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여정 “이번엔 감독님만 보고 했다”···‘도그데이즈’로 국내 복귀

2024.01.28 10:33 입력 2024.01.28 19:54 수정

‘미나리’ 이후 쏟아지는 시나리오에 씁쓸

배우 윤여정. 퍼스트룩 제공

배우 윤여정. 퍼스트룩 제공

윤여정은 데뷔한 지 반세기가 넘은 배우다. 배우로 산 시간이 배우로 살지 않은 시간보다 길다. 요즘도 그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 <미나리>(2021)로 받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관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수상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그를 이전과 다르게 대하기 시작했다. <미나리> 이후 그를 주연으로 내세운 시나리오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2022)에서도 인상적인 배역을 맡았던 그는 3년 만의 국내 복귀작으로 <도그데이즈>라는 다소 뜻밖의 작품을 택했다. 반려견을 소재로 한 옴니버스 영화다. 윤여정 외에도 많은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윤여정을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시나리오도 좋고, 감독도 명망 있고, 돈도 많이 주는 것은 저에게 안 들어와요. 언젠가부터는 혼자 결심했어요. ‘감독을 보겠다’고 하면 그땐 시나리오나 돈은 안 봐야 돼요. ‘시나리오만 본다’ 그러면 시나리오만 봐야 되고 어떨 땐 돈만 봐요. 그때그때 달라요. 이번에는 감독님만 보고 한 거예요.” <도그데이즈>의 김덕민 감독은 조감독 시절 윤여정과 함께 작품을 했다. “감독님은 조감독이니까 ‘노바디’였고, 저도 취급을 못 받았던 때여서 둘이 전우애가 생겼어요. 19년 동안 조감독을 했는데 입봉을 못한 것도 안타까웠어요. 김덕민이 입봉하면 내가 꼭 (출연)하리라 했어요. 그럴 땐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봐야 돼요.”

영화 <도그데이즈>에서 건축가 조민서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 <도그데이즈> 스틸 컷. CJ ENM 제공

영화 <도그데이즈>에서 건축가 조민서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 <도그데이즈> 스틸 컷. CJ ENM 제공

그는 영화에서 반려견 ‘완다’를 키우는 성공한 건축가 조민서를 연기했다. “(완다와 한 연기는) 호흡이라고 할 수가 없죠. 투쟁이죠. 감독이 ‘액션’해도 못 알아듣잖아요. 제 마음대로 뛰고 하니까 진짜 괴로웠죠.” 그 자신도 반려견을 키운 경험이 있다. “잃어버렸어요. 그 뒤로 다신 안 해요. 이젠 기운 없는 나이가 돼서 건사하기도 힘들어요. 새끼 키우듯 키워야 되거든요. 그럴 여력이 없어요.”

극 중 민서는 커리어로는 성공했지만 개인적인 삶은 외로운 인물이다. 그는 어떨까. “일상에서 외로운 건 늘 외로운 거고, 늙어가는 게 외로운 거죠. 유명한 사람이 그런 말도 했던데요. ‘늙을수록 외로워지라’고. 난 외로운 걸 좋아해요. 가만히 혼자 있는 것.”

그는 <미나리> 이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나리오들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난 여기 쭉 살았고, 활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을 탔다고 주인공으로 섭외가 오니까 ‘인간이 이렇게 간사한 거구나’ 해서 씁쓸했죠. 이렇게 여러분이 많이 온 것도 그래요. 제가 영화 라운드 인터뷰를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기자들이 많이 온 적은 없었거든요. 인기 스타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어요.”

영화 <도그데이즈>에서 윤여정은 잃어버린 반려견 ‘완다’를 찾는 과정에서 배달 라이더 탕준상의 도움을 받는다. CJ ENM 제공

영화 <도그데이즈>에서 윤여정은 잃어버린 반려견 ‘완다’를 찾는 과정에서 배달 라이더 탕준상의 도움을 받는다. CJ ENM 제공

혹시 지금을 평소 하고 싶었던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게 그렇더라고요, 늙으니까…. 뭐 하나는 시나리오가 괜찮았어요. 그래서 해볼까 했는데, 내가 선두에서 뛰어야 하더라고. 막 범인 잡고…. 그래야 하는데 이걸 하다간 죽을 것 같아서 못하겠다고 했어요.”

윤여정은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후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졌다. 해외 시상식에서 농담을 던지는 여유 있는 태도, 인터뷰에서 한 솔직한 답변들이 ‘명언’으로 회자됐기 때문이다. 그를 ‘롤모델’로 꼽는 이들도 많다. 정작 그는 자신을 ‘롤모델’로 여긴다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습다고 생각해요. 나는 여기에 쭉 있었는데 갑자기 왜 내가 롤모델이에요. 인생이 다 다른데, 당신이 살아야 될 인생과 내가 살아야 될 인생이 다르잖아요. 자기 인생대로 살면 되는 거죠.” 극 중 민서는 배달 라이더인 청년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현실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청년들을 보면 말을 안 해요. 나랑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인데 내가 감놔라 배놔라 한다고 내 말을 들을 리도 없고, 그건 오지랖이죠. 나는 그런 ‘충고의 말’ 너무 싫어해요.”

스스로도 “실용적인 사람”이고 “다정다감한 편이 못 된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최근 읽다가 공감이 갔던 시는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명예’다. 그는 “이 시인도 나 같은 인생을 살았구나 했다”며 시의 한 문장을 읊었다. “변명도 후회도 낙담도 아양도 없이/ 한길로 살아온 길이 외진 길이었을 뿐.” 영화 <도그데이즈>는 내달 7일 개봉한다.

영화 <도그데이즈> 스틸 컷. CJ ENM 제공

영화 <도그데이즈> 스틸 컷.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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