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낮은 지지도와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안보·경제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윤 정부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그동안 윤 정부의 대외정책은 가치를 강조하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대외정책은 극히 예외적으로 향후 지속 가능하지 않고, 미·중 전략경쟁 시기 그 비용은 대한민국이 감당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크다.
대한민국 대외정책 전통에서 윤석열 정부는 특이하다. 흔히 좌파 정부는 이념이나 가치, 민족 등 형이상학적 어젠다를 강조하는 반면, 우파 정부는 그 허구성을 비판하고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박정희 정부가 대표적이다. 이 정부 주요 핵심 인사들의 뿌리인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부의 이념적 편향을 비판하고, “창조적 재건을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 외교”를 표방한 것과도 크게 대조된다. 윤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이 한·미 동맹 위주로 대외정책을 재편한다는 분명한 목표의식에 집착하다보니, 미국 바이든 정부가 표방하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가치중심의 대외관을 전폭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윤 정부의 대외정책은 미국이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이고, 미국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시대정신이고,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국은 이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이러한 전제하에서는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국에 편승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1990년대 초반 탈냉전 시기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주장한 “역사의 종언”에서 보여준 세계관과 흡사하다. 그러나 후쿠야마가 곧 자신의 주장을 수정했듯이, 세계는 생각보다 다차원적이고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 한·미 동맹에만 몰두
바이든 행정부조차 이젠 역사적 낙관주의와 이분법적 세계관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중 압박은 지속하지만 ‘탈동조화’ 대신 ‘위험회피’ 전략으로 선회했다.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중·러를 위시한 동방, 과거 제3세계 국가들을 통칭하는 남방(Global South)으로 다극화되고 있다. 그 내부적으로는 구심력 대신 원심력이 강화되고 분화 중이다. 서유럽은 미국에 대해 보다 자율성을 추구하고 있고, 일본은 미·일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실리적 접근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러는 상호 전략적으로 협력하면서도, 상대의 주도성을 허용하지 않으려 견제하고 있다. 중국의 남방국가 정체성에 대해 인도는 도전하고 있으며, 브라질, 인도, 중국 등은 각기 국익 최대화를 위해 각축 중이다. 미·중 전략경쟁의 성패는 이들 남방지역에서의 경쟁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금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미국은 대외정책에 가치를 강조하는 대신 일방·보호주의와 실리중심적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퇴조 현상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치중심 외교는 남방에서 점차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분할과 각축의 시대에 통상국가이면서,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 동방과 서방 세력의 단층선이자 파쇄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안보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시대어가 되어버린 ‘경제안보’는 경제를 안보적인 각도에서 재해석한다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안보 개념보다는 경제가 더 안보로 등치되는 시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전통적인 의미의 안보 개념에 치중하는 안보우위의 사고로는 새로운 도전에 대처하기 어렵다. 민족국가 시대에 상위의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국제관계에서 전통적인 최종 해법은 전쟁이었다. 현대에도 전쟁 억지력은 중요하지만, 국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활용하기엔 비용도 크고 비효율적이다. 영토와 주권 존중의 유엔 원칙도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이 최근 ‘남북한 양국론’을 들고나오는 속내이기도 하다. 러시아와 같은 현상변경적인 강대국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국지전적인 성격을 띠고, 러시아는 이를 전쟁 대신 특수작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을 대신해 경제력과 과학기술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국익 위한 외교·경제적 접근 필요
국력의 핵심 지표로 부상한 경제·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위해, 외교적 지혜와 역량의 강화는 정권의 평가를 좌우할 사안이 되었다. 최근 한국 정부들이 보여준 국제정치의 이해 수준과 외교에 대한 홀대와 무지는 깊이 우려할 정도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윤석열 정부 시기 가치와 이분법적인 세계관의 강조는 실제 안보와 이익을 조화시켜야 하는 국가이익과는 괴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질서의 주요 행위자인 중국 및 러시아와 대립각을 넘어 충돌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래 발전 동력인 남방국가들에 대한 접근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지난 엑스포 부산 유치 경쟁의 최종 결과인 29표 참패는 남방국가들에 대한 한국 외교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최근 발생한 중국, 호주 대사 관련 불미스러운 일들도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깊은 우려의 근원이다.
러시아와 밀착한 북한은 점차 생존력을 강화하고 대한민국 안보를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는 더 이상 실제적인 외교 사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현 상황에서 북한은 더욱 안정화되고, 위협이 될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해 기존의 억제지향적인 정책 대신 새로운 외교·경제적인 접근법을 모색할 것이다. 트럼프가 등장한다면 한국 외교는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빠질 수도 있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금융패권 전략 대신 새로운 산업 역량을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에서 대만의 제조업 핵심 역량은 일본이, 한국의 역량은 미국이 확보하는 신가쓰라·태프트 분할 전략도 가능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미국과의 동맹 강화 정책은 옳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 생존에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보다 유연하고 실리적인 외교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총선을 계기로 과감히 정책 전환을 단행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국익은 강대국의 시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으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국제정치의 가장 기초적인 주장을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