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구피천' 가보니···한번 퍼올리면 수십마리 '바글'

2018.06.06 16:26 입력 2018.06.06 20:43 수정

지난 5일 오후 경기 이천시 부발읍 죽당천에서 열대어인 구피가 헤엄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지난 5일 오후 경기 이천시 부발읍 죽당천에서 열대어인 구피가 헤엄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경기 이천시 부발읍의 죽당천은 아파트단지와 논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는 작은 강이다. 부발역 부근에서 시작해 복하천에 합류하기까지, 7.8㎞ 길이에 불과한 이 하천이 최근 ‘미스터리’의 무대가 됐다. 비밀은 물풀들 사이에 숨어 있다. 눈길을 가만히 고정시키면 햇빛을 받아 화려한 빛깔을 뽐내는 작은 생명체가 보인다. 남미의 베네수엘라가 고향인 인기 관상어 ‘구피’다.

지난달 소셜미디어에서는 “사시사철 따뜻한 물에서 송사리 대신 구피가 헤엄치는 구피천”이 화제가 됐다. 열대어가 한국의 혹한을 이겨내고 자연 상태에서 대량으로 번식했다는 것이다. 열대어 동호인 사이에서 알음알음 전해지던 구피천의 유튜브 영상이 뜨자 시민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외래종인 구피가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 한번 뜨니 수십마리가 잡혔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 전문가들이 지난 5일 죽당천 일대 생태 조사에 나섰다. 이 지역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게 다 뭔 소리인가 싶었어요. 디즈니 만화동산에 나오는 구피인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까 사무실 어항에서 헤엄치는 구피가 보이더라구요. 어쩌다 얘가 거기까지 갔는지. 황당했죠.”

기자의 첫 문의전화를 받았던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이나영 사무관의 말이다. 이날 조사팀은 죽당천 상류 대상삼거리 주변에서 복하천과 만나는 하류까지 구피의 서식환경을 들여다봤다. 조사팀과 동행한 기자도 허리 위까지 올라오는 가슴장화를 입고 물에 들어섰다. 폭은 6~7m, 깊이는 발목에서 무릎 아래까지 올 정도로 얕은 편이다. 간간히 부유물만 떠내려갔고, 바닥의 모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맑았다. 팔을 담가봤다. 미지근했다. 수온 29.7도. 일반적인 시냇물 온도는 아니다.

죽당천에서 족대로 건진 구피가 팔딱인다. 권도현 기자

죽당천에서 족대로 건진 구피가 팔딱인다. 권도현 기자

국립생태원 연구원들이 0.1㎜ 간격의 촘촘한 망을 끼운 족대를 들고 물가 주변 수초 쪽으로 걸어갔다. 손으로 힘껏 물을 저은 뒤 족대를 들어올리자 망 위에서 손톱만한 물고기 40~50마리가 팔딱팔딱 뛰었다. 어항에서 보던 그 구피였다. 구피를 키우는 이들은 흔히 ‘고정구피’ ‘막구피’ 식으로 물고기를 구분한다. 품종별로 특징을 보여주는 ‘순종’이 고정구피라면, 여러 품종이 섞인 것을 막구피 또는 믹스구피라 부른다. 죽당천에 사는 것들은 흔히 막구피라 부르는 놈들이다. 주황색, 무지개색으로 몸통과 지느러미가 화려한 놈이 수컷, 밋밋한 은색이 암컷이다.

수컷은 3㎝, 암컷은 최대 6㎝다. 다 자라는데 수컷은 8주, 암컷은 10~20주 걸린다. 한 번에 최대 150마리까지, 한 달에 한 번 꼴로 새끼를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좋아서 1년에 3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품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야생에선 2년 정도 산다. 구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데 모래알처럼 보였던 물밑 회색 점들이 꿈틀댔다. 구피 치어라고 했다.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실 김수환 연구원은 “지금 한 번 건졌는데 수십마리가 잡혔다”면서 “좁은 지역에서 엄청난 밀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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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천의 유명세 덕분인지 지나가며 구경하거나 직접 뜰채를 들고 나선 시민들도 종종 보였다. 경기 구리시에서 죽당천까지 친구와 함께 찾아온 전자은씨(29)는 플라스틱 커피컵에 구피를 한껏 담으면서 “신기하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전씨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왔는데 눈으로 확인하니 놀랍다”면서 “집에서 키우는 구피 어항에 함께 넣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이 쏘가리같은 다른 물고기의 먹이로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겨울나기’ 성공한 열대어

구피의 첫인상은 ‘애처로움’이었다. 거센 물살 속에 수초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렇게 작고 예쁜 구피들이 생태계를 망칠 수 있을까. 엄밀히 따지면 구피는 외래종이지만 ‘생태계 교란종’은 아니다. 생물다양성법에 따르면 외래종의 경우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생물”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위해성평가를 해 ‘교란종’으로 지정한다. 대표적인 어종이 ‘생태계의 무법자’로 한국에 정착한 배스나 블루길 따위다.

