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만남이 가능 또는 불가능할 때

2016.07.30 18:27
조익상 만화평론가

이 비극은 왜 일어났을까? 사태를 티셔츠 한 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문제의 시발점과 문제 상황은 같지 않다. 나는 편의적이나마 이렇게 정리한다. 적어도 웹툰 독자와 작가들 사이에서는 ‘메갈리아를 보는 시각의 차이’가 베타요 오메가라고. 알파는 독자들 스스로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작가에게 무시당했다는 감각이다. 그 감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더 이상 만화 검열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겠다’는 노실드(No shield) 운동이다. 짧은 글에서 알파와 오메가를 다 다룰 수는 없으니, 우선 알파에 집중한다.

노실드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 무시가 있었다. 사태를 크게 만든 것은 작가들의 실언이었다. 한 작가가 “그래서 만화 안 볼 거야?”라는 트위터 발언을 했던 것이 그 작가가 소속된 레진코믹스 독자들의 집단 탈퇴라는 결과를 낳았던 것처럼, 일부 작가들의 섣부른 대응이 사태 초반에 독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지적해야 한다. 작가 누구도 ‘개·돼지’를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노실드 독자들은 ‘개·돼지’ 취급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실언들의 효과는 막대했다. 이후 실언을 저지른 작가 대부분이 사과했지만 사태는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무시가 남아있는 탓이다.

사태 초반, 독자들이 작가들에게 고언할 때만 해도 작가들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컸을 것이다. ‘메갈리아를 지지해선 안 된다’는 주장과 나름의 근거를 함께 제공했던 것도 작가가 다시 생각해주길 바란 시도였을 테고. 그런데도 작가들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노실드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무시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후 독자들의 애정 어린 충고를 ‘무시’한 작가들은 나무위키 항목에 차곡차곡 등재되고 집단적인 항의를 받게 된다. 일부 과격한 이들은 작가의 SNS에 몰려가 사상 검증하듯 행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독자 개인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커뮤니티 속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집단행동에 합류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개별 작가도 개인으로서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 누군가의 판단에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걸 무시라고 하는 것은 외려 아집이다. 노실드 운동이 아집으로까지 나아가게 된 것은 자신들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 때문일 텐데, 노실드 독자들의 메갈리아에 대한 주장과 근거들은 사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만큼 자명하지 않다.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면 원론적일지라도 중요한 것은 토론하고 설득하는 일이다.

물론 토론, 설득과 함께 집단행동도 정당성을 얻는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다. 메갈리아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는 ‘소라넷’ 폐쇄나 독자와 작가가 힘을 합쳐 진행했던 NO CUT 운동은 그 좋은 예다. 반면, 집단행동의 과정이 적절한 목표를 향한 토론과 설득에서 동떨어져 있는 한에서는 우격다짐으로 당장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라도 결국 실패한다. 예를 들어 <뷰티풀 군바리>나 <Zeze>에 대한 집단행동은 실패였다. 단순화해 말하자면, <뷰군> 때는 작품 속의 여성혐오에 대한 토론을 촉발한 데서 그치지 않고 ‘연재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청원했던 것이, <Zeze> 때는 ‘음원 폐기’라는 극단적인 목표와 함께 사안에 대한 설득력 없는 일방적 해석을 고수했던 것이 실패의 요인이었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신한 나머지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옳음을 적절한 근거 없이 주장하면 그렇게 되고 만다. 지금 노실드 운동의 전개 양상은 앞선 예들만큼이나 안타까운 수준이다. ‘우리가 분명히 옳은데, 왜 다들 틀렸다고만 말하는가!’ 하고 분통을 터뜨리기 전에 스스로의 정당성에 대해 그 전제부터 다시 생각할 일이다.

