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중앙의전기획 대표
부·권력·명예 다 거머쥔 재벌도 마지막 순간엔 보통사람과 똑같죠
장례사 아버지 권유로 시작, 기업에 의전 매뉴얼 보냈다 항의받아
임원들, 큰일 대비 TF 꾸려 연락…장례 내용 등 일절 이야기할 수 없어
화려하게 비칠까 경계…‘검소하지만 부족함 없게’ 준비해달라 주문
수많은 주삿바늘·상처…맹렬하게 살고자 한 고인 흔적에 숙연
자녀들 종교 다 달라 고민하다 결국 선택하지 못하고 임종 맞기도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기 때문이다.”(스티브 잡스)
기업을 크게 일군 사람은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로 살아생전 부와 명예를 거머쥔다. 하지만 생명은 유한하다. 삶의 끝자락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재벌을 포함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의 마지막 길을 기획·연출하는 남자가 있다. 이정훈 중앙의전기획 대표(47)다. 2008년 국내 최초로 ‘회사장(葬) 전문 기획사’를 설립한 이래 LS그룹 구태회 명예회장, E1 구평회 명예회장, 농심그룹 신춘호 명예회장,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남양유업 홍두영 회장, 한국야쿠르트 윤덕병 회장 등 기업을 일군 숱한 재벌 총수들의 장례 뒤에는 그가 있었다. 회사장은 전현직 최고경영자의 죽음을 공적 의례로 모시는 특별한 회사 의례다.
재벌 총수들의 죽음은 보통사람들의 죽음과 다를까. 지난 25일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중앙의전기획 사무실에서 이정훈 대표를 만났다. 그는 대한민국을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한 세월호 합동분향소 설치와 순직 경찰·소방공무원들의 장례 등도 주관했다.
- 회사장과 일반 장례, 뭐가 다른가요.
“일반 장례식은 가족을 중심으로 치르는 가족장이잖아요. 회사장은 회사가 경비를 대고, 장례식 외에 영결식을 하고 분향소를 설치한다는 점에서 달라요. 영결식이 회사 차원의 공적 의례다 보니, 헌화할 때도 장례위원장이 상주보다 먼저 하죠. 회사 창업주로서 추모하고 애도하는 자리니까요. 회사장이라 하면 가족 중심의 장례식과 회사 중심 영결식, 그리고 안장식을 다 아우릅니다. 5일장을 하고요.”
- 분향소는 지방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한 배려겠지요.
“예를 들어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님의 경우 경북 구미에 공장도 있었지만, 지역사회에서도 굉장히 존경받던 분이세요. 그래서 지역사회가 공공이 운영하는 분향소를 개방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분향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기억해요. 보통 제조사들은 지방에 공장들이 있고, 지역민들이 그곳에 취업해 생업을 이어가잖아요. 그래서 참배객들이 많아요.”
- 재벌의 죽음은 보통사람들의 죽음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규모가 클 뿐 똑같아요. 돌아가신 분을 염할 때 제가 꼭 참관합니다. 큰 기업을 일군 분들인 만큼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숭고한 자리가 될 거라는 기대를 품고서요. 그런데 부와 권력과 명예를 거머쥔 기업 총수, 그래서 거인의 풍채를 느끼게 했던 외피를 모두 벗고, 영면에 들어 오로지 한 인간의 몸으로만 남으셨을 때는 보통사람과 다를 게 없어요. 오히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신 탓에 너무나도 마르고 까맣고 작으세요. 마지막까지 맹렬하게 살고자 한 흔적도 보이고요.”
- 어떤 흔적 말인가요.
“오랜 치료과정에서 생긴 많은 주삿바늘 흔적과 몸부림치시다 생긴 상처들….”
- 생전에 수십조, 수백조원 규모의 기업을 일으켰다 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욕망은 매한가지일 테니까요.
“어느 회장님은 평생 종교가 없었는데, 돌아가실 날을 수개월 앞두고 자녀분들이 종교에 귀의하실 것을 청했다고 해요. 그런데 자녀 세 분이 가톨릭, 불교, 기독교로 종교가 다 달랐어요. 그래서 회장님은 눈을 감으실 때까지 어떤 종교를 선택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가만 고민하다 결국 선택하지 못하고 작고하셨어요.”
