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커피 한 잔에 섞인 잔혹과 불평등… 그러한 이유로 ‘달콤씁쓸’한 걸까

2013.11.29 20:40

▲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642쪽 | 2만3000원

책은 과테말라 산 마르코스 지역의 커피 농장에서 출발한다. 미국 전업작가인 저자 마크 펜더그라스트는 2009년 개정판(초판 1999년)을 쓰면서 이곳을 찾았다. 저자가 목격한 불평등의 풍경은 여전했다. 왜소한 여인들이 자기 몸무게의 갑절은 될 법한 무거운 커피 자루를 끌고 다녔다. 아이들은 여덟 살부터 수확 일을 돕는다. 캄페시노(농장 노동자)들이 일 때문에 종종 아이들을 결석시키다 보니, 과테말라의 방학은 커피 수확기와 일치한다.

[책과 삶]커피 한 잔에 섞인 잔혹과 불평등… 그러한 이유로 ‘달콤씁쓸’한 걸까

빈부격차가 현격한 과테말라에서 토지 분배는 편중돼 있다. 가장 힘든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정작 그 이익을 가져가지 못한다. 저자는 일꾼들을 보면서 문득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수확된 생두가 가공을 거친 뒤에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서 이곳 과테말라 노동자들은 상상도 못할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다니….” 유럽과 미국, 일본 같은 나라의 시민들은 아침 식탁이나 사무실, 호화로운 커피전문점에서 고된 노동을 감당하는 농장 노동자들의 하루 수입(3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저자는 “그렇다고 이 드라마에서 한쪽을 ‘악인’으로, 또 다른 쪽을 ‘희생자’로 분류한다면 그건 불공평하지 않을까? 사실 이와 같은 스토리에 얽힌 모든 것이 그렇게 간단히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커피의 역사와 현재는 복잡다단하다. 논란과 정략으로 점철되어 있다. 과테말라만 해도 커피는 불평등의 상징이면서 생활고에 버둥거리는 가족농들에겐 생존을 위한 중요 환금 작물이다. 원주민과 농민에 대한 탄압과 강탈, 외국시장 의존을 불러오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는가 하면, 산업화와 현대화의 근간을 이루기도 했다.

‘음식’으로서 커피는 달콤쌉쌀한 향으로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카페인이 든 나쁜 음료로 비난받는다. 커피는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의학, 경제학에 걸친 분석 대상이다. 저자는 “학문 간 상호 연결성이 대단해서 세계 경제를 형성해온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수단”이라고 말한다. 책은 커피를 중심으로 각국의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커피의 양면을 이야기하지만 주된 관점은 잔혹과 불평등에 맞춰져 있다. 그것은 편향이라기보단 실제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를 다룬 이 책에서 과테말라는 ‘잔혹’에 들어맞는 역사를 가진 국가다. 과테말라에서 커피는 인디언 원주민들을 여전히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잔혹사에서 커피가 ‘학살자의 자금’으로도 쓰인 것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말 아프리카 사람들은 극심한 부패, 압제 정권에다 높은 커피 가격이 한 데 맞물려 고통받았다. 30만여명을 학살한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을 지탱한 자금은 커피에서 나왔다. 1977년 우간다의 구리와 면 산업은 파탄이었다. 주된 수출원은 커피 하나였다. 이디 아민은 커피 수익을 독식했고 그 돈으로 사치를 유지하고 군대 졸개들에게 보수를 지급했다. 우간다의 커피 수출물량 가운데 3분의 1은 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그 해 “우간다인의 80%가 텃밭에서 기른 작물로 근근이 연명하는 실정인데 미국이 우간다의 커피에 연 2억달러를 지불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사회운동가들은 부패정권 지원을 비판하면서 우간다산 커피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저자는 책에서 여러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폭넓은 시각을 환기시킨다. 우간다 커피 논란에선 국가와 자본가의 모호한 태도를 볼 수 있다. 비판 여론과 불매 운동이 거세지자 제너럴푸즈, 프록터앤갬블, 네슬레 등 미국의 주요 로스팅 업체들은 전국커피협회 이름으로 우간다 대학살을 혐오스럽고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한편으론 ‘일관성 있는 국가 정책’을 요구했다. 미국 정부가 강제하기 전까지는 불매를 실시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우간다의 수출품종인 ‘로부스타’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78년 2월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우간다 망명자가 한 말은 “인간의 비극보다 자신들의 은행 잔액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 같습니다”였다. 오하이오주 초선의원 도널드 피즈는 “미국 커피 회사들은 가격만 맞으면 아민이나 히틀러 같은 학살자와도 가까이 거래를 하는 곳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업계를 대변하는 어느 변호사의 조언은 “폭풍이 지나가길 가만히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1983년 과테말라에서 독재자의 살인이 벌어졌지만, 살인행위에 반대하는 확고한 도덕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중앙아메리카 전체가 공산주의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될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1934년 니카라과에서 정권을 잡은 독재자 소모사도 46개의 농장을 비롯해 막대한 커피 관련 소유 재산을 주축으로 삼아 가족 왕조를 세웠다. 이 독재정권은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으로 무너진다. 혁명이 시작된 곳이 바로 소모사의 커피 농장이다. 산디니스타는 농장을 탈취하고 나중에 국영화했다.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유행한 공정무역 커피의 연원도 니카라과에서 찾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 ‘생스기빙커피’의 소유주 폴 카제프는 1985년 친산디니스타 정부 커피 단체인 UNAG의 초대로 니카라과를 방문했다. 그는 니카라과산 로스팅 원두 포장 상품을 ‘평화를 위한 커피’로 출시했고, 산디니스타 정부에 파운드당 50센트를 기부했다. 매사추세츠 출신의 이상주의자 3명이 만들어 지금도 유명한 ‘이퀄 익스체인지’도 1980년대 최저보장가격을 지불하고 사온 니카라과산 커피를 ‘공정무역 카페니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에 공급했다. ‘완벽한 커피’를 만드는 일에만 관심을 집중한 스페셜티 커피업자들이 커피의 재배, 가공, 수출 시스템에 내재된 불평등에 주목한 것이다.

