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아우라

2023.07.28 13:52 입력 2023.07.28 20:05 수정

연감 1978-2008.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연감 1978-2008.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대통령의 해외순방 취재를 떠나기 하루 전,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화가 왔다.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독일국제교류처가 기획한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작가 이름은 울리히 뷔스트. e메일로 보내온 보도자료 파일을 열었다.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수립된 1949년 동독의 도시 마그데부르크에서 태어남. 바이마르 건축토목 공대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함. 23세에 동베를린으로 이주해 도시계획가와 사진 에디터로 활동함. 그는 서른 중반에는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울리히 뷔스트는 냉전 시대를 몸소 겪은 인물이었다. 파일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동독 출신 작가의 사진전을 봐야 할 이유는 뭘까? 우리는 아직도 분단이라는 이유로 독일을 참고해야만 하는 처지일까?

다음날 공군 1호기에 올라 순방 국가인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 대한 참고자료집을 훑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항해 소련을 중심으로 동유럽 공동방위 조약이 체결됐던 도시 바르샤바가 수도인 폴란드는 비교적 친숙한 나라였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에 대한 사전 지식은 거의 없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함께 발트 3국의 하나로 불리는 리투아니아. 18세기 말 러시아에 귀속. 자국어 출판 금지 등 엄격한 러시아화 정책이 시행됨. 독일과 소련이 번갈아 점령했던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구소련에 다시 합병. 동·서독이 통일된 1990년, 소비에트연방에서 제일 먼저 독립을 선언했다. 강대국 독일, 폴란드, 러시아의 등쌀에 시달린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했다.

권력의 웅장함, 1983-1990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권력의 웅장함, 1983-1990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붉은 10월, 2018.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붉은 10월, 2018.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는 중세 유럽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고즈넉한 도시였다. 러시아로 인해 리투아니아 고유의 특성을 많이 잃어버렸다지만 아시아 사람 눈에는 유럽의 전형적인 올드 타운이었다. 평범한 집 대문처럼 생긴 ‘새벽의 문’을 통과하면 시작되는 지역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빌뉴스 역사지구’로 불린다. 대통령궁 근처의 기자실도 이곳에 있었다. 빌뉴스 역사지구 경계선 밖에 있는 숙소에서 어둠이 걷히기도 전 몸을 일으킨 나는 새벽의 문을 통과했다. 천연석을 쪼개 만든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한국의 놀이동산이나 아웃렛 아케이드를 떠올리게 하는 건물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길과 좁은 하늘을 수놓은 연등, 리투아니아어가 적힌 아담한 크기의 간판들….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 알려주는 스마트폰의 구글맵을 나는 작동시키지 않았다.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면 낯선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신비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독일 문화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일방통행로>(도서출판 길)에 처음 방문하는 도시의 산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마을이나 도시를 처음 볼 때 그 모습이 형언할 수 없고 재현 불가능하게 보이는 까닭은, 그 풍경 속에 멂이 가까움과 아주 희한하게 결합하여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습관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일단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시작하면, 그 풍경은 마치 우리가 어떤 집을 들어설 때 그 집의 전면이 사라지듯이 일순간 증발해버린다.”

벤야민의 도시 탐색법을 ‘아우라 산책법’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멂이 가까움과 아주 희한하게 결합하고 공명”한다는 문장은 그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가까이 있더라도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이라고 표현한 아우라의 정의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사진술은 발터 벤야민이 거론했던 대표적인 복제 기술이다. 전통적인 예술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아우라가 카메라의 출현으로 사라졌다고 그는 자기가 살던 시대를 진단했다. 벤야민은 사라진 옛 감정에 대한 상실감에 젖어 있지 않고 복제 기술의 혁신성에 주목했다. 가령, <베를린 연대기>에서 유년의 벤야민은 여행길에 할머니가 보내준 사진엽서를 반복해서 쳐다보면 이미 그곳에 간 것이나 다름없는 체험을 했다고 사진의 매체성에 주목했다. 새벽녘의 짧은 산책을 마친 후, 나는 마음을 정했다. 귀국하면 울리히 뷔스트의 사진전을 보러 부산에 가기로. 미술관 학예사가 보내준 보도자료에 첨부된 이미지들이 누군가가 보낸 엽서 사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독일 우편국 도장이 찍혀 있는 엽서 말이다.

