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무정한 빛 - 수지 린필드

2021.07.07 20:49
장혜영 정의당 의원

참혹한 뉴스 사진 응시법

[장혜영의 내 인생의 책]④무정한 빛 - 수지 린필드

폭력을 세밀히 묘사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 두들겨맞거나 살해당하는 장면은 연출된 허구라 해도 마음 편히 볼 수 없다. 그러나 영화를 피한다 해도 뉴스를 피할 방법은 없다. 세상과 진지하게 관계 맺고자 한다면 세상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폭력 없는 세상을 꿈꾼다면 폭력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다루기 위해서는 마주해야 한다.

현실의 폭력을 담은 사진은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까?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온갖 정치폭력을 기록한 사진들 앞에 시민들은 경악과 동시에 끔찍한 무력감을 맛보았다.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평범한 우리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대의 평론가들은 사진에 죄를 물었다. “잔학행위를 찍은 사진이 주는 충격은 반복해서 볼수록 퇴색된다. 지난 수십년에 걸쳐 쏟아진 ‘사회참여적’ 사진들은 우리의 양심을 일깨운 것 못지않게 둔감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수잔 손택의 말이다.

수지 린필드는 저서 <무정한 빛>을 통해 이런 비판을 존중하면서도 우리의 무력감을 사진에 대한 비난에 과도하게 쏟아붓지 않기를 요구한다. 대신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자고 말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사진, 특히 정치폭력을 찍은 사진에 시민으로서 대응하는 능력이다. 이때의 시민은 사진으로부터 유용한 것을 배우고 사진을 통해 타인과 관계 맺고자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팔 한쪽이 잘린 메무나라는 소녀의 사진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저자는 사진이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메무나를 본다는 것은 메무나가 속한 세계가 어떻게 지금 모습이 되었는지를 함께 보는 과정이다. 이러한 시선의 연대가 메무나의 부서진 세계를 회복시키기에는 부족하겠지만, 불충분함을 핑계로 연대를 멈추기에 우리의 세계에는 아직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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