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리플레이
2024.02.09 06:00 위근우 칼럼니스트

왜, 그토록 공감했다는 노래가 이토록 공감되지 않는 걸까

지난해 10월 제78회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경찰과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우리의 사람이 필요한 거죠’ 합창을 지켜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KTV 캡처

지난해 10월 제78회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경찰과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우리의 사람이 필요한 거죠’ 합창을 지켜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KTV 캡처

다행히도, 이 칼럼은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진의 대국민 합창 무대를 아직 보지 못한 상태에서 쓰고 있다(마감일 기준). 만약 그 꼴을 직접 봤더라면 높은 확률로 그 미적 참담함에 훨씬 심술궂은 심정이 됐을 것 같다. 설 연휴 새해 인사로 대통령 스스로 “노래 가사에 내가 국가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이 다 담겨 있다”고 감탄했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를 부른다는 건데, 지난 4일 합창과 율동에 윤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담아 녹화했고 설 연휴에 방영될 예정이다.

신년 기자간담회를 대신해 KBS와의 단독 신년 대담을 사전 녹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해 이미 국민과의 소통이 아닌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라는 지적을 받는 상황에서, 누구도 딱히 원하지 않을 합창 무대까지 신년 인사로 전한다 하니, 역시 수요 없는 공급은 불통에서 시작된다.

물론 아직 보지 못한 무대의 만듦새에 대해 미리 평가할 수는 없다. 봐도 예상을 크게 벗어날 것 같진 않지만. 그보단 어떤 예술을 정치적 메시지로 전유할 때 필요한 도덕과 양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신년 인사는 윤 대통령이 3차로 간 코인 노래방에서 변진섭의 노래를 부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므로. 그가 그토록 마음에 들어 하고 공감했다는 이 가사가 정말 이 정권이 자신들의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나날에 대한 메시지로서 적절한가. 당대 최고의 작사가 중 하나였던 박주연의 아름답고 인류애 가득한 가사를 음미하며, 머릿속에서 뮤직비디오처럼 이번 정권에서의 몇몇 장면들을 재생해보자.

“그대 어깨 위에 놓은 짐이 너무 힘에 겨워서 길을 걷다 멈춰진 그 길가에서 마냥 울고 싶어질 때 아주 작고 약한 힘이지만 나의 손을 잡아요. 따뜻함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줄게요.”

“따뜻함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줄게요”…윤 대통령이 그렇게 맘에 들어한다는 노랫말
정작 현역 의원이 대통령 손을 잡고 국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다 끌려나가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현실
이태원 유가족들의 절규마저 외면한 정부…누구도 원치 않을 ‘그들의 합창’을 참고 들어야하나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지난 1월 18일 전주시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며 참석자들과 악수하는 동안 소동을 일으키다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며 끌려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지난 1월 18일 전주시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며 참석자들과 악수하는 동안 소동을 일으키다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며 끌려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나의 손을 잡으면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지만, 정작 현역 국회의원이 대통령 손을 잡고 국민들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다가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가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지난 1월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국회의원 강성희가 윤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대통령 경호원들은 그의 입을 틀어막고 몸을 끌어 행사장 밖으로 억지로 끌어냈다. 강 의원이 악수한 상태에서 손을 잡아끌어서 위해 행위로 판단했다는 대통령실 해명도 궁색하거니와 비판적 발언을 한다는 이유로 입을 틀어막고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대통령에게 누가 어깨 위 짐의 무게를 토로하며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설마 경호원들 몸에 열이 많아 끌고 나가는 그 손길이 따뜻한 어루만짐이진 않겠지.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반쯤 농담처럼 놀려주고 싶었지만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도저히 웃을 수 없다. 도심에서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넘어져서’ 압사했던 끔찍한 사건이 본인의 임기 중에 벌어졌고, 그 사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정밀한 진상 조사를 원하는 유가족들의 요청인 ‘이태원참사특별법’이 발의되었음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고서 저 가사를 입에 올리는 것이, 목을 통해 울음이 아닌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이상하거나 창피하지 않은가. 자신들의 가족이 그날 밤 그렇게 허무하게 운명을 달리해야 한 원인과 그에 대한 국가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다며 추운 겨울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로 스스로 넘어져가며 특별법이 폐기되지 않도록 호소한 유가족들에게야말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그들에게 필요한 사랑과 관심 대신, 유가족과의 사전 협의 없는 지원책만을 꺼내들었다. 이건 사랑이 아닌 모욕이다.

