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업체 매장 6곳 늘자, 인근 문구점 6곳 문 닫았다”

2022.11.15 17:02 입력 2022.11.16 06:31 수정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점에서 학생들이 학용품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점에서 학생들이 학용품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서 15년째 문구점을 운영하는 A씨(49)는 배달일로 투잡을 뛰며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1000원짜리 제품을 800원에 파는 동안 인근 다이소에선 반값에 판다”며 “대량으로 물량발주가 가능해 제조사들도 싼값에 물건을 주고 인기상품은 중국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만들어 가격 경쟁력을 따라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학교 앞 만물상이었던 문구점이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1만4731개였던 전국 문구소매점은 2019년 9468개로 줄었다. 매년 500여개 업체가 사라진 것이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은 현재 8000여곳(무인점포 제외)의 문구소매점이 남은 것으로 추정한다. 남은 이들도 대부분 생계를 위해 폐업을 고민하거나 대리운전 등의 투잡을 뛰고 있어 5년 후에는 문구소매점이 소멸될 수 있다고 조합은 우려한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과 더불어민주당 전국소상공인위원회 이동주 공동위원장 등은 15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다이소 같은 유통 대기업에 맞서 영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문구소매업의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문구소매점이 어려운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학령인구 감소와 학습준비물 제도 도입으로 문방구를 찾는 수요 자체가 줄었다. 게다가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게 주력 상품을 빼앗기면서 입지가 더 좁아졌다. 이에 동반성장위원회는 2015년 문구소매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형마트3사의 문구 할인 행사를 제안하고 일부 품목을 낱개로 팔지 못하게 권고했다. 대형마트가 동반위의 권고를 지키는 동안 다이소가 문구 판매를 확대해 논란이 됐고, 다이소도 2018년 묶음 판매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상생안을 냈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달리 유통산업발전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다이소가 매장을 늘리며 상생안(묶음판매)을 지키지 않고 있어 문구점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조합은 주장했다. 조합에 따르면 일산 마두역 주변의 경우 1.6km 이내 다이소 매장이 6곳으로 늘자 문구소매점도 6곳 폐업했다.

이런 와중에 문구소매점에 대한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도 지난 7월 말 해제돼 보호막이 사라졌다. 이에 문구업계는 ‘초등학교 학용품’만 한정해,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동반위에 신청했다. 생계형적합업종은 중기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업종 중 선정해 대기업·중견기업의 진출을 막아주는 제도다. 권고 사항인 중기적합업종과 달리 법적 규제가 따른다.

동반위는 현재 현장 실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동반위 추천과 중소벤처기업부 심의 논의 등 생계형적합업종 지정까지는 15개월 가량이 소요된다. 동반위 관계자는 “영세성과 안정적 보호 필요성, 산업 경쟁력 여부와 소비자 후생 등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네 문구점이 사라지는 건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장낙전 조합 이사장은 “문구소매점이 사라지면 비인기·다양한 학용품을 취급하는 문구점 물건을 구매할 수 없게 돼 장기적으로 학생들의 선택권이 줄고 대형매장 독점 시 가격 횡포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도 “다이소의 경우 원가 절감을 위해 OEM을 주고 동남아 등의 상품을 들여와 국내 문구 도·소매와 제조사 등의 생태계가 무너져 산업경쟁력 측면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며 “살아날 수 있는 골목상권은 자생할 수 있도록 보호막을 만들어 주는 게 사회적 비용을 더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조합은 지역문구점 인증제를 도입해 학습준비물 제도의 전자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부 등에 제도 개선을 요구할 예정이다. 이는 일부 지자체가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지역서점 인증제와 같은 제도다. 문구와 관련 없는 유령업체가 참여해 낙찰 받아 수수료를 챙기고 다른 곳에 하도급을 주는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다.

한편 다이소는 조합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다이소는 “매장을 늘리지 않겠다는 것은 상생안에 없었고 중기적합업종 기간 동안 단 한번도 묶음판매라는 상생안을 어기지 않은 사실은 동반위가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일산 마두역 논란에 대해선 “다이소 매장 6곳은 9년간 걸쳐 생긴 것으로, (문구점 폐점은) 인근에 있는 16개 대형문구전문점과의 과당경쟁 때문이지 다이소의 영향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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