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길의 사진공책
2024.01.09 15:10 입력 2024.01.11 15:10 수정 김창길 기자

Ratcliffe Power Station, Study 54, Nottinghamshire, England. 2000. (C)Michael Kenna, 공근혜갤러리 제공

Ratcliffe Power Station, Study 54, Nottinghamshire, England. 2000. (C)Michael Kenna, 공근혜갤러리 제공

“저는 늘 미스테리하고 분위기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시간의 흐름이 배어있는 녹이 슨 곳이나, 설명보다는 새로운 제안을 하거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장소들을요. 한국은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이 거주해 온 곳이기에 저에게 보물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한국과 좋은 친구가 된 것이 뿌듯했다는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 1953 - )가 4년 전 인천공항에서 쓴 작가의 노트는 <한국 - 제1부(KOREA - Part 1)> 서문에 실렸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 그만큼의 상처도 받았을 터인데, 마이클 케나의 마음은 그의 사진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오랫동안 지켜보다 보면 사물의 껍데기는 사라지고 그것이 품고 있던 영혼이 사진에 담길 것이라는 그의 믿음처럼 말이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옆 공근혜갤러리에서 마이클 케나의 사진전이 다시 열리고 있다. 지난해 촬영한 한국과 70-80년대 모국인 영국의 풍경을 선보이는 <New Korea & England>다. 그의 원래 소망은 <한국 - 제1부> 이후의 사진들의 제목을 <한국 - 제2부>로 다는 것이었다. 한반도의 나머지인 북한을 촬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마이클 케나의 한국 시리즈는 1부와 2부가 합쳐져 하나의 한국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바람으로만 남게 됐다. 전남 고흥의 바다와 충청도의 나무 등을 촬영한 <한국 - 제1부> 이후의 풍경들은 이 때문에 ‘New Korea’라는 차선의 제목을 달았다.

전남, 고흥 Fish Washing Tank, Sunjeongmaeul, Go-Heoung, Jeollanam-do, South Korea. 2023 (C)Michael Kenna, 공근혜갤러리 제공

전남, 고흥 Fish Washing Tank, Sunjeongmaeul, Go-Heoung, Jeollanam-do, South Korea. 2023 (C)Michael Kenna, 공근혜갤러리 제공

전남 고흥 선정마을 앞바다를 찍은 ‘Fish Washing Tank, Sunjeongmaeul, Go-Heoung, Jeollanam-do, South Korea. 2023’은 마이클 케나 특유의 감성이 묻어난다. 평범하고 흔해빠진 풍경이 품고 있는 명상적인 이미지를 드러나게 하는 사진가의 감각 말이다. 케나가 찍은 피사체는 단지 바닷가의 어류 세척용 수조다. 그러나 어두운 방에서 인화지 위에 드러난 사물의 형상은 러시아 화가 말레비치의 추상화 제목 같은 검은 사각형이다.

장노출로 촬영된 사진인것 같다. 바라보는 행위는 관찰자의 위치 뿐만 아니라 시간에 간섭을 받는다. 눈 깜짝할 사이보다 짧은 순간의 찰나를 알아차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길게 지속되는 시간 속의 사물을 온전히 지각할 수 없다. 하지만 카메라의 눈은 가능하다. 잘 훈련된 사진가는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는 찰나와 지속의 시간을 직감한다. 인간이지만 사진 속에 흐르는 시간만큼은 조물주처럼 창조해낼 수 있는 예술가가 사진작가인 것이다.

3~40년 전에 촬영된 영국의 풍경에는 마이클 케나 특유의 지속되는 시간의 느낌이 없다. 1973년부터 2023년까지 50년 동안 촬영한 사진들이 수록된 <마이클 케나, 사진과 이야기 1973-2023> 사진집의 표지를 장식한 ‘파도(Wave, Scarborough Yorkshire, England. 1981)’는 아예 순간의 찰나를 보여준다. 어떻게 된 노릇일까? 사진 ‘파도’가 집어삼킨 이야기는 뭘까?

파도(Wave, Scarborough Yorkshire, England. 1981 (C)Michael Kenna, 공근혜갤러리 제공

파도(Wave, Scarborough Yorkshire, England. 1981 (C)Michael Kenna, 공근혜갤러리 제공

스산한 바람이 부는 오후였다. 마이클 케나는 노스요크셔 황무지를 지나고 있었다. 길을 걷던 이가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스카버러에 간다고 했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여름을 보내던 해안 마을이다. 케나는 길 위의 낯선 이를 차에 태웠다. 나이는 그보다 어렸다. 아일랜드 출신. 목적지에 도착하자 어린 히치하이커가 작별 인사를 했다.

