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송의 아니 근데
2024.03.28 06:00 입력 2024.03.28 06:03 수정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내 혈육의 연인에 집중하는 서사…어느새 응원하게 되네

JTBC 연애 예능 프로그램 <연애남매>의 한 장면. 웨이브 캡처

JTBC 연애 예능 프로그램 <연애남매>의 한 장면. 웨이브 캡처

어느 날, 연애 프로그램을 보던 친구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 내 고등학교 동창이다!” 친구는 동창이 얽히고설킨 러브 라인에서 헛발질할 때마다 반은 안타까워하며, 반은 흥미로워하며 관전했다. “잘 좀 해봐…. 근데 쟤가 저런 애였나?” 인간은 누구나 그 관계에 맞는 다양한 역할과 얼굴을 바꾸어 가며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모습은 나와의 관계 속에서만 유효한 일부이다. 직장에서의 나, 가족과 있는 나, 친구와 있는 나(그중에서도 그룹에 따라 다시 자아는 분화되기 마련이다), 혼자 있는 나, 온라인 세계에서의 나… 정말이지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연애는 대부분 두 사람 간의 독점적 관계 안에서 진행되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보니, ‘연인으로서의’ 혹은 ‘연애 관계에서의’ 그 사람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아니 어쩌면 너무 가까운 사이여서, 사적인 모습 중 어떤 부분은 절대로 보거나 보이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연애사나, 연인으로서의 가족 구성원의 모습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족’과 ‘연애’를 결합한 예능이 있다. 3월1일 방송을 시작한, <연애남매>(JTBC) 이야기다.

<연애남매>의 공식 소개는 다음과 같다. “남매들이 모여 서로의 연인을 찾아가는 가족 참견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남녀가 모여 합숙하면서 짝을 찾아가는 내용은 기존의 데이팅 프로그램과 같다. 넘쳐나는 데이팅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여기에 어떤 변주를 더하는가에 달렸다. <환승연애>의 경우 전연인(X)과 함께 출연한다는 파격적인 소재로 공개 전부터 ‘막장’이 아니냐는 화제몰이를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누가 누구의 X인지 추리하는 추리극의 형식과 ‘이전 연애에서 서툴렀던 자신과의 만남, 과거와의 대화,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재결합과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선택’ 같은 성장담의 요소가 시너지를 내며 뜨거운 인기를 구가했다. <연애남매>는 <윤식당>과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 시리즈로 쌓아 올린 신뢰가 두터운 이진주 PD의 신작이다. <연애남매> 역시 티저가 공개되자마자 ‘혈육’과, 그것도 남매가 함께 데이팅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설정이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내 가족, 심지어 남매의 연애? 아, 그거 정말 너무… TMI 아닌가요? 더군다나 남매의 연애사는 동성에서 파생되는 조언이나 공감조차 끼어들 틈이 없는, ‘쟤 왜 저래?’의 감수성으로 소비되었다. <전지적 참견 시점>(MBC)에서 동생 파트리샤가 이성 앞에서 부끄럼을 타거나 칭찬을 받을 때마다, 텅 빈 눈으로 짜증스러워하는 조나단의 얼굴처럼. <연애남매>는 이러한 예측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동시에, 의외의 방식으로 비틀며 다양한 재미와 설렘을 선사한다.

<연애남매>의 매력 포인트 중 먼저 추리극 요소를 살펴보자. <연애남매>의 출연자들은 누가 누구의 혈육인지 모른 채로 입주한다. 출연자들은 남매끼리도 천연덕스럽게 자기소개와 존댓말을 주고받으며 처음 만난 척한다. ‘누나’나 ‘오빠’라는 표현 대신 ‘혈육’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힌트를 지운다. 채널과 시청자는 누가 누구와 남매인지 추리한다. 출연자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데이트는 ‘큐피드 데이트’로, 여성 출연자는 내가 데이트하고 싶은 남성의 혈육으로 ‘추정되는’ 여성에게 데이트 카드를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트 카드가 잘못 전달되기도 하고, 과정은 꼬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원하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정형화 된 남매의 이미지를 넘어, 존중하고 아끼는 관계성 보여줘
다양한 가정사 보여주며 ‘4인 가족’이 정상이라는 시각 다시 생각

또한 나와 함께 출연하는 동성 출연자는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의 혈육일 수도 있기에 상호존중과 호의를 기반으로 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것이 <연애남매>의 두 번째 매력 포인트인, 인간의 입체성을 살펴볼 기회이다. 한 사람을 여러 관계 속에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좀 더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데이팅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연애 시장의 매물’로서 평가받고 분석당한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른 방면의 매력이나 특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작은 실수나 언행 하나도 그 사람의 전체인 양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연애남매>에는, 출연자의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연애 관계 이외의 모습’을 아는 또 다른 출연자가 있다. 그는 0표를 받은 혈육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하고, 평소와 같거나 다른 모습에 애정 어린 코멘트를 한다. 즉 <연애남매>의 출연자는 데이팅 프로그램이라는 정글에서, 최소한 한 명의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이다. 이것은 출연자의 정서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그 사람을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시청자가 그를 여러모로 이해하는 경로를 제시한다.

