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민영화·규제 완화 확산

2009.04.26 17:30 입력 2009.04.27 09:52 수정

요금 인상·서비스 악화 ‘아우성’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개도국, 민영화·규제 완화 확산

#1 미국 일리노이주의 주민들은 2007년 1월 전기와 가스요금 청구서를 받아들고 입이 딱 벌어졌다. 전달에 비해 요금이 2배, 많게는 3배 더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난방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난방을 포기하고 식료품을 살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사태의 발단은 1997년 전기요금 경쟁 체제 도입이었다. ‘아메렌’과 ‘엑셀론’이라는 민간회사가 에너지를 공급해왔는데 상호 경쟁시키면 서비스가 좋아지고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10년간 가격을 동결하는 유예 기간을 두었다.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아메렌은 굴레를 벗자마자 요금을 대폭 인상했다. 주정부와 의회에 비상이 걸렸다. 1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 아메렌에 가격 인상분을 보전해주는 대신 아메렌이 소비자들에게 최대 85달러씩 환급해주는 고육책을 썼다. 그러나 지난해 일리노이주의 전기·가스요금은 또다시 20~30% 상승했다. 당시 일리노이주에 살고 있었던 윤대옥씨는 “나를 비롯해 상당수 미국인도 아메렌이 공기업이겠거니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2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7월 국적항공사인 ‘아르헨티나 항공’을 재국유화한다고 발표했다. 1989년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정부가 임기 4년 만에 국가전략산업은 물론이고 전기·가스·상하수도·항공·우편 등 거의 모든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한 지 20년 만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항공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는 민영화로 해결되지 않았다. 민영화 18년 동안 서비스의 질이 지속적으로 낮아졌고, 승객들은 외면했다.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항공기의 절반 이상이 노후화해 더 이상 비행하지 못할 형편이 됐다. 아르헨티나 항공은 당시 하루 1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대주주는 두 손을 들었고 국적 항공사의 침몰을 두고 볼 수 없는 정부가 나섰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여론의 지지 속에 우정사업(2003년), 상수도사업(2006년)을 재국유화했다. 연금의 재국유화도 추진되고 있다.

모두 공공서비스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낳은 풍경이다. 세계 여러 지역,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민영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6년 48개 개발도상국이 1041억달러에 달하는 249건의 민영화를 단행했다. 세계은행은 2006년 트렌드를 분석하면서 “민영화가 둔화되고 있다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민영화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129개 공공기관에서 2만2000여명의 인원을 감축하고, 인천공항공사를 비롯한 24개 공공기관을 민영화 또는 지분매각하거나, 주공과 토공의 통합 등 41개 기관을 16개 기관으로 통폐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선진국에선 이미 가능한 분야의 민영화는 대부분 이루어졌다”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새로운 민영화보다는 민영화된 기간산업의 규제문제가 초점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앞서 소개된 미국 일리노이주의 전력산업 규제 완화 사례에서 보듯 정부가 민영화했다고 모든 것을 일시에 풀지는 않았다. 민영화한 기간산업이라 해도 나름의 규제를 해왔다. 그러나 규제완화와 경쟁확대라는 명분으로 이마저도 풀어버리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민영화’(privatization)라는 용어는 영국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가 1930년대 독일의 경제정책을 기술하면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80년대 초 영국에서 불기 시작한 민영화의 바람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고 전 세계를 휩쓸었다. 80년대 말~90년대 초에는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국영기업들이 대대적으로 민영화되었다.

민영화 추진 방식과 운영방식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민영화한 공공서비스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요금 인상이다. 공공서비스는 소비자가 대체 공급자를 찾기 어려운 ‘자연독점’인 경우가 많아 요금 인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영국의 철도산업 민영화는 널리 알려진 실패 사례다. 영국 정부는 철도 공사를 선로 소유, 열차 운행, 열차 수리, 차량 수리 등 기능별로 나눠 민영화 했다. 철도 선로 시설을 관리하는 회사인 레일트랙도 96년 민영화했다. 민영화 이후 영국 철도는 흑자를 기록했고 정부의 재정 지출도 없어졌다.

그러나 철도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안전장치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2002년 10월 레일트랙을 다시 공기업으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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