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와 <온앤오프>, 사생활 관찰 리얼리티쇼와 하이에나의 언어들

2020.11.13 16:23 입력 2020.11.13 23:21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말 그대로 ‘사생활’인데…평가 좀 하지 맙시다, 재미 없으니

사구와 스리쿠션 당구를 꽤 잘 치는 친구가 있다. 잘 치는 만큼 다른 실력자들과도 종종 게임을 하는 듯하고 그렇기에 더 잘 치고 싶은 모양인데, 굳이 따로 레슨을 받고 싶진 않다고 했다. 돈이나 시간이 아까워서는 아니다. 아마도 정식으로 레슨을 받으면 그동안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경험을 통해 만들어온 폼에 스민 나쁜 습관을 지적받고 큐를 잡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게 싫다는 이유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 굳이 기존의 본인 경험을 리셋하고 초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꽤 거북한 일이다. 자신의 미숙함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도 영 피하고 싶은 일이다.

<b>MBC ‘나 혼자 산다’</b><br />“취미로 할 거면 그냥 2년 동안 노래방을 다니지 그랬냐”

MBC ‘나 혼자 산다’
“취미로 할 거면 그냥 2년 동안 노래방을 다니지 그랬냐”

그래서 지난 11월6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김지훈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방송에서 사교육 마니아로 그려질 정도로 그는 하루에만 스트레칭, 농구 스킬 트레이닝, 보컬 학원을 순회했다. 보통 마흔 즈음 다양한 취미에 도전하는 이들은 재능이 다양하거나 습득 능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김지훈은 그와 거리가 멀어보였다. 스트레칭을 하면서는 고통에 얼굴이 퀭해졌고, 드리블 기술을 사용하기엔 공이 손에 착착 붙지 않았으며, 노래를 부를 땐 아무 기교 없이 거의 성대를 혹사시키는 수준으로 발성했다. 그런데도 그는 꿋꿋했고, 농구와 노래 모두 지금 보면 마냥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나마도 배우기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못하는 것일수록 배우기 싫고 시도하기 싫다는 것을 잘 아는 입장에서 그 태도가 좋아보였다. 하지만 정작 <나 혼자 산다>는 그 태도의 어떤 것이 시청자에게 긍정적 자극을 주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김지훈이 2년 동안 보컬 학원을 다녔는데도 그 정도 실력이라는 사실에 대해 기존 멤버인 만화가 기안84가 “취미로 할 거면 그냥 2년 동안 노래방을 다니지 그랬냐”고 말하는 장면이 그대로 나온 것을 보면. 악의 없는 농담이었다. 다만 존중은 없었다.

<나 혼자 산다>라는 제목에서의 ‘산다’라는 개념이 단순히 1인 가구로서 거주의 양식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서지혜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며 친구들과 온라인 술 모임을 하는 것처럼 방역과 친교의 조화를 이루는 것도 삶의 한 형식이자 아이디어고, 보이그룹 2PM의 장우영이 단지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아로마 오일을 애용하는 것도 삶의 태도다. 그중 멋들어진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7000여장의 LP를 모으고 세척하고 감상하는 장우영의 취미는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 김지훈은 후자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이 되어 자신이 잘 못하는 분야에 대해 향상심을 갖고 배워나가는 것 역시 그 자체로 삶의 스타일이자 방향성이다. 중요한 건 2년 동안 레슨을 받았는데도 노래 실력이 별로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미숙함에 대한 민망함을 견뎌내며 더 나아지기 위해 2년을 투자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배울 만한 태도다. 그리고 앞에 인용한 기안84의 코멘트는 그 태도의 근본 전제를 부정하는 셈이다. 다들 왁자지껄하는 도중 생각 없이 던진 농담이지만, 누군가의 일상을 쫓아 그 안에서 삶의 스타일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면 하지 않거나 편집하는 게 나을 말이다.