“때론 내가 혼자뿐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죠. 생각하면 그 어느 순간에서도 하늘만은 같이 있죠. 아주 작고 약한 힘이라도 내겐 큰 힘 되지요. 내가 울 때 그대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던 것처럼.”

외로움은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폭력과 배제에 쉽게 노출될수록,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알릴 자원과 통로가 부족할수록 ‘내가 혼자뿐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의 피해자처럼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 이주노동자처럼 차별과 무시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곁에 ‘따뜻한 위로’와 손길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정확히 이들의 곁에 함께해줄 상담소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지난해 11월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 피해 지원 예산을 27.5% 삭감하기로 했고, 가정폭력상담소 운영 인력도 약 80명 감축이 예상된다. 같은 시기 여성가족부는 117학교폭력신고센터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해당 예산은 경찰청 예산으로 복구되었지만 정작 오랜 시간 상담을 해온 베테랑 상담사들에 대한 고용 승계는 하지 않기로 했다.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했던 대통령의 여성가족부는 그런 것인가 보다. 물론 다른 부서도 동참했다. 고용노동부도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을 삭감해 이주민들의 한국 적응을 돕던 전국의 센터들은 문을 닫았고, 센터를 통해 한국어나 한국 생활 팁을 배우던 이주민들은 고스란히 그 공백을 겪는 중이다. 마침 여성가족부의 예산 삭감이 논란이 될 즈음 윤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나라가 많은 돈을 못 주고 많은 힘이 안 되더라도 그야말로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게 국가의 본질 기능”이라고 딱 이 구절을 인용한 바 있는데, 약자들을 위한 예산(돈) 대신 노래로 때우겠다는 복선이었을까.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에서 오는 사람들 모두 다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재정 건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눈물을 머금고 예산을 삭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에선 약자를 위한 예산을 삭감하는 동시에 ‘앞서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만큼은 사랑과 돈 모두를 지원해주는 중이다. 2023년 윤석열 정부의 세수 결손은 역대 최고인 56조원인데 그 와중에도 법인세 최고세율과 종합부동산세의 세율을 인하해주는 등 소위 부자 감세 기조는 꾸준히 유지하는 중이다. 혜택 대상 자체가 극소수의 부유층에만 집중된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상향이나, 금융투자소비세 폐지 등도 올해 추진될 계획이다.

매슈 데즈먼드의 <미국이 만든 가난>(성원 역)에선 “중간층과 부유층 가정은 대대적인 세금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걸 딱히 혜택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정부가 가난한 가정에 퍼 주기식 복지를 한다며 분통을 터트”린다고 비판한다. 세금 감면은 취약계층이 받는 직접적 지원보다 더 큰 경제적 지원이지만 정작 당사자들도 그 혜택과 거리가 먼 이들도 부자 감세보다 약자에 대한 복지를 더 아까워한다. 데즈먼드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감세는 민간의 풍족함과 공공의 누추함에 불을 지피는 주요 엔진 중 하나”라고. 윤 정권의 재정 건전성이란 이처럼 ‘앞서가는 사람들’을 위해 ‘뒤에서 오는 사람들’을 희생하는 구조다.

이렇게 따져볼수록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는 정말 잘 쓴 가사이며, 이 노랫말에 국가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이 모두 담겼다는 윤 대통령의 평가는 매우 정확하다. 단지 문제는 그 노랫말과 전혀 반대되는 행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앞에 두고서 딱히 아름답지도 않을 대통령과 직원들의 합창 무대를 참고 보는 일에야말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볼) 필요 없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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