‘베를린 미테 지구’ 연작 중에서, 1996.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베를린 미테 지구’ 연작 중에서, 1996.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고은사진미술관 입구에는 엽서 사진 중 하나가 크게 확대되어 입간판으로 세워져 있었다. 짤막한 사연이 담겨 있어야 할 엽서 왼편에 적힌 사진전의 제목은 ‘도시산책자 : 울리히 뷔스트의 사진’. 관광객이 아닌 자기가 사는 도시를 유유자적 산책했던 최초의 사람들로 알려진 이들은 20세기 초 파리지앵들이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 등 댄디한 산책자들은 파리라는 대도시의 물결에서 시적이고 철학적인 단상들을 수집했다. 나치를 피해 파리에 머물던 유대계 독일인 발터 벤야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 새롭게 등장한 건축 재료인 철골과 유리로 된 상점가 ‘파사주’에 대한 보고서를 카메라 렌즈처럼 세세하게 포착하려 했지만 미완의 기획으로 남았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스페인으로 탈출하던 중 국경이 막히자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울리히 뷔스트의 사진전이 벤야민의 기획에 대한 별첨 부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전시장에 들어섰다. 뷔스트의 작업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나에게 사진은 언제나 건축물에 관한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나는 우리가 상상하는 ‘도시’가 무엇이고 이러한 도시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도시풍경’ 연작 중에서, 1982.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도시풍경’ 연작 중에서, 1982.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가 담은 도시 사진에는 좀처럼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진가 으젠느 앗제처럼 새벽녘에 촬영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뷔스트의 방법론은 명확하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위해 쌓아 올린 건물들에 관심을 돌리고자” 사진 속에서 사람들을 제거했다. 사진 속 인물의 크기가 아무리 작더라도 우리 시선은 스마트폰의 얼굴 인식 프로그램처럼 인물을 추적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 우리 시선은 그의 설명처럼 사진 속에서 사람을 찾아 헤매다 실패하고 만다. 그러는 동안 우리 눈은 사진 속 건물들을 구석구석 훑게 된다. 세부를 보다 전체를 보고, 다시 세부를 본다. 건물을 이루는 재료들과 모양새, 그리고 다른 건물들과의 어울림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문뜩 깨닫는다. 대낮에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가 있지? 작센안할트주의 도시 마그데부르크는 아침에 촬영했다고 캡션을 통해 밝혔지만, 그림자의 형태로 보아 인적이 드문 새벽녘은 아니다. 그래서 뷔스트 사진의 어떤 장면은 앗제의 사진처럼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앗제의 사진을 보고 “아직 세입자를 찾지 못한 집처럼 말끔히 치워져 있다”고 했던 발터 벤야민의 말을 상기한다면, 뷔스트의 도시 사진은 세입자들이 모두 쫓겨난 다소 황량한 풍경이다. 마그데부르크는 통일 이후 도시 전역에 재건축 바람이 불었던 지역이다.

동독과 서독이 만나는 곳이라서 ‘베를린의 뛰는 심장’이라 불리는 미테 지구에서도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림자의 짧은 길이로 보아 정오 무렵에 찍은 사진일 터,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발터 벤야민은 정오에 가까워지면 “그림자는 단지 사물들의 끝자락에 검고 날카로운 가장자리가 되면서 소리 없이, 부지불식간에, 그 자신의 거처, 자신의 비밀 속으로 물러갈 태세를 하게 된다”고 <사유이미지>에 썼다. 정오는 예언자 ‘자라투스트라’의 시간이다. 자기 궤도의 정상에 다다른 태양은 “가장 엄격하게 사물들의 윤곽을 그리는” 것이다.

미테 지구의 한 사진 속에는 한국 도시에서도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 하늘 높이 치솟은 콘크리트 빌딩과 공사장의 거대한 가림막 앞에 있는 낮은 옛날 건축물의 어색한 뒤섞임이다. 미테 지구의 또 다른 사진에 등장하는 콘크리트 빌딩 옥상에는 독일 회사 아그파 필름의 광고판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한국 기업의 로고가 걸려 있다.

‘거리의 아침, 마크데부르크’ 연작 중에서, 1998.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거리의 아침, 마크데부르크’ 연작 중에서, 1998.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의 도시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이 있다. 도시의 과거를 기억하라고 주문하는 동상 등 기념물들이다. 이것들을 찍은 사진들로만 엮은 사진 연작도 있다. ‘권력의 웅장함’(1983~1990)과 ‘붉은 10월’(2018)이다.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독일 군대의 부조상과 냉전 시대 선전물들을 확대해 찍은 장면들이 병풍처럼 긴 인화지에 펼쳐져 있다. 아코디언처럼 접었다가 펼칠 수 있는 ‘레포렐로(leporello)’라 불리는 사진첩이다. ‘도시풍경’(1975~1985), ‘베를린 미테 지구’(1995~1997), ‘거리의 아침, 마그데부르크’(1998~2000) 연작에 등장하는 기념물들은 미국 사진가 리 프리들랜더의 사진만큼은 아니지만 주변적인 존재로 물러나 있다. 광장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마르크스와 레닌은 정면으로 담은 건물들과 달리 옆모습으로 포착돼 있다.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광고 입간판이다. 광고 사진 속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는 폼을 잡고 다리를 쭉 벋고 앉아서 말보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광고판 뒤에 우뚝 솟은 굴뚝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실제 존재하는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담긴 사진이다. 다른 사진에 등장하는 동독 시절 광고인 베를린 화장품과 국영 자동차 트라반트의 페인트 그림은 빛이 바래 초라해 보인다.

‘비크만의 유산’ 연작 중에서, 1991-1992.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비크만의 유산’ 연작 중에서, 1991-1992.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평지, 쇤호프’ 연작 중에서, 2013.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평지, 쇤호프’ 연작 중에서, 2013. ⓒ Ulrich Wust,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울리히 뷔스트는 대도시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골집에서도 냉전 시대 유물들을 사진으로 수집했다. 자기가 매입한 집의 옛 주인이 남겨놓은 물건들을 기록한 ‘비크만의 유산, 뷜로우스지게’(1991~1992)는 동독 시절 사물들이 위대한 유산인 것처럼 사진에 담겨 있다. 마당에 나뒹굴던 너덜너덜한 나치 기관지 ‘프라이에 에르데’를 찍은 ‘평지, 쇤호프’(2013)는 얼치기 예언자의 엇나간 예언이 적힌 양피지처럼 펼쳐져 있다. 넝마처럼 버려진 사소한 것들에서 과거의 시간을 불러내는 울리히 뷔스트의 사진은 또다시 발터 벤야민의 단상에 빠져들게 한다.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에서 ‘유실물 보관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 풍경은 아직 우리가 습관적으로 늘 하듯이,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로 인해 과도하게 무거워지지 않은 상태다. 우리가 그곳에서 한번 방향을 분간하게 되면 그 최초의 이미지는 다시는 재생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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