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7) 큰길이 둥 떴

2022.04.28 07:00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늙은이(老子) 34월은 큰길이 둥 떴음이다. 둥둥 떴다 하고 둥글게 떴다고 하는 그 둥. 동그란 풍선 따위가 하늘에 가볍게 떠오른 둥이요, 가벼운 것들이 물 위를 떠다니는 꼴의 둥이요, 밝은 달이 하늘 높이 뜬 둥이다.

달 하나가 둥 떠서 강 천 개를 비춘다. 그렇게 큰길이 둥 뚜렷이 떴다.

8월에서, 썩잘(上善)은 물과 같은데 물은 잘몬에게 잘 좋게 하고 다투질 않으며 뭇사람 싫어하는 데로 지내니, 거의 길이라고 했다. 거의 길이라고 했을 뿐 물이 길은 아니다.

또 이렇게 말했다 : 참알줄(道德經)의 길은 그 스스로 참이며 얼이다. 그 변화무쌍한 참얼의 길은, 동쪽 하늘로 솟은 머리 ‘ㄱ’을 꼿꼿이 들고 세운 사람 ‘ㅣ’가 하늘땅 가운데로 통하고 사무쳐서 쉬지 않고 흐르는 ‘ㄹ’이다. 랄라리 흔들고 떨면서 가고 도는 것이다. 그 길의 뜻은 도(道)를 파자 한 것과 다르지 않다. 머리는 처음이며 앞의 뜻이니 ‘ㄱ’과 같다. 쉬엄쉬엄 걸어가는 발은 달리고 또 뛰어넘기도 한다. ‘ㅣ’와 ‘ㄹ’이 그 뜻으로 하나다. 그 길을 닮은 것이 물이다. ‘ㅁ’은 오행의 흙이고, 계절의 솟음, 방위의 가운데를 뜻한다. 치우침 없이 왕성하게 솟구치는 온갖 것들의 바탕이다. 길과 물에 모두 ‘ㄹ’이 있으니 흥미롭지 않은가! 하늘로 머리 둔 이가 꼿꼿이 가는 길의 바탕이 곧 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큰길은 큰숨의 빈탕으로 보아야지. 큰숨은 살아있는 산숨이요, 해달이 낮밤으로 돌아가는 숨돌이지. 하늘땅 사이에 가득가득 차서 잘몬이 나고 자라는 힘의 뿌리 바탈이고. 닝겔, 밀월, 2008

큰길은 큰숨의 빈탕으로 보아야지. 큰숨은 살아있는 산숨이요, 해달이 낮밤으로 돌아가는 숨돌이지. 하늘땅 사이에 가득가득 차서 잘몬이 나고 자라는 힘의 뿌리 바탈이고. 닝겔, 밀월, 2008

다석의 말이다 : 참 하느님은 우리가 바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신이 아니다. 참 하느님은 없는 것 같다. 없는 것 같은 것이 하느님이다. 신통괴변(神通怪變)은 하느님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의 큰늘이요, 한늘이다. 무수한 천체를 품고 계시는 무한 우주다.

해는 초속 217킬로미터로 달려서 은하를 돈다. 한 바퀴 도는데 2억년이 걸린다. 땅구슬(地球)은 그 해를 좇아가면서 초속 32.5킬로미터로 해를 돈다. 해는 아무 것도 없는 빈탕의 길을 달리고 땅구슬도 빈탕의 길을 달린다. 땅구슬이 해를 좇아가면서 돌아 갈 때는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달린다. 그 모양은 마치 일렁이는 물결 같다. 길은 해와 땅구슬의 길처럼 없이 있는 빈탕의 큰늘이요, 한늘이다.

집집 우주가 돌아가는 큰길은 온갖 것들이 치우치지 않고 왕성하게 솟구치는 산숨(生氣)의 바탕이다. 그 큰길의 바탕에 또한 물이 있다. 큰길이 둥 뚜렷이 떠서 한늘로 돌아가며 스스로 저절로의 바탕을 이루니 이쪽저쪽이 따로 없다. 큰길의 한늘에 옳고 그름이 또 어디 있을까! 물은 왼쪽으로도 흐르고 오른쪽으로도 흐른다. 그저 흐를 뿐이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7) 큰길이 둥 떴

이번에 둘러앉은 높 마당은 큰물이 흐르는 숲 언저리다. 여섯은 여섯의 자리를 돌아가며 세상의 온통을 본다. 다 볼 수 있도록 돌아가는 것이다. 다 보아야 알아진다. 늙은이와 떠돌이가 말을 연다. 다른 넷은 흰 빛의 무지개로 둥근 달을 그려 띄운다. 깊은 밤하늘에 흰 무지개 달빛이 환하다. 실바람이 불었다. 달빛이 출렁이는 물 위에서 윤슬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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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 큰길이 둥 뚜렷이 떴음이여. 외게도 옳게도로다. 이렇게도 저렇게로다. 음, 큰길을 무엇으로 보아야 하지?

늙은이 : 큰숨(大氣)의 빈탕으로 보아야지. 큰숨은 살아있는 산숨이요, 해달(日月)이 낮밤으로 돌아가는 숨돌(氣運)이야. 하늘땅 사이에 가득가득 차서 잘몬이 나고 자라는 힘의 뿌리 바탈이고.

떠돌이 : 둥근 달처럼 둥 뚜렷이 떴다는 건 그저 빗대어 말한 것일 뿐, 큰길의 큰숨이 큰늘로 싱싱하게 가득 찼다는 것이네?

늙은이 : 그렇지! 거의 물과 같지. 그렇지만 물은 아냐. 빈탕에 가득가득한 산숨의 크나 큰 큰숨, 숨돌, 스스로 저절로 돌아가는 늘이지.

떠돌이 : 그래서 외게도(그르게도) 옳게도라고 했구나. 이렇게도 저렇게도 돌아돌아 흘러가는 것이니 그 말의 뜻을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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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 큰숨이 숨돌로 돌아가니 잘몬이 믿거라고 쑥쑥 나오지 않겠어?

떠돌이 : 그렇군. 큰길이 둥 뚜렷이 떠서 큰숨으로 숨돌이 돌아가는데 어떻게 나오지 말라고 하겠어. 스스로 저절로 돌아가는 잘몬이잖아.

늙은이 : 그런데도 큰숨의 큰길은 일이 이뤄졌다고 이름 지어서 그걸 갖지도 않아. 아껴서 기른 잘몬인데도 그것의 임자가 되지 않지. 큰길은 늘 싶음(欲)이 없거든.

떠돌이 : 늘 싶음이 없어서 작음보다 더 작다고 이름 할 만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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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 쑥쑥 나온 잘몬을 이름 지어 갖지도 않고 잘몬이 돌아가도 임자가 있었는지도 모르니 큼보다 더 크다고 이름 할 만하지.

떠돌이 : 씻어난이(聖人)가 여기서 왜 나와?

늙은이 : 속알이 커서 우러러 본받을 솟난이거든. 그이의 길은 늘 큰숨으로 돌아가는 큰길이지. 스스로 저절로 돌아가는 큰길일 뿐 싶음이 큰 건 아니야.

떠돌이 : 크려고 하는 싶음이 없으니 저절로 그 큼을 이루는 것이구나.

늙은이 : 큰길이 둥 뚜렷이 떴어. 솟음이요, 솟구침이지. 큰숨 하나가 솟고, 숨돌 하나가 돌아가고, 큰늘 하나가 흘러가는 거야. 그 하나가 님이지. 그 님은 스스로 저절로 하실 뿐이야.

떠돌이 : 그 무엇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이유군. 그럼 34월을 새로 새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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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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