책의 강점은 한쪽 편의 사실만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디니스타의 주축은 도시 지식층으로 이들은 커피 재배에는 문외한이었다. 이들은 비료를 주거나 가지 치는 일을 제대로 못했다. 산디니스타 집권 이후 니카라과엔 황폐해지거나 방치되는 농장이 속출했다. 저자는 공정무역 커피에 호의적이면서도 “부유하지만 죄의식에 차 있는 공정무역 커피 판매업자들이 자신들이 파는 원두에 ‘괴로움, 고통, 굴욕’을 섞어 넣고 죄책감으로 커피를 사라고 다그친다”고 비판하는 코스타리카 커피 재배자의 문화제국주의적 비판론도 소개한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도 커피산업의 분수령이었다. 저자는 전쟁 당시 미국-유럽-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를 오가는 국제적인 커피산업의 동향을 설명하면서 특정 국가에서 벌어진 또 다른 전쟁의 양상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과테말라에는 2차 세계대전 때 5000명의 독일인이 거주했다. 수출은행과 커피 수출회사를 장악한 독일인 상당수는 나치에 동조했다. 하지만 히틀러를 싫어한 독일계도 많았다. 현지엔 게슈타포(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요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비나치 독일인들에게 가혹한 압력과 폭력적 위협을 가했다. 독일이 과테말라를 점령하면 처형할 ‘비애국적 독일인’ 명단까지 작성했다.

책은 잔혹과 불평등, 전쟁 같은 심각한 이야기만 다루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커피 이야기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시리얼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포스트와 켈로그에 관한 이야기는 음식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잘 안다. 존 하비 켈로그 박사의 요양원에 환자로 있던 찰스 포스트가 콘플레이크를 베껴 먼저 출시한 건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두 회사의 경쟁과 갈등의 역사에 커피가 있다는 건 잘 모른다. 켈로그와 포스트 둘 다 커피를 몸에 해로운 마약의 음료라고 맹비난했다. 커피를 무절제하게 마실 경우 정신이 돌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긴 이들이 많았는데 포스트는 ‘포스텀’이라는 자사의 음료를 광고하면서 “커피는 소화불량을 잘 일으키고 신경계의 기능장애를 일으킨다”는 내용의 편지를 돌렸다. 그러나 정작 포스트는 커피 애호가였다. 그리고 그의 딸은 포스트가 자살한 이후인 1928년 맥스웰하우스를 인수해 떼돈을 벌었다.

책은 아라비아의 수피교 수도승들이 밤새워 기도하기 위해 커피를 마신 시기로 올라간다. 17세기 이후 유럽에 확산된 커피사도 주요하게 다룬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사탄의 음료라는 커피를 맛보곤 “이렇게 맛 좋은 사탄의 음료를 이교도들만 마시게 놔두다니 … 정식 기독교 음료로 만들어서 사탄을 우롱하자”라고 한 말도 유명한 커피사 중 하나다. 190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이 매사추세츠의 클라크 대학교를 방문해 강연한 이후 커피업자들이 소비자 구매와 관련된 심리학을 연구해 마케팅에 적용한 이야기나 20세기 중반까지 여성과 흑인을 차별하고 비하한 커피 광고 이야기도 책에서 볼 수 있다. 커피산업은 마르크스의 분석 대상이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문학적 비유를 곧잘 구사했는데 1848년 <철학의 빈곤>에선 “신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믿을지 모른다. 커피와 설탕의 생산이 서인도제도의 자연스러운 운영이라고. 그러나 2세기 전에 자연은 상업에는 무심하여서 그곳에 사탕수수도 커피나무도 심어 놓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책은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 에스프레소 기계의 최초 발명,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더 커피 송’에 든 아메리카 지역의 커피 쿼터제 문제 같은 미시사와 카페인·건강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과학 이야기도 담았다. 또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법을 부록으로 실었다. 커피 하나로 자본과 착취의 역사, 전쟁사, 빈곤사, 광고와 마케팅의 역사, 문화사, 과학사에 걸친 역사를 함께 읽어낼 수 있다.

저자는 300명을 인터뷰했다. 커피 농장 여러 곳을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 참고문헌을 책에 다 담지 못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따로 올려놨을 정도다. 돋보이는 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그는 “중앙아메리카를 여행하던 중에 커피, 권력, 폭력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거듭거듭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커피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라며 “바나나, 설탕, 면 농장에서 일하거나 금광, 다이아몬드광, 정유공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일하는 이들의 여건은 훨씬 가혹하다”고 말한다. 금, 모피, 다이아몬드, 향신료, 설탕, 코코아, 담배, 야자유, 석유 같은 다른 상품을 두고서도 이 책과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유럽의 백인들에게 점령되었던 북미 역시 산업적으로 발전하면서 특히 라틴아메리카를 그 대상으로 삼아 이 정복 대열에 합류”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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