- 장례식장에서 본 다른 점은 없나요.
“상주들의 슬리퍼 하나에도 임원들이 신경을 많이 쓰죠. 쿠션감이 좋아야 덜 힘드실 테니까요. 몇 개의 안을 드리고 컨펌을 받아요. 사흘간 장례식장 음식도 겹치지 않게 준비해요.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님이 돌아가셨을 때 디저트를 따로 준비해 문상객들에게 드렸어요. 정·재계분들이 다 오시다보니 세세한 것 하나까지도 정성을 쏟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어느 대기업 총수의 장례식 때였는데, 라이터가 달린 재떨이를 꼭 구해달라는 거예요. 문상 오실 어느 분이 담배 피울 때 꼭 그 재떨이만 사용하신다면서요. 서울시내에 사람을 10명 풀었어요. 동대문 풍물시장에서 겨우 하나 구했죠.”
- 재벌들은 수의와 상복으로 어떤 것을 입습니까.
“수의는 장인들이 직접 짠 안동포로 만든 수의를 유족분들이 미리 제작해놓으세요. 상주의 경우 남자는 검은 정장, 여자는 아이보리색에 가까운 흰색 한복을 입으시죠. 상조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보통사람들의 장례식에선 언젠가부터 여자들이 검정색 한복을 입는 게 보편화됐잖아요. 하지만 제가 진행한 대기업 장례식에서 여자가 검정색 한복을 입은 경우는 딱 한 번뿐이었어요. 미처 흰색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 장례 기획 의뢰는 누가 하나요.
“당사자 모르게 회사 임원이 현 회장의 지시를 받아 연락을 해오는 경우도 있지만, 윗분의 지시 없이 임원들이 알아서 준비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요. 연로하거나 말기암 같은 불치병에 걸리셨을 경우에 그렇죠. 임원들이 자체적으로 회사에 TF(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제게 연락하기도 합니다.”
- 총수 일가의 지시 없이도 장례 준비를 한다는 건가요.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윗분이 준비된 자료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말씀하시면 임원 입장에선 난감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1, 2, 3안 정도까지 만들어 드려서 큰일이 닥쳤을 때 바로 실행에 옮기실 수 있도록 하죠. 해당 임원은 장례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리까지 위태로울 수 있기에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십니다.”
- 항공사, 해운사, 가전사, 유통사 등 기업 특성이 장례 기획에도 반영되나요.
“기획자 입장에선 그런 상징성을 드러내고 싶지만 기업 측에서 원하지 않아요. 오히려 대외적으로 화려하게 비치는 것을 몹시 경계하시죠. 국민들 눈에 검소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족함 없이 준비해달라는 주문이 많습니다(웃음).”
-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기업의 특성이 보이기도 합니까.
“직원들을 보면 그 기업의 미래가 보여요. 임직원들이 고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쏟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장례에선 직원들이 농담하며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후자의 경우 비단 직원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겠죠. 또 상하 관계가 지나치게 수직적인 어느 방산회사의 경우 장례 준비 과정에서도 소통에 어려움이 컸어요.”
경북 경주 출신인 그는 경남대 체육학과 96학번이다. 이듬해 외환위기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수억원의 빚더미에 앉게 되자 군 제대 후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단돈 17만원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어학원을 거쳐 동경디자인스쿨에 입학했다. 졸업만 하면 곧장 현지에서 취업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 한 끼만 먹고 전단지 돌리기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호형호제하던 한국인 유학생에게 힘들게 모은 2학년 등록금을 모두 떼어먹힌 후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무역회사에 합격해 일본 오사카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2006년 룸메이트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
- 장례 일은 어쩌다 하게 됐습니까.
