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센던트’

2012.02.12 21:28
백은하 기자

“하와이가 천국이라고?” 한 남자의 위태로운 현실일 뿐

“본토 친구들은 하와이가 천국인 줄 안다. 칵테일에 취해 춤추고 파도나 타는 줄 안다. 우리는 가족문제도 없고 상처도 덜 받을 거라고… 천국? 천국 같은 소리 하네.” 와이키키 해변의 야자수, 투명한 바다 그리고 따뜻한 휴식. 하와이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휴양의 도시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쓰레기 처리와 실업률을 걱정해야 하는 일상의 도시다.

하와이 토박이 변호사 맷 킹(조지 클루니)은 아내가 보트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는 바람에 두 딸의 교육까지 책임져야 하는 신세다. 생활비를 벌어다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도통 무관심했던 아빠에게 아이들의 현재 모습은 충격 그 자체다. 어린 딸은 엉뚱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괴짜 소녀였고, 큰딸은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젊음을 낭비한 지 오래다. 엄마가 사라진 가정, 교집합도 소통의 끈도 찾을 수 없는 가족. 그 와중에 큰딸 알렉산드라는 말한다. “아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엄마 그동안 바람 피웠어.”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의 감독 알렉산더 페인은 샛길로 새거나 내리막을 타는 남자들에게 관심이 많다.

영화  <디센던트>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디센던트>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부유한 변호사 맷의 삶 역시 일견 풍요로운 것 같지만 사실 내리막이다. 하와이 왕족 혈통에 카우아이 섬의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아내의 마음에는 어떤 지분도 남아있지 않은 남자. 불륜에 대해 더 이상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막막함을 안고 맷은 갑작스러운 삶의 파도 위에서 위태롭게 보드를 탄다.

“가족은 군도(群島)와 같다.”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작가 카우이 하트 헤밍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디센던트>에서 ‘하와이’는 단순한 로케이션을 넘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다. 하와이의 독특한 역사와 이 섬이 마주한 날카로운 현실을 한 남자와 그의 가정에 불어닥친 불행 속에 엮어내는 감독 알렉산더 페인의 솜씨는 꼼꼼하고 유려하다.

지난 1월에 열린 2012년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디센던트>는 오는 26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5개 부문 후보로 올라있다.

조지 클루니는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게리 올드먼,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 등과 함께 남우주연상을 놓고 각축을 벌인다.

미지의 내연남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혀 잰걸음으로 동네를 뛰어다니고, 분노에 휩싸여 병실에 누운 아내에게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조지 클루니. 뭇여성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는 쿨한 독신남, 아르마니 수트를 입고 에스프레소 잔을 든 조지 클루니가 아니라 세월이 내려앉은 반백의 머리에 하와이언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동분서주하는 조지 클루니의 모습은 낯선 동시에 안도감을 준다. 동경의 존재에서 동감의 존재로, 기분 좋은 하강이다.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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