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변희수’를 더이상 아프게 하지 말라···“트랜스젠더 이슈는 결국 계급 문제”

2022.03.04 15:56 입력 2022.03.04 21:40 수정 김종목 기자

트랜스젠더 이슈
숀 페이 지음·강동혁 옮김|돌베개|398쪽|2만3000원

다채로운 일상
다채롬 지음·윤정원 감수|돌베개|420쪽|1만7000원

“업튼 선생님은 최근 인생을 바꿀 중대한 결심을 하고, 트랜지션(성전환)해서 여성으로 살기로 하셨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 이후에는, 메도스 선생님으로 학교에 돌아오실 예정입니다.”

영국 랭커셔 애크링턴의 세인트 메리 맥덜린 학교 구성원들은 2012년 크리스마스 휴가 무렵 나간 가정통신 구절이 루시 메도스의 죽음을 불러올지 몰랐다. 메도스를 위해 교직원들의 여러 변동 사항 중 하나로 이 짧은 공지를 넣은 학교 측 배려는 허망한 기대로 끝났다.

신경질적 연쇄 반응이 일어났다. 몇몇 부모의 우려를 담은 한 지역 신문의 보도가 전국으로 퍼졌다. 데일리메일의 칼럼 헤드라인은 “잘못된 몸, 잘못된 직업”이었다. 리처드 리틀존은 칼럼에서 성전환 뒤 학교로 돌아오려던 메도스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다. 조롱과 경멸을 담은 칼럼이 나간 뒤 기자들이 메도스 집 주변에 진을 쳤다. 기자들은 학부모들에게 부정적 의견을 내도록 종용했다. 응원과 격려는 무시했다. 메도스 사진을 구하려 경쟁했다. ‘홀로 괴로워하며 복합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존재를 고민하는 언론은 없었다. 메도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솔직하게 드러내고 학교에서 잘하던 일을 계속하려 했을 뿐인데, 그 사연에 관심을 두는 대중도 없었다.

황색 언론들의 괴롭힘과 악마화, 대중의 무관심과 조롱이 이어지는 와중에 메도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지가 나오고 석 달도 지나지 않은 때다.

<트랜스젠더 이슈> 저자 숀 페이는 ‘트랜스인’(출생증명서에 기재되는 생물학적 성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 성전환수술 여부와는 상관없다) 메도스 사례로 책을 시작한다. 트랜스인들이 ‘괴물 쇼’의 주인공으로 타블로이드 신문에 보도되거나 온라인에서 대중에게 모욕 당하는 현실만 지적하려 든 사례는 아니다. 비극과 고통을 열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상의 이면과 구조적 원인을 진단한다.

루시 메도스의 죽음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였던 영국 데일리메일 칼럼니스트 리처드 리틀존의 칼럼 ‘잘못된 몸, 잘못된 직업’.

메도스의 5주기를 기리는 인디펜던트의 보도. 기사 속 사진은 2013년 시민들이 데일리메일 앞에서 리틀존을 해고하라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

페이는 영국인들이 자각하는 것에 비해 트랜스 혐오를 훨씬 많이 한다고 지적한다. ‘영국 사회 태도’ 조사(2017년 발표)를 보면 영국인의 82%는 “전혀 편견이 없다”고 말하지만, 오직 41%만이 트랜스인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데 “매우 동의”한다. 페이는 메도스의 비극적 사례를 실업 같은 경제적 현실과 연결한다.

영국 고용법전문 법률기업 크로스랜드가 2018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고용주 3명 중 1명이 트랜스인을 고용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아일랜드에서 트랜스인의 실업률은 50%(2016년 7월21일 타임스 보도)에 이른다. 노동자를 간단히 해고할 수 있는 ‘제로아워(초단시간) 계약’은 트랜스인들에게 더 쉽게 적용되곤 한다.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의 사례는 2017년 12월 벌어진 일이다. 런던 중앙고용심판원은 기업 프리마크의 전 직원 알렉산드라 드 수자가 제기한 차별 소송을 청취했다. 트랜스인 여성 드 수자는 직장 동료에게 “남자 화장실 같은 소변 냄새가 난다” “내면에 악마가 있다” 같은 소리를 들었다. 드 수자는 결국 해고당했고, 소송을 제기했다.

트랜스 노동자는 정체성이 드러나면 직장을 떠나거나, 경제적 필요 때문에 그대로 남아 학대를 견뎌야 한다. 대체로 트랜스인들은 일반인보다 저임금과 빈곤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를 잃은 트랜스인들은 성 판매에 나서고, 성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로 내몰린다. 비극은 이어진다. 트랜스 성 노동자는 트랜스 살인 피해자의 62%에 달한다. 유럽에서는 이 수치가 88%까지 높아진다. 2008~2017년 터키에서는 44명의 트랜스 여성이 살해당했는데 그중 대다수가 성 노동자였다.

페이는 트랜스인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불공평한 자본주의 체제의 폐해, 재분배 정의 문제로 연결한다. “트랜스인들 대부분은 노동 계급이며 트랜스인들에 대한 억압은 구체적으로 자본주의에 뿌리내리고 있다.” 페이는 재분배 정의야말로 궁극적으로 중요한 싸움이라고 여긴다. 이 문제를 다룬 장의 제목을 ‘계급 투쟁’으로 달았다.