“거액의 채무를 안게 된 후 집을 떠나 한동안 가족과 연락을 끊은 아버지는 서울에서 장의사 일을 배우셨다고 해요. 제가 군복무 중일 때 연락이 닿았고, 휴가를 나온다고 하니 밥을 사주시겠다고 했어요. 서울 종로 피카디리극장 뒤 분식점에서 라면을 사주셨어요. 그만큼 형편이 안 좋으셨던 거예요. 몇 년 후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자 아버지는 장례 일을 돕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어요. 이장 작업을 1년간 도우며 용돈을 받아 썼어요.”
- 회사장 전문 기획사는 어떻게 착안했나요.
“어느 날 신문 부고란에서 회사장이라는 것을 보게 됐어요. 아버지께 여쭸더니 많이 한다고 하세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국내에선 전문 회사는 물론 회사장 자료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좋은 비즈니스가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서울 녹번동에 월세 30만원짜리 작은 사무실을 얻고 사업을 시작했죠. 마침 아버지가 사업자등록만 해놓은 중앙의전기획이라는 사명이 있었어요. 아버지께 제가 그것을 쓰겠다고 말씀드렸죠.”
- 경험 없이 할 수 없는 일일 텐데요.
“일본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거래처 회사장에 문상을 간 적이 있어요. 찾아보니 일본에는 회사장 전문서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걸 사와서 학습한 후 한국 실정에 맞게 60쪽짜리 회사장 의전 실무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그런 후 당시 매일경제신문사가 국내 수만개 기업의 정보를 집대성해놓은 서적에 나온 주소를 보고 3000여개 기업의 총무부 앞으로 매뉴얼을 보냈죠.”
- 연락이 왔습니까.
“오긴 했는데, 주로 항의전화였어요.”
- 왜요.
“회장님이 건강하신데 왜 불경스러운 자료를 보냈냐는 거죠. 어느 그룹 비서실에선 검정 슈트 입은 남자들이 찾아오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내게 됐냐’ ‘뭘 알고 있냐’ 하면서 취조하듯 묻더군요. 당시엔 저도 20대여서 너무 무서웠어요(웃음).”
- 일은 언제 처음 맡았습니까.
“그러고 6개월쯤 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어요. 바로 회사로 들어오라는데, 손꼽히는 해운사였어요. 회장님의 임종이 임박했다며 빨리 준비하라더군요. 실제로 해본 적은 없어 겁이 덜컥 났는데, 다행히 영결식과 분향소 설치만 제게 맡기셨어요. 그런데 영결식에 정·재계 VIP들이 오시잖아요. 이후 의뢰가 잇따랐어요. 제가 아버지를 닮아 손재주가 좋은 데다 실내디자인을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 수주 경쟁은 없나요.
“초기엔 있었죠. 2010년 어느 날 재계순위 30위권 내에 랭크된 기업에서 연락이 왔어요. 회장님 사모님이 위독하다는 거예요. 회장 비서실 소속 상무는 다른 상조회사에도 같은 주문을 했다면서 선영 사진 한 장을 건네며 장례 제안서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어요. 어떻게 해야 차별화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수십장에 이르는 텍스트 대신 모형을 직접 제작해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제안서에 담았어요. 프레젠테이션 때도 해당 모형을 가져가 동선과 식순, 안치 방법 등을 설명했고요. 상무가 쉽게 이해하고 윗분에게 보고드리기 좋게 한 거예요. 그게 통했어요.”
- 지금도 수주 경쟁을 합니까.
“아뇨. 오히려 저희가 가려 받아요.”
- 왜죠.
“한 해 평균 10건의 회사장을 진행하지만 어떤 해에는 2~3건을 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직원을 많이 뽑을 수 없어요. 대신 장례지도사, 꽃, 의복 등 장례에 필요한 사람과 물품은 평소 유대관계가 깊은 협력사들을 통해 조달해요. 새벽 2시든 3시든 바로 준비해 올 수 있는 팀워크가 중요하니까요. 저 역시 이 일을 시작한 후 해외여행 한 번 하지 못했어요. 계약한 회사에서 언제 임종 소식이 전해질지 모르니 항시 대기해야 하거든요. 그러니 너무 많은 기업과 계약할 수 없어요. 지금도 45개사와 계약이 체결돼 있어요.”