<b>tvN ‘온앤오프’</b><br />“저거 어떡해” “또 먹어 또”

tvN ‘온앤오프’
“저거 어떡해” “또 먹어 또”

리얼리티쇼가 개인의 사적인 삶의 풍경을 상품처럼 시장에 공개해 이득을 얻는 포맷이라면, 여기엔 그들이 비추는 일상과 개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제작진과 출연자가 어느 정도 고민하는지는 회의적이다. <나 혼자 산다> 10월2일 방영분에서는 배우 김광규가 종이신문을 구독한다는 것이 유머 소재처럼 사용됐다. 함께 출연한 배우 하석진이 태블릿으로 뉴스를 보는 장면에서 하석진은 김광규에게 “종이신문 보는 건 아니죠?”라고 슬쩍 눙쳤고, 그가 실제로 종이신문을 본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거나 박장대소했다. 이것은 주택 구매의 때를 놓쳐 월세로 살며 “이 집에 있는 순간마다 고통”이라는 그의 진담 섞인 농담에 폭소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김광규의 말대로 스마트폰으로 활자를 보는 건 눈이 아픈 일이고, 그 외에도 종이신문만의 정보 습득에서의 강점들도 있다(비슷한 시기 한겨레에 실린 여성학자 정희진의 칼럼 ‘첨단 산업, 종이신문’을 읽어보라). 설령 김광규가 세대적 습관 때문에 과거의 유물인 종이신문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 가정하더라도, 자신에게 익숙한 매체로 동시대의 시사와 교양을 습득하는 것은 놀림받기보다는 존중받을 일이다. 박나래는 친우 장도연도 종이신문을 본다고 그 유용성을 어느 정도 변호하고 무례할 수 있던 웃음을 수습하려 했지만, 이시언은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 같다”고 말했다. 김광규의 변명 아닌 변명에 과거 교양 프로그램에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이던 ‘Il Mio Nome E’Nessuno’를 깔아 그가 옛날 사람임을 강조하고 희화화한 제작진의 편집은 덤이다. 이것은 김광규 개인에게도 부당하지만, 종이신문이라는 매체에 익숙한 세대와 여전히 종이신문을 만들면서 동시대적 효과를 고민하는 생산자들에게도 부당한 희화화다. 이것은 무례하기 이전에 편협하다.

<b>MBC ‘나 혼자 산다’</b><br />“종이신문 보는 건 아니죠?”

MBC ‘나 혼자 산다’
“종이신문 보는 건 아니죠?”

‘신개념 사적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며 <나 혼자 산다>와 유사한 포맷으로 진행되는 tvN <온앤오프> 10월10일 방송분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 이혜성의 빵에 대한 사랑과 빵집 투어를 담은 VCR을 보던 MC 성시경은 계속해서 빵을 먹는 이혜성을 보며 “저거 어떡해”라며 반쯤 찌푸린 표정을 지었고 제작진은 굳이 “또 먹어 또”라는 자막을 달았다. 먹어도 먹어도 빵에 질리지 않고 행복해하는 모습에는 “처음에는 귀여웠는데 이젠 조금 무섭다”고까지 했다. 한국 예능의 오래된 나쁜 관행인 무안 주기의 연장일지 모르겠다.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나 혼자 산다>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삶에서 느끼는 행복의 척도나 추구하는 방식을 폄하하는 건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일종의 배제 역할을 한다. 최소한 그것이 TV를 보는 시청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엔 매우 기이한 것으로 분류된다. 다양한 개인의 삶을 소개하는 리얼리티쇼의 시대에 정작 편협한 기준, 보통은 스튜디오를 선점한 어떤 남성들의 기준이 적용되어 타인의 삶이 은연중 배제되는 역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게스트에 대한 예의, 폭력적이지 않은 소통의 추구라는 한국 예능의 오래된 과제를 리얼리티쇼의 시대에 새롭게 문제 삼아야 하는 건 이 지점이다. 이것은 과연 방송 윤리만의 문제일까. 자신의 그것과 비교해 유사하지 않거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 타인의 취미와 행복의 기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후려치고 무안을 주는 말과 행동은 방송 안과 밖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신이 잘난 척할 기회, 만만한 대상을 찍어 함께 놀리며 작은 권능을 누려볼 기회, 타인의 노력을 폄하할 기회, 상대를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하이에나의 언어들. 한국 사회의 꽤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이 습속은 특별한 악의 없이 방송에서도 툭툭 튀어나온다. 그러니 질문해보자. 자신의 미숙함과 대면하는 걸 무릅쓰고 향상심을 갖고 배우는 것에 대해, 익숙한 과거의 매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것에 대해, 맛있는 음식을 찾고 먹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만드는 것에까지 도전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놀리거나 부정적 피드백을 남기며 배제할 때 우리에게 남는 라이프스타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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