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길의 사진공책
2024.04.02 08:15 입력 2024.04.02 11:15 수정 김창길 기자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는 단편 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민음사)에서 한 해적판 백과사전에서 발견한 거울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적는다.

“거울과 부성(아버지성)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마치 그것을 사실인 양 일반화시키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에는 적혀 있으나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크바르’라는 지역의 한 이교도 창시자의 말이다. 거울은 대상을 반영하여, 부성은 닮은 생명체를 낳기에 닮은 무언가를 증식시킨다. 우리는 이교도 창시자가 말한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는” 장치에 하나를 더 추가해 백과사전에 첨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카메라의 눈이다. 오는 5월 19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되는 일본 작가 도쿄 루만도(Tokyo Rumando)의 전시는 바로 거울과 카메라라는 장치를 이용한 사진전이다. 서울은 후암동의 KP갤러리에서, 부산은 아트스페이스 이신에서 열린다. KP갤러리의 이일우 대표는 도쿄 루만다가 “일본 사진계에서 가장 실험적인 젊은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하며 “현대 여성의 정체성과 인간에게 잠재된 욕망, 두려움, 광기, 기억, 공허함, 죽음, 어둠에 대한 의식”을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KP갤러리 제공

KP갤러리 제공

도쿄 루만도 전시의 뼈대를 이루는 <오르페우스(Orphée)> 연작은 사진의 구도와 장면이 모두 동일하다. 거울이 달린 누군가의 방이 무대처럼 등장한다. 카메라는 정면으로 그곳을 찍는다. 거울과 함께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마릴린 먼로처럼 풍성한 금발 머리를 가진 여인, 머리에 붕대를 두른 오싹해 보이는 여인, 미국의 사진작가 신디 셔먼처럼 짧은 머리의 여성, 몸매가 드러나는 치파오 스타일의 옷을 입은 아시아 여성, 학생 같은 단발머리의 여성…. 그들은 거울 앞에서 화장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무언가를 하고 있다. 모두가 달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동일 인물이다. 바삭거리는 일본 과자의 이름을 가진 작가 도쿄 루만도 자신의 모습들이다.

작가이기 이전에 도쿄 루만도는 모델이었다. 가학적인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아라키 노부요시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적도 있다. 여인을 밧줄로 묶어 천장에 매다는 등의 도발적인 장면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남성 작가다. 세간의 이목을 끌기를 좋아하는 듯,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이 독특하다. 도쿄 루만도의 어떤 사진들을 보면서 아라키 노부요시의 시각 언어를 엿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도쿄 루만도의 시각 언어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만큼이나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이력이 그녀의 작품을 모두 설명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위치 변환이다. 도쿄 루만도는 이제 타인과 남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포즈를 취한다. 사진에 찍히는 자에서 사진을 찍는 자로, 보이는 사람에서 보는 사람으로 역할이 역전된 것이다. 보는 관계의 변화는 다시금 보르헤스의 시 ‘거울’을 읽어보게 한다.

“금속의 거울들, 응시하고 응시되는 얼굴이 / 붉은 노을 안개 속에 흐릿해지는 / 마호가니 가면 거울, ”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문뜩 낯설어 보이는 때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응시하면서 응시되는 얼굴은 보르헤스가 느꼈던 것처럼 공포스러울 때도 있다. 거울의 표면은 “자신의 현란한 거미줄”에 덧없는 세계를 복제하고 연장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거울의 마력에 맞서는 이들이 있다. 도쿄 루만도의 작품을 비평한 소마 토시키(Soma Toshiki)는 뒤돌아보면 안 되는 금기를 넘어선 그리스 신화의 음유시인 ‘오르페우스’처럼 예술가는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심연의 세계를 응시하려는 욕망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Orphee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도쿄 루만도의 거울에는 무엇이 나타나 있을까? 죽은 이의 옆얼굴, 밧줄에 묶여 천장에 매달린 한 여인의 하반신, 남자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노부인, 갈라지는 뱃가죽 사이에 얼굴을 내미는 한 여인의 입술, 쇠사슬이 감긴 여인의 목, 코르셋만 조인 반라의 몸뚱이, 그리고 눈동자…. 이것들은 허상일까? 아니면 실재했던 과거일까? 작가인 도쿄 루만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작업(오르페우스 연작)이 기억을 지우고 정화시키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도쿄 루만도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바라보는 관객들도 자신들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되돌아보라고 주문한다. 거울에 비친 커다란 눈동자는 그러한 주문을 관객에게 걸고 있다. 작가인 도쿄 루만도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때부터 관객인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꽤 많은 여성 관람객들이 도쿄 루만도의 사진에 자극을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KP갤러리에서 돕고 있던 비주얼 아티스트 레나(Lena) 씨에 따르면 요즘 우리나라에도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을 하는 여성 작가들이 많다. 도쿄 루만도처럼 파격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이 없단다. 파문을 일으킬 만큼의 도발이 온전한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쿄 루만도는 “나는 벌거벗었을 때에만 행복하다(I am only happy when I am naked)”라고 말했지만, 그녀가 사용한 단어 ‘naked’의 속뜻은 옷을 걸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가식을 없앤다는 의미일 테니까.

The Story of S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The Story of S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The Story of S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The Story of S (C)Tokyo Rumando, KP갤러리 제공

전시를 구성하는 다른 시리즈인 <The Story of S>는 옷을 벗기 보다는 계속 갈아입는다. 학생이었던 주인공이 드레스룸에서 게이샤 등으로 변신을 하고 술집에수 춤을 춘다. 엮시나 도쿄 루만도가 감독하고 주연하고 직접 메이크업을 했다. 시리즈의 제목 중 알파벳 ‘S’는 다음과 같다고 전시장에 적혀 있다.

“S is Story / She = S / S = Sexualviolet / S is es / S is Sandglass / Sayonara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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