“아일랜드인의 행운이 당신에게!”

바다는 높았다. 파도는 방파제에 부딪히고 있었다. 부숴지는 파도의 모양은 어떤 유형을 드러낼 것인가? 마이클 케나는 항구 바닥의 블록 위에 삼각대 다리를 폈다. 카메라 셔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늘을 찢는 듯한 파도 소리가 모든 것을 짚어 삼키고 있었으므로. 모든 것을 짚어 삼킬 만한 순간의 시간을 끊어내어 얼어붙게 만들어야 한다. 파도에 실려 온 바닷바람의 냉기는 그의 손가락을 얼어붙게 했다. 버튼을 누르는 데는 손가락이 얼어도 상관없었다. 필름 두 롤을 다 찍을 때까지 눌렀다. 누를수록 파도는 커졌고, 결국 파도는 성난 산이 되어 케나의 필름에 들러붙었다. 아일랜드인의 행운은 그렇게 케나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여서 튕겨 나가게 하는 기술은 카메라 기계에 내장돼 있다. 관건은 바로 이 시간의 기술을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장노출 등의 단어로 간단히 말할 수 있지만, 이는 단지 카메라의 시간을 말할 뿐이다.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카메라의 기계적 시간에 다른 시간들이 교차되는 지점을 결정해야 한다. 다른 시간들이란 카메라 렌즈의 대상인 피사체와 그 사이를 중개하는 사진가의 시간이다. 그리고 사진을 바라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순간은 바로 이 세 개의 시간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탄생한다.

Big Ben and Westminster Abbey, London, England, 1975 ⓒMichael Kenna.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Big Ben and Westminster Abbey, London, England, 1975 ⓒMichael Kenna.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마이클 케나가 말하는 사물의 “표면 너머와 표면 밑”은 바로 이 순간에 볼 수 있는 장면일 것이다. 침묵과 규율, 그리고 기도를 하며 어린 시절에 사제 훈련을 받았던 사진가의 몸이 체득한 시간의 감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감히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나는 보이지 않은 것을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Winter Hackberry Tree, Chungcheongnam-do, South Korea. 2023  (C)Michael Kenna, 공근혜갤러리 제공

Winter Hackberry Tree, Chungcheongnam-do, South Korea. 2023 (C)Michael Kenna, 공근혜갤러리 제공

보이지 않는 것 너머의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공유한다. 사진집 <마이클 케나, 사진과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팽나무에 대한 사연을 설명하는 케나는 레바논의 작가 칼릴 지브란의 문장을 적는다.

“나무는 지구가 하늘 위에 쓰는 시이다.”

1973년 영국의 밴베리에서 찍은 나무‘(Ripples and Reflections, Banbury, Oxfordshire, Engalnd. 1973’)는 높은 위치에서 바라본 장면이다. 사진집의 첫 장을 장식했다. 그리고 50년 후 5,500마일 떨어진 한국의 충청남도의 진흙과 눈으로 뒤덮힌 들판에서 케나는 몸을 낮췄다. 오체투지처럼 바닥에 엎드려 나무를 바라보았다. 사진집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사체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바로보는 나무였다.

50년 동안 사진가는 겸손해졌던 것이다. 물론 긴 시간 동안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은 좀 나아졌다. 하지만 그것과 앎은 다른 것이다. 케나는 어느 신학자의 말을 상기한다. ‘의심은 믿음의 중심이다.’ 케나는 배우면 배울 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졌다. 시대의 흐름은 숫제 뒷전으로 밀려났다. 디지털? SNS? 필요없다. 50년 전에 찍던 사진술로도 아직 다 찍지 못한 세상이 널려있다. 그는 세상에서 삶의 신비와 기적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느끼려한다. 눈보라를 헤치고, 때로는 땅에 엎드리면서. 이렇게 진실하게 사물의 감각을 전달하는 사람이 사진작가라는 것이 케나의 신념이다. 이는 세월히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눈밭 위에서도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나무처럼 더 커져갈 뿐.

마이클 케나는 <New Korea & England> 전시의 마지막 날인 오는 2월 3일 한국의 팬들을 만난다. 물론, 그이는 사진도 찍을 것이다. 아직도 못다한 한국의 풍경이 남아있기에. 그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한반도의 정치적 시간은 역행하고 있지만, 이와는 상관없는 그의 호흡으로 한국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달라고. 뒷걸음질치는 것은 결국 방파제에 부딪혀 하늘로 솟구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케나의 시간은 보이는 것 너머의 영원을 향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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