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의 내 인생의 책

④ 감독 오즈 야스지로| 하스미 시게히코

2017.08.17 22:24 입력 2017.08.17 22:27 수정 정성일 영화평론가·감독

나를 절망시킨 비평

처음 이 책을 손에 들고 당황한 것은 목차를 보았을 때였다. 이제까지 읽은 어떤 책과도 다른 항목들. 이런 제목들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무모하군, 이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소 긴장감을 안고, 하지만 대부분은 어처구니없다는 마음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4장인 ‘산다는 것’에서 오즈의 집에 등장하는 계단을 설명하기 시작할 때는 거의 비명을 지르고 싶어진다.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 비평가라면 비평을 그만두는 편이 좋다. 이쯤 되면 그다음을 읽기가 두려워진다.

하지만 이 책은 도무지 내 손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용기를 내어 읽어나가다가 종장(終章) 바로 앞에 달려 있는 7장 ‘날이 개인다는 것’을 읽을 때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영화 비평이란 결국 영화를 본다는 문제와 만나는 것이다. 가장 절망적인 비평은 우리가 같은 영화를 본 게 맞는 것일까, 라고 탄식하게 만들면서 상대방이 영화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본 것을 구석구석 설명해내는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마치 오즈의 영화 현장에 가서 그 장면을 연출할 때 아아, 그건 역시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군요, 라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둘러보는 것만 같은 비평을 써나간다. 어떤 장면도 이론화시키지 않았고 어떤 순간도 이론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그저 본다는 쾌감에 사로잡힌 문장들. 다 읽고 난 다음 마치 손이 베일까 조심스럽게 다시 들어서 책장 한구석 가장 먼 곳에 처박아버렸다. 이런 책은 두 번 다시 읽으면 안된다, 고 맹세했다. 평생에 단 한번 보아야 할 책. 그런데 지금도 어제 읽은 것처럼 생생하다.

원문기사 보기
상단으로 이동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경향신문 뉴스 앱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