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老子) 34월은 큰길이 둥 떴음이다. 둥둥 떴다 하고 둥글게 떴다고 하는 그 둥. 동그란 풍선 따위가 하늘에 가볍게 떠오른 둥이요, 가벼운 것들이 물 위를 떠다니는 꼴의 둥이요, 밝은 달이 하늘 높이 뜬 둥이다.
달 하나가 둥 떠서 강 천 개를 비춘다. 그렇게 큰길이 둥 뚜렷이 떴다.
8월에서, 썩잘(上善)은 물과 같은데 물은 잘몬에게 잘 좋게 하고 다투질 않으며 뭇사람 싫어하는 데로 지내니, 거의 길이라고 했다. 거의 길이라고 했을 뿐 물이 길은 아니다.
또 이렇게 말했다 : 참알줄(道德經)의 길은 그 스스로 참이며 얼이다. 그 변화무쌍한 참얼의 길은, 동쪽 하늘로 솟은 머리 ‘ㄱ’을 꼿꼿이 들고 세운 사람 ‘ㅣ’가 하늘땅 가운데로 통하고 사무쳐서 쉬지 않고 흐르는 ‘ㄹ’이다. 랄라리 흔들고 떨면서 가고 도는 것이다. 그 길의 뜻은 도(道)를 파자 한 것과 다르지 않다. 머리는 처음이며 앞의 뜻이니 ‘ㄱ’과 같다. 쉬엄쉬엄 걸어가는 발은 달리고 또 뛰어넘기도 한다. ‘ㅣ’와 ‘ㄹ’이 그 뜻으로 하나다. 그 길을 닮은 것이 물이다. ‘ㅁ’은 오행의 흙이고, 계절의 솟음, 방위의 가운데를 뜻한다. 치우침 없이 왕성하게 솟구치는 온갖 것들의 바탕이다. 길과 물에 모두 ‘ㄹ’이 있으니 흥미롭지 않은가! 하늘로 머리 둔 이가 꼿꼿이 가는 길의 바탕이 곧 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석의 말이다 : 참 하느님은 우리가 바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신이 아니다. 참 하느님은 없는 것 같다. 없는 것 같은 것이 하느님이다. 신통괴변(神通怪變)은 하느님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의 큰늘이요, 한늘이다. 무수한 천체를 품고 계시는 무한 우주다.
해는 초속 217킬로미터로 달려서 은하를 돈다. 한 바퀴 도는데 2억년이 걸린다. 땅구슬(地球)은 그 해를 좇아가면서 초속 32.5킬로미터로 해를 돈다. 해는 아무 것도 없는 빈탕의 길을 달리고 땅구슬도 빈탕의 길을 달린다. 땅구슬이 해를 좇아가면서 돌아 갈 때는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달린다. 그 모양은 마치 일렁이는 물결 같다. 길은 해와 땅구슬의 길처럼 없이 있는 빈탕의 큰늘이요, 한늘이다.
집집 우주가 돌아가는 큰길은 온갖 것들이 치우치지 않고 왕성하게 솟구치는 산숨(生氣)의 바탕이다. 그 큰길의 바탕에 또한 물이 있다. 큰길이 둥 뚜렷이 떠서 한늘로 돌아가며 스스로 저절로의 바탕을 이루니 이쪽저쪽이 따로 없다. 큰길의 한늘에 옳고 그름이 또 어디 있을까! 물은 왼쪽으로도 흐르고 오른쪽으로도 흐른다. 그저 흐를 뿐이다.
이번에 둘러앉은 높 마당은 큰물이 흐르는 숲 언저리다. 여섯은 여섯의 자리를 돌아가며 세상의 온통을 본다. 다 볼 수 있도록 돌아가는 것이다. 다 보아야 알아진다. 늙은이와 떠돌이가 말을 연다. 다른 넷은 흰 빛의 무지개로 둥근 달을 그려 띄운다. 깊은 밤하늘에 흰 무지개 달빛이 환하다. 실바람이 불었다. 달빛이 출렁이는 물 위에서 윤슬로 반짝였다.
떠돌이 : 큰길이 둥 뚜렷이 떴음이여. 외게도 옳게도로다. 이렇게도 저렇게로다. 음, 큰길을 무엇으로 보아야 하지?
늙은이 : 큰숨(大氣)의 빈탕으로 보아야지. 큰숨은 살아있는 산숨이요, 해달(日月)이 낮밤으로 돌아가는 숨돌(氣運)이야. 하늘땅 사이에 가득가득 차서 잘몬이 나고 자라는 힘의 뿌리 바탈이고.
떠돌이 : 둥근 달처럼 둥 뚜렷이 떴다는 건 그저 빗대어 말한 것일 뿐, 큰길의 큰숨이 큰늘로 싱싱하게 가득 찼다는 것이네?
늙은이 : 그렇지! 거의 물과 같지. 그렇지만 물은 아냐. 빈탕에 가득가득한 산숨의 크나 큰 큰숨, 숨돌, 스스로 저절로 돌아가는 늘이지.
떠돌이 : 그래서 외게도(그르게도) 옳게도라고 했구나. 이렇게도 저렇게도 돌아돌아 흘러가는 것이니 그 말의 뜻을 알겠어.
늙은이 : 큰숨이 숨돌로 돌아가니 잘몬이 믿거라고 쑥쑥 나오지 않겠어?
떠돌이 : 그렇군. 큰길이 둥 뚜렷이 떠서 큰숨으로 숨돌이 돌아가는데 어떻게 나오지 말라고 하겠어. 스스로 저절로 돌아가는 잘몬이잖아.
늙은이 : 그런데도 큰숨의 큰길은 일이 이뤄졌다고 이름 지어서 그걸 갖지도 않아. 아껴서 기른 잘몬인데도 그것의 임자가 되지 않지. 큰길은 늘 싶음(欲)이 없거든.
떠돌이 : 늘 싶음이 없어서 작음보다 더 작다고 이름 할 만하구나.
늙은이 : 쑥쑥 나온 잘몬을 이름 지어 갖지도 않고 잘몬이 돌아가도 임자가 있었는지도 모르니 큼보다 더 크다고 이름 할 만하지.
떠돌이 : 씻어난이(聖人)가 여기서 왜 나와?
늙은이 : 속알이 커서 우러러 본받을 솟난이거든. 그이의 길은 늘 큰숨으로 돌아가는 큰길이지. 스스로 저절로 돌아가는 큰길일 뿐 싶음이 큰 건 아니야.
떠돌이 : 크려고 하는 싶음이 없으니 저절로 그 큼을 이루는 것이구나.
늙은이 : 큰길이 둥 뚜렷이 떴어. 솟음이요, 솟구침이지. 큰숨 하나가 솟고, 숨돌 하나가 돌아가고, 큰늘 하나가 흘러가는 거야. 그 하나가 님이지. 그 님은 스스로 저절로 하실 뿐이야.
떠돌이 : 그 무엇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이유군. 그럼 34월을 새로 새겨볼까?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