하지만 작가 쪽의 잘못과 독자 쪽의 잘못을 한 번씩 짚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독자들의 누적된 실망감이 작금의 ‘무시당했다’는 감각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노실드 독자만이 아니라 누구나 어느 정도씩은 느끼고 있었을 실망감이다. 웹툰의 중흥과 함께 우후죽순 늘어난 플랫폼들은 사업자로서 수익을 중시하여 독자를 소비자로만 대했다. 포털의 웹툰 섹션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독자이자 소비자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새 플랫폼들은 독자의 자리를 하나둘 지웠다. 대표적인 것이 댓글란도 없고 별점을 매길 수도 없는 레진코믹스의 시스템이다. 작가와 독자의 소통공간을 지우고 플랫폼이 그저 중개만 하게 될 때, 작가는 플랫폼에 보다 종속되어 독자를 보기 어렵다. 원고료를 월급으로 여길 정도로 회사에 소속감을 느끼며 독자의 작품 감상행위보다 회사의 이윤 추구를 우선시할 때, 일부 작가는 직원처럼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작품을 희생하게 될 수 있다. 결제를 유도하는 요소를 작품 속에 더 많이 넣을수록 이야기는 자극적이 되고 전체적인 작품성도 저하되고 만다. 또한 팔릴 만한 기획을 위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썰’툰이 늘어난다. 이렇게 질적 하락과 과금 유도를 함께 경험하며 쌓인 독자들의 실망감이 문제의 배경에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작가는 독자와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한다’는 금언은 비록 낡았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우회적이며 낯설게 보기를 유도하는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된다는 점 때문에라도 그렇다. 그렇다고 SNS 등 다른 경로를 통해 말하기를 멈추어야 한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소신을 표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 단, 작가로서 말하기 때문에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독자일지도 모르는 이를 ‘멍청이’라 우롱하고, ‘여혐’이어서 그렇게 말한다고 손쉽게 판단하는 것은 입증 부담을 스스로에게 지울 뿐만 아니라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처사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도 말할 수 있다. 당장의 상황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작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드러낸 좋은 예들을 소개한다.

김보통 작가는 이번 사태에 SNS에서는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았지만, 현재 연재 중인 만화에서 게임하는 여자 주인공을 전형적인 여성이 아닌 모습으로 담담히 그려나가고 있다. 1화에서 성별을 추측하기 어렵게 해 두었기에 2화에서 성별을 인지한 독자 다수는 ‘어? 여자였어?’ 하고 놀랐다. 이는 게임하는 특정한 외모의 사람을 ‘남자’로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관행적 독해를 뒤집어, 어떤 세계에서 남성이 ‘디폴트’로 상정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작품으로 보여준 훌륭한 예다. 보다 앞서 난다 작가는 남편이 제작한 게임의 여성혐오적 표현에 대한 독자들의 우려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여성혐오는 여성인 저조차도 30년 넘게 깨닫지 못했을 만큼, 마치 제가 태어난 자연환경처럼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성은 더 눈치채기 어려울 거라 생각됩니다. 하나씩 깨달아가는 단계이고, 그래서 아직 실수를 합니다. 돌아보면 지난 어쿠스틱라이프에서도 종종 여성·약자혐오적인 표현들이 있었습니다. 인지한 부분은 바꾸어 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 매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앞으로 각자가 만들 창작물에서는 더 나은 인식이 반영되었으면 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변화를 요청하는 만큼이나 자신의 변화 가능성도 열어둘 때 작가와 독자는 다시 만날 수 있다. 애초에 작품이라는 것이 성립하는 근거가 이 과정에 있다. 작품을 읽기 전의 독자와 읽고 난 후의 독자는 다르다. 작품 속 작가의 목소리와 대화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제출하는 여러 방식의 피드백을 얻고 난 후에는 작가 또한 변한다. 그리고 둘은 새 작품으로 새롭게 만난다. 이 모든 과정은 존중과 함께 가능하다. 서로의 자유 및 권리와 그 한계를 알고 서로를 대하는 것이 그것이다.

프랑스 만화가 엠마뉘엘 르파주가 한국에 왔을 때,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말을 건넨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씁니다.” 이런 존중이 영향을 주고받는 서로에게 모두 중요하다. 우리 만화의 행복한 만남은,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이 문화의 주체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자기 몫을 다할 때에 가능하다. 자기 몫의 양보, 자기 몫의 사과를 거친 후에 다시금 자기 몫을 다한다면 지금의 비극도 아픔만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간 평론가로서 충분한 몫을 다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비극 속에서 내 몫의 말을 내놓는다.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작가와 독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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