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일찍 포기하고 공장 가라” 논란의 명예교수 글 진상은

2021.08.21 13:46 입력 정용인 기자

8월 18일 영남대 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비롯,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논란이 되었던 도서관 게시판 게시글. fmkorea

[언더그라운드.넷] “너희들이 왜 다들 쓸데없는 짓들을 하는지 난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 방학 중에도 도서관에서 공무원인지 각종 자격 뭔지 딴다고 다들 고생하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니 집어치워라.”

8월 18일 ‘현 시각 모 대학 에타 불타는 중’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인터넷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글이다.

사진을 찍어 올린 이에 따르면 이 대학 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글이다.

글의 저자는 “공부해봤자 지방대학 출신은 서류부터 다 탈락하며, 공무원도 요즘은 일정 비율로 지방대생을 선발한다고 하지만 승진제한에 일정 직급 이상 못 올라간다”며 “다 포기하고 공장 가서 일할 생각이나 하는 것이 좋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문과대와 여학생을 찍어 거론하며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고 전문기술이나 배워 공장에 취업하거나 취집이 훨씬 낫다”고 주장한다.

논란이 된 건 글 말미에 붙여놓은 작성자 이름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서는 지워져 있지만, 이 대학 독문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실명을 내걸고 꺼낸 주장이라는 것이다.

사실일까.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는 대학명과 교수 이름이 지워져 있지만,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에는 대학 이름이 노출돼 있다. 영남대다. 그렇다면 쉽게 특정된다.

반응을 보면 ‘교수를 사칭한 어그로’, 즉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누군가 교수 이름을 도용해 쓴 글이 아니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명예교수인 거 보면 나이도 많을 테니 꼰대일 수 있고, 그 와중에 학생들이 공무원 준비만 한다는 소리가 들려오면 저런 뇌절 가능하다고 본다”는 식의 주장도 있다. 이미 명예교수이니 뭐라 할 사람도 없기 때문에 저런 꼰대스러운 발언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진실은 뭘까.

“그렇지 않아도 낮에 대구의 학교 보직을 맡은 선생님이 전화해서 사실관계를 묻는데, 뭐 터무니없으니 해명하기도 그렇고….”

8월 18일 심야, 물어물어 기자와 연결된 당사자의 반응이다.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그런 언행을 할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 테니 무시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을 격려하거나 지지 지원한다면 모를까 퇴임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할 까닭이 있냐는 반응이다.

게다가 사실관계도 틀렸다. 그는 현직 교수가 아니다. 2012년에 정년 퇴임했다. 명예교수도 아니다. 찾아보면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가 그를 명예교수 임용을 배제 결정했다는 기사들만 나온다. 영남대 관련 그의 현재 지위는 정년 퇴임했으므로 전 교수가 맞다.

그렇다면 누가, 왜 그를 사칭해 글을 남겼을까.

카톡에 가끔 도는 글을 보면 ‘신종사기 수법을 주의하라’는 글 말미에 뜬금없이 KBS를 붙인다든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하는 태극기부대스러운 글 말미에 얼마 전 타계한 재야인사 백기완 이름을 붙여 쓰는 글 같은 것이 있다. 의심스러운 주장에 일종의 공신력을 부여하기 위한 행위다. 통화 말미에 이름을 도용당한 이 전직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뭔가 학생들의 비난을 받게 하자는 건데 난 이미 정년 퇴임한 지 10년 가까이 된 사람입니다. 사실이 아니니 일체 무시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 별 관심 없습니다. 사실이 아니니 실추될 명예도 없고….”

애당초 글을 보면 문학전공 교수와는 거리가 먼 수준 낮은 내용이었다. 대다수 누리꾼 추정처럼 ‘교수 사칭 어그로’로 결론 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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