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파시즘

2023.09.15 11:12 입력 2023.09.19 15:42 수정

아돌프 히틀러가 1934년 독일 바이마르에 있는 ‘니체 기록 보관소’를 방문해 니체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히틀러의 공식 사진작가 하인리히 호프만이 촬영했다. 사진은 독일 작가 마이클 귄터의 <히틀러와 나치> 책 표지다.

아돌프 히틀러가 1934년 독일 바이마르에 있는 ‘니체 기록 보관소’를 방문해 니체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히틀러의 공식 사진작가 하인리히 호프만이 촬영했다. 사진은 독일 작가 마이클 귄터의 <히틀러와 나치> 책 표지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는 유명 철학 개념 중 하나다. 니체 하면 떠올리는 개념이다. 여느 고전이 그렇듯, 정작 개념을 딴 제목의 책을 읽은 사람은 드물다. 책이나 개념엔 오해와 억측까지 곁들여졌다. 나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누이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가 파시즘에 이 책을 헌정했다는 게 그중 하나다.

최근 <권력에의 의지>를 번역해낸 니체 전문가 이진우(포스텍 명예교수)는 ‘역자 서언’과 ‘후기’에서 오해와 정치적 오용 문제를 짚는다.

우선 니체와 히틀러가 같은 시기를 산 걸로 아는데, 니체는 히틀러가 태어난 다음해인 1900년 죽었다. 1934년 히틀러가 니체 흉상을 바라보는 사진이 니체 사상과 파시즘이 엮인 듯한 인상을 줬다. 나치 사상가 알프레드 보이믈러가 <권력에의 의지>에 “니체의 철학적 최고작”이라 찬사를 보낸 일도 ‘정치적 오용’과 이어진다. 무솔리니가 “위험하게 살라”는 니체의 말을 파시스트 슬로건으로 만든 것도 한 예다. “니체의 글과 사상은 전체의 맥락 없이 조각조각 해체”되며 파시즘에 이용됐다.

당시 조선에서도 니체를 파시즘과 연결했다. ‘신동아’는 1932년 8월 ‘강력 철학의 3용사’라는 표제 아래 니체, 히틀러, 무솔리니 사진을 함께 실었다. 기사 제목은 ‘강력의 철학-현세의 정치사상을 지배하려는 니체와 파시즘’이다.

이진우는 “자신의 글에서 결코 파시즘을 옹호한 적이 없는 니체가 파시스트 사상가로 오해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역설적”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국가중심주의를 비판했다. 니체 사상의 핵심은 개인주의라고 이진우는 말한다.

다만 책에선 “파시스트 기풍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과 경향을 찾아낼 수도 있고, 동시에 파시즘을 철저하게 배격하는 니체의 근본 태도를 읽어낼 수”도 있다. 이진우는 “니체의 사상에 조그만 연결고리라도 있다면, 그것은 그가 파시즘을 산출한 시대 상황과 정신을 철저하게 성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권력에의 의지>는) 권력 자체를 건드리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한 이데올로기로 여겨질 수 있다”고도 했다.

니체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진우는 니체가 이 책을 기획하며 한 말을 전한다. “사유가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에게만 속하는 책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책과 책 사이]니체와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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