페이는 트랜스인들 권리 문제를 자유주의적 인권 이슈로 여기고, ‘문화전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현실도 지적한다. 문화전쟁 중 하나가 미디어 토론이다. 흔히 진행되는 토론은 트랜스인들의 복잡한 삶을 단순화한다. 트랜스인들이 마주하는 여러 경제적 불평등을 외면하고, ‘트랜스젠더 이슈’로 뭉뚱그린다. 이 이슈는 문화적 엘리트의 ‘이데올로기’라는 생각도 좌우 스펙트럼 양단에서 흔히 나타난다. 트랜스인들의 저항을 경제적 불평등으로 고생하며 억압받는 집단의 투쟁이라는 틀로도 바라보지 않는다. 한 예로 미디어가 트랜스인의 가난과 노숙 문제에 ‘트랜스젠더 이슈’라는 프레임을 적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화전쟁 와중에 현실 왜곡·기만과 이분법적 접근도 종종 일어난다. 트랜스 여성을 박사 학위를 휘둘러대는 사람으로 그린 캐리커처가 한 예다. 이를 두고 페이는 “트랜스인들을 노동 계급 여성의 신체적, 경제적 현실과 유리된 존재, 특권과 추상적 젠더 담론의 산물로 제시하려고 고안된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 계급’을 한편에, ‘트랜스인들’을 다른 한편에 놓는 식의 장치는 근거가 없다. ‘트랜스 혐오자’들은 우익이든 좌익이든 가난하게 살아가는 트랜스 노동자들을 ‘평범한 노동 계급’ 사람들과 대조하는 수사를 동원한다. 페이는 “(경제적 불평등 같은 트랜스인의 여러 문제를) ‘트랜스젠더 이슈’로 틀 짓는 행위는 우리를 연대의 고리에서 잘라내고 우리를 ‘타자화’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페이는 트랜스인을 포용하는 기업의 다양성 프로젝트, 중산층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는 주류 LGBTQ+ 운동에도 비판적이다. 퀴어 퍼레이드가 상업화됐다고 여긴다. 트랜스인들의 복지와 안전, 존엄성, 해방에 관한 모든 희망을 자유주의적 도덕 감정에 맡겨 놓는 것은 순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트랜스인으로서 삶의 경험은 계급에 따라 결정된다. 페이는 트랜스인들의 정치적 투쟁도 계급 투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페이가 상정한 투쟁 목표는 “국가 폭력(경찰의 괴롭힘, 감금, 추방 등), 가난, 재산 강탈 등에 저항하고,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트랜스 공동체에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책에 나온 대안 하나는 LGBTQ+ 특성화 쉼터를 제공하는 ‘아웃사이드 프로젝트’다. 동성애·트랜스 혐오 때문에 정체성을 숨기는 일에 집중하는 다른 복지 시스템의 주거 시설과 달리 이곳에선 주거 문제에 집중한다. 페이는 “트랜스 노숙자를 돕기 위한 수많은 실천적 행동은 노숙자 일반을 돕기 위해 필요한 행동과 거의 같다”고 말한다.

페이가 또 강조하는 건 소수자들의 연대다. 페이는 페미니스트와 트랜스인 간 첨예한 논쟁을 분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트랜스 해방을 향한 요구는 노동자,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반인종차별주의자, 퀴어인 사람들의 요구와 공명하고, 중첩된다.” 한 예로, 유색인 트랜스인은 백인 트랜스인에 비해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할 확률이 더 높고, 장애가 있는 트랜스인들은 가난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 누구를 우선 실업자로 만들지 결정할 때 인종, 계급, 젠더, 장애가 고려 요인이 되곤 한다.

페이는 고백과 솔직함이 트랜스인의 공적·정치적 말하기 권리의 유일한 토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지만, 책엔 트랜스 여성으로 겪은 차별과 혐오, 참담한 심정도 담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더러 미친 사람, 나쁜 사람, 아픈 사람, 망상에 빠진 사람, 역겨운 사람, 변태, 위험 인물,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신호를 보낸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는 방식을 익혀야만 했다. 나는 지금도 때때로 나 자신을 좋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트랜스인이 된 건, 여성스러운 건, 여성으로 살아가는 건 죄가 아니라고 타일러야 하는 날들이 있다.” 트랜스인이 자신에 대한 혐오감, 수치심과 함께 살아갈 필요가 없는 세상을 희망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서울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2월27일 오후 열린 열린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벽보판에 붙인 추모글./우철훈 선임기자

출판사 돌베개는 변희수 하사 1주기를 맞아 <트랜스젠더 이슈>와 함께 <다채로운 일상>도 냈다. 트랜스젠더 다채롬의 그림 에세이다. 다채롬은 어린 시절부터 겪은 차별과 혐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자살충동 등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트랜스젠더 관련 용어 정리와 성전환 과정 등도 부록으로 담았다. 다채롬은 생물학적 성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의 편견과 선입견을 덜어주려 낸 책이라고 했다.

바꿀 수 없는 정체성과 존재 이유만으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한국 사회는 발의 후 15년이 지나도록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영국 하원 여성평등위원회가 2016년 발표한 ‘트랜스젠더 평등’ 보고서의 한 구절이다. “어떤 사회가 공정과 평등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알아보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그 사회가 가장 소외된 집단에 속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시민의 권익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정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원문기사 보기
상단으로 이동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경향신문 뉴스 앱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