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스폰서 기업들 ‘도 넘는 간섭’

2011.12.14 19:54

“공연명에 꼭 현대카드가 들어가야 합니다. 사진출처도 현대카드라고 꼭 명시해 주세요.”

내년 2월 내한공연이 예정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공연기획사로부터 기자가 연거푸 들은 주문이다. 이 공연의 제작비를 대고 주최자로 나선 현대카드는 공연명에 자사 이름을 넣고 기획사를 통해 언론홍보 시 이를 적극 언급하도록 했다. 티켓 최고가(VIP석)는 무려 40만원인데 현대카드로 결제하면 20%(32만원) 할인해준다. 노골적으로 현대카드를 사용하라는 얘기다.

지난 8월 지휘자 대니얼 바렌보임이 지휘한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공연은 대우증권이 주최로 이름을 올리면서 기획사에 지불한 협찬금의 상당액을 티켓으로 가져갔다. 4회 공연(8000석)에서 좋은 좌석을 중심으로 2000석 정도를 가져가 좋은 좌석을 구하지 못한 일반 클래식 애호가들의 불만을 샀다.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취재 현장에서 이 같은 일을 자주 접한다. 기업의 후원 없이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을 유치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스폰서 기업들의 요구는 날로 ‘도’를 넘고 있다. 문화예술을 지원한다는 순수성보다는, 이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 제고라는 무형의 이득은 물론이고 자사 제품의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기업들이 과거의 조용한 후원을 넘어 아예 기획·홍보까지 주도권을 휘두르며 주최자로 나선 것은 이런 속셈과 무관치 않다. 지난달 15~16일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의 주최로 나서 공연 제목에 자사명을 베를린 필과 똑같은 크기로 넣은 광고를 하고, 공연장 로비에 자사 스마트TV 부스를 설치한 삼성전자도 구설에 올랐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요즘의 이 같은 세태를 두고 ‘오케스트라의 탈을 쓴 기업행사’이고 정작 공연기획사들은 이들 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좋은 공연에 공식 후원사로 이름을 올림으로써 ‘명예’를 얻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인식하는 해외 유수 기업들과 크게 대조되는 이 같은 한국기업들의 행태에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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