JTBC 연애 예능 프로그램 <연애남매>의 포스터. 웨이브 캡처

JTBC 연애 예능 프로그램 <연애남매>의 포스터. 웨이브 캡처

그래서일까, <연애남매>에는 출연자의 어린 시절을 담은 다양한 시청각 자료가 등장한다. 사진이나 홈비디오를 통해 시청자는 자신의 가족 관계를 떠올리거나, 출연자의 성장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직업 공개 또한 출연자가 자신의 성장 과정을 담은 앨범을 공유한 뒤, 혈육이 써준 자기소개서를 읽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나’도 몰랐던 나의 어떤 모습을,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한 존재가 써준다. 가족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출연자들은 새삼스럽게 눈물짓기도 하고, 자신조차 몰랐던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대면한 후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연애남매> 출연자들의 가족 구성원 또한 다양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실 <연애남매>를 둘러싼 반응에는, 이것이 기존의 가족 예능과 다를 바 없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데이팅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남매라면, 흔히 말하는 ‘화목한 (정상) 가족’일 확률이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초반에 있었던 부모님이 해준 음식으로 식사하기, 부모님과 전화하기 등의 미션은 가족 예능의 면모를 강화하는 요소이지만, 부모님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출연자들의 가족 구성원은 한부모 가족이거나, 서로가 유일한 가족이라고 말하는 등 다양했다. 이러한 가족 구성이 의도적으로 섭외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진주 PD의 말은 지배적인 가족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소위 4인 가족을 표준으로 둔 ‘정상 가족’이 다수라고들 하지만 어쩌면 실제 비율은 이런 게 아닐까?”

비슷한 맥락에서, <연애남매>는 지금껏 미디어나 밈에서 정형화된 남매의 이미지 또한 뒤흔들어 놓는다. 가족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지만, (근친상간을 연상케 하는) 남매의 다정함은 언제나 정도를 지켜야 하는 경계의 대상이다 못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정상’으로 통했다. 상대의 자연스러운 모습, 꾸미지 않은 모습을 알고 있기에 환상을 가질 수 없고, ‘환멸의 눈동자’로 볼 뿐이라는 믿음도 굳건하다. 그러나 <연애남매>에서 출연자들이 형성하는 관계는 매우 다양하다. 티격태격하는 출연자도 있고, 서로 애틋해하는 출연자도 있고, 출연자 중 내 혈육이 가장 예쁘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출연자도 있다. 0표를 받았을 때는 안타까워하다가, 몰표를 받으면 또 “저렇게까지 행복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라는 조나단의 코멘트처럼 어쩐지 ‘킹 받아’ 하기도 한다. 남매 관계의 묘사는 지나치게 낭만화되거나(아버지를 대리하는 오빠의 여동생에 대한 극성맞은 보호),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등 양극화되어 있었다.

<연애남매>에서는 통 볼 기회가 없었던 다정한 남매,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관계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애정을 바탕으로 <연애남매>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는 ‘내가 호감 가는’ 사람이 ‘내 혈육’과 연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누나와의 관계가 끈끈한 출연자 철현의 경우, 그의 가족 판타지는 미래의 아내보다 누나의 짝인 ‘매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통 행복한 가족을 갈망하는 남성 출연자의 욕망이 아내에 집중하는 것과 달라서 신선하다. 아예 ‘매형 헌터’라는 자막을 달고 다니는 철현은 새로운 여성 출연자가 등장했을 때도, 그와 자신의 연애 가능성보다 그의 존재가 자신의 누나가 형성하고 있는 러브 라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궁금해한다. 프로그램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 엉뚱한 매력을 어느새 응원하게 된다. 그러니까 마라맛 도파민의 시대에 <연애남매>가 띄운 승부수는 의외로 맑고 따뜻한 순두부의 맛이며, 이 정공법은 제법 묵직하게 통하는 중이다.

그 외 출연자 개개인의 매력, 실제 남매인 조나단과 파트리샤를 포함한 패널의 케미, 출연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제작진의 연출과 편집, 프로그램의 지향점과 일치하는 공간의 아늑함, 혈육이 받은 표를 다른 혈육에게 알리는 시스템 등 <연애남매>의 포인트는 다양하다. 가족과 연애라는 상충되는 두 요소를 훌륭하게 버무린 이 예능이 마지막까지 순항하기를 기대하며 응원한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런 기사 어떠세요?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