- 계약이 체결했다고 해도 정확한 임종 시기는 알 수 없겠군요.
“그래서 6~7년 전에 맺은 계약이 유지 중인 기업도 있어요.”
- 계약 체결 후 기획사에서는 어떤 일을 해줍니까.
“대상자에 대한 생애 조사에서부터 시작해 추모영상 기획, 장례식장 선정 및 운영, 영결식·안장식 기획, VIP 의전계획, 그리고 해마다 치러지는 추모식에 이르기까지 죽음이라는 사건 훨씬 이전부터 개입해 죽음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합니다. 조직을 짜주는 일도 중요하죠. 부고와 언론 대응, 시설과 물품, 접객 준비와 인원 배치 등 회사 인력이 가동되는 각각의 조직을 구성해야 하거든요. 그런 다음 조직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디테일하게 교육하죠. 이후 이러한 계획을 유족분들께 임원이나 제가 보고드려요.”
- 계약서에 비밀유지 조항은 없나요.
“있죠(웃음). 해당 기업의 장례 내용에 대한 부분들은 일절 이야기할 수 없고요. 해당 기업에서 만든 매뉴얼도 공개할 수 없어요. 기업마다 조직도가 다르니 그게 유출되는 것을 바라지 않거든요.”
- 재벌들은 가진 것도, 지킬 것도 많은 만큼 묫자리도 풍수지리 등을 신경써 고를 것 같아요.
“외국의 유명한 지관을 불러와 명당을 찾는 기업도 봤어요. 하지만 글쎄요. 예전에 어느 그룹에서 소문난 풍수지리가가 찾아준 오색토 명당이 있다며 제게 이장을 의뢰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땅을 파보니, 축축하게 물이 배어 나왔어요. 결국 그곳에 고인을 모시지 못했죠.”
- 재벌들은 선산에 매장하는 게 통상적이겠지요.
“저희 회사가 하지는 않았지만 구본무 LG그룹 회장님은 화장 후 수목장을 택하셨어요. 최대한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겠다는 고인의 뜻인 것으로 알아요. 구 회장님으로 인해 기업들의 회사장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었어요. 실제로 그분처럼 하지는 않더라도 기업에서도 화장, 수목장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분명합니다.”
- 총수 일가나 기업으로부터 갑질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오래전 딱 한 번, 고인의 60대 따님에게 맞은 적이 있어요. 이미 임종한 상태에서 기업의 요청을 받고 급히 준비한 경우인데, 장례식장 뒤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제안서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제 얼굴에 집어던지셨어요. 컨펌까지 했으면서 왜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했냐고 비서실장께 따져 물으니 죄송하다는 말만 연거푸 하시더라고요. 모멸감에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그러면 임원 목이 날아간다고 하셔서 결국 끝까지 마무리했어요.”
- 형제의 난(亂) 등 가족 간 분쟁을 겪은 재벌도 적지 않아요.
“장남임에도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경우 가족에게 배척당하고 장례식장에서도 빈소를 지키지 못한다거나 다른 형제들과 한 공간에 있지 못하는 모습을 봤어요.”
- 회사장은 한국과 일본 외 다른 나라에도 있습니까.
“몇 년 전 어느 그룹의 용역을 받아 미국, 영국, 일본의 장례문화를 조사한 적이 있어요. 회사장이라는 개념과 영결식은 일본과 한국에만 있고, 분향소 개념은 세 나라 모두 없었어요. 영결식도 한국은 발인 후 바로 거행하는 데 비해 일본은 장례가 끝난 후 1~2개월 후에 별도의 장소에서 고별식이라는 이름으로 해요. 회사 차원의 이벤트를 장례 이후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죠.”
- 지난 16년간 우리의 회사장 문화에 변화가 있었나요.
“일본 내 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회사장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해요. 한국 역시 규모가 축소되고 있어요. 영결식장도 점차 병원에 마련된 공간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죠. 비교적 검소해졌어요. 장례식에 직원들의 노동력을 함부로 쓰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가지게 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