)가 사랑의 언어임이 새삼스러워 좋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우는 요즘 ‘덕질’ 공식을 생각하면 텍마머니만큼 열렬한 사랑 고백이 또 있을까 싶어서다. 알 듯 말 듯한 미묘함도 좋지만, ‘내 돈 좀 가져가세요!’라고 호방하게 외치는 그 표현에 담긴 씩씩함을 배우고 싶을 정도다. 새롭게 익힌 사랑 언어 중 더 많은 사람의 입과 손에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추구미’다.

추구미는 ‘추구’와 ‘미(美)’를 합친 말로 추구하는 미적 이상향이나 감성을 뜻한다. 포털에 검색하면 ‘잘파 사전 등록 언어’라고 나오는 신조어지만, 특정 세대 언어로 머무르기에는 이 단어가 비추는 볕이 넓고 따뜻해 더 많은 사람이 이 단어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 추구미는 아름다움의 언어이자 사랑의 언어다. ‘김선영 배우의 하이퍼리얼리즘 연기… 완전 내 추구미!’ ‘배추랑 숙주 잔뜩 넣은 샤부샤부가 내 추구미’와 같은 식으로 사용하는데, 추구미 자리에 사랑을 넣어도 뜻이 통한다.

‘사랑해’ 대신 추구미를 사용하려면 나를 매혹하는 아름다움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 구체성의 요구가 시선의 방향과 깊이를 바꾼다.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언어로 표현하려면 세상을 향한 사랑과 나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추구미는 나로부터 시작해 좋아하는 대상을 비추는 능동적 언어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만 빛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추구미는 소유의 욕망을 앞질러 추구로서 사랑을 실천한다. 취향이 소유를 자극한다면, 추구미는 Have가 아니라 Be, 더 나아가 Do를 통해 완성된다.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 김선영 배우 수상 소감의 자신감과 진실한 떨림을, 목련나무에 보송보송 자라난 겨울눈의 우아함과 우직함을 추구한다고 더 자주 말하고 싶다. 그것이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닮고 싶어서다. 그 찬미의 마음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추구미에 대해 듣고 싶다. 내게 아름다운 것을 고민하는 건 나를 알아가는 방식이고,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말하는 고유한 아름다움의 언어가 풍부하면 세계가 풍요로워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심보르스카는 <선택의 가능성>에서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들을 더 좋아한다”고 “별들의 시간보다 벌레들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고 썼다. 세상을 골똘히 바라보고, 그에 반응하는 작가의 마음을 적었을 뿐인데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의 윤곽이 더 또렷해진다. 작가는 시의 마지막에서 “모든 존재가 그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완벽한 문장에 최신의 사랑 언어를 살짝 추가하고 싶다. ‘모든 존재가 그 자신만의 추구미를 갖고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유라

[언어의 업데이트]가장 최신의 사랑 언어, 추구미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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