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곳 중 699곳 농가서 161㏊ 피해
많은 강수량 등에 수정률 크게 떨어져
“보험 보상 받으려 해도 ‘약관 없다’ 되풀이만”
“50년 넘게 수박 농사를 지었는데 일조량 부족으로 피해를 본 건 처음이네유.”
충남 부여군 장암면 석동리에서 수박 하우스 14동(1동당 약 661㎡·200평)을 운영하는 성인호씨(67)는 하우스 안 수박 모종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년 같으면 지금 수확이 한창일 때지만 올해는 손을 놓은 채 속만 태우고 있다. 일조량 부족으로 지난해 12월 심은 모종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탓이다. 하우스 안 모종은 수확을 포기하고 지난 2월에 다시 심은 것들이다.
성씨는 “보험을 통해 보상을 받으려고 했지만 보험사에서는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농가 피해에 대한 보상 약관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지난해 물난리에 이어 올해 일조량 부족으로 잇단 자연재해가 덮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일조량 부족으로 전국 최대 수박 생산지인 부여 지역 농민들이 시름하고 있다. 자연재해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컸지만 보상받을 길이 없는 농민들은 이상기후에 따른 농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29일 부여군에 따르면 지역 수박 농가 1903곳 중 3분의 1이 넘는 699곳이 지난 겨울 일조량 부족으로 피해를 입었다. 전체 피해 면적은 161㏊(48만7025평)로 집계됐다.
이상기후로 인한 저온 환경 때문에 꽃가루가 나오지 않아 수정률이 크게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수박 수정 시기였던 올해 2월 중·하순 강수량은 평년과 비교해 5배 가량 증가한 반면 일조 시간은 평년(82시간)에 비해 79% 감소한 17시간에 불과했다.
수박 농사는 통상 매년 12월쯤 모종을 심어 이듬해 4월쯤 수확하고, 바로 다시 모종을 심어 6~7월쯤 수확하는 방식으로 이기작(1년에 같은 작물을 2번 재배하는 농법)을 한다. 하지만 올해는 상당수 수박 농가가 날씨 탓에 수확을 한 차례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됐다.
피해를 입은 건 부여 지역 농가뿐이 아니다. 경북에서도 올해 116㏊ 이상의 수박 재배 지역에서 일조량 부족 등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농가들 입장에서는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어 더 속이 타들어간다.
성씨는 “농작물 피해액만이 아니라 인건비와 하우스 운영을 위한 전기요금 등을 합하면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다”며 “이상기후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도 농민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부여군은 현재 피해 농가의 경영 안정을 위해 저리로 최대 5000만원을 대출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피해가 막대한 만큼 정부에 재난지역선포를 요청했지만 피해액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직접적으로 농민 피해를 보상해줄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조량 부족에 따른 농가 피해는 올 여름 수박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특히 주산지인 부여 지역 농가 피해는 가격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해 부여 지역의 수박 생산량은 총 8만1613t으로, 전국 생산량(42만4981t)의 20%를 차지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수박 1통 소매가는 2만5027원으로, 지난해의 2만1523원와 비교해 14% 비싸다. 평년 수박 가격은 1만9246원이다.
부여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부여와 경남 함안 등 주요 생산지에서 수박 농사가 잘 안돼 올해 출하 물량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며 “수확 시기도 가을로 늦춰져 예년에 비해 수박 무게는 30% 이상 줄고 품질도 떨어지겠지만 가격은 오히려 비싸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