죽당천에서 잡은 구피가 커피컵에 담겨있다. 권도현 기자

죽당천에서 잡은 구피가 커피컵에 담겨있다. 권도현 기자

2015년에는 강원 횡성군의 한 저수지에서 아마존강의 ‘식인 물고기’로 유명한 피라니아가 발견됐다. 같은 저수지에서 피라니아의 사촌 뻘인 레드파쿠도 잡혔다. 누군가 관상용으로 키우다 내다 버린 것으로 추정됐다. 열대어인 탓에 월동이 힘들 것으로 분석됐지만, 장마철에 주변 하천으로 흘러갈 수 있어 논란이 됐다. 결국 저수지 물을 모두 빼서 포획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됐다.

열대어를 키우는 사람들이 물고기를 연못이나 강에 풀어놓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김수환 연구원은 “지난해 대구에서 생태조사를 하다가 구피 300여마리가 뭉쳐 다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겨울에 다시 가보니 모조리 죽었더라”고 했다. 죽당천 구피가 놀라운 점은 ‘겨울나기’를 했다는 점이다. 주변 주민들과 열대어 동호인들 말에 따르면, 구피가 이곳에 산 지는 이미 몇 년이 됐다. 보통 구피는 24~27도의 물에 산다. 겨울철 한국의 강물은 2~4도로 온도가 떨어진다.

지난달 14일 경향신문이 구피천에 대해 보도하자 환경부는 이튿날부터 곧바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구피가 추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죽당천 상류 가까이에 있는 SK하이닉스 공장 단지 덕분이었던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졌다. 공장에서 흘러나온 냉각수가 죽당천에 대량 유입돼 한겨울에도 수온이 높게 유지됐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열병합발전소가 있었다고 했다. 물풀이 우거져 구피가 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구피가 흘러들어온 경로는 오리무중이다. 개체수가 워낙 많은 것으로 봐서, 개인의 방사보다는 주변 수족관에서 유출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인근 SK하이닉스단지에서 나오는 냉각수가 죽당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인근 SK하이닉스단지에서 나오는 냉각수가 죽당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권도현 기자

■ 개체 수 어떻게 유지될까…남은 ‘미스터리’

환경부는 구피가 특별히 환경에 위해를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른 토종 물고기들보다 ‘약체’이기 때문이다. 조사단이 미리 설치해둔 통발에서 확인한 어종은 붕어, 미꾸리, 미꾸라지 등이다. 작고 약한 구피는 감히 이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돌에 붙은 조류를 먹고 살기 때문에 다른 어종과 먹이경쟁을 하지도 않는다.

번식력이 좋고 세대 전환이 빠르다 해도, 구피가 한국의 환경에 적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천천히 수온을 낮춰가며 구피의 서식한계를 살펴본 독일의 연구결과가 있다. 12도까지 버텼다고 한다. 원산지인 베네수엘라에서도 15도 이하에선 살지 못했다고 했다. 아무리 적응력이 좋아도 한국 겨울을 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인 셈이다.

실제 복하천 쪽 하류로 내려와보니 생태계 교란 우려는 미뤄놔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강까지 흘러가는 복하천은 폭도 넓고, 빛깔도 녹색으로 죽당천과 확연히 구분됐다. 발을 내딛자 휘청할 정도로 수심이 급하게 깊어졌다. 팔을 담가보니 바로 찬기운이 느껴졌다. 수풀을 휘저어도 구피는 보이지 않았다. 구피가 사는 곳은 복하천과 만나는 곳에서 200~300m 올라간 지점까지였다. 게다가 합류점 근처엔 구피를 잡아먹을 수 있는 얼룩동사리와 동자개도 산다. 구피가 감히 죽당천 너머로 진출할 수는 없는 셈이다.

[배문규의 에코와치]미스터리 '구피천' 가보니···한번 퍼올리면 수십마리 '바글'

의문은 남는다. 번식력 좋은 구피의 숫자는 죽당천에서 어떻게 일정 수준으로 유지될까. 조사팀의 지난 점검에서 죽당천의 다른 물고기들이 구피를 먹이로 인식하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구피를 잡아가는 걸까. 혹한 때문에 일정 수는 해마다 죽는 걸까. 환경부는 올 겨울까지 계속 모니터링을 해 죽당천 ‘구피 미스터리’를 풀기로 했다.

현장을 떠나는 길에 이천 SK하이닉스의 방류구를 들렀다. 옥상에 커다란 탱크와 파이프를 이고 있는 공장 단지는 규모가 엄청났다. 벽면에 쓰인 ‘수증기 주의’라는 거대한 글씨에 눈이 머물렀다. 지름 1m는 됨직한 하수관에서 방류수가 쏟아졌다. 공장을 돌리기 위해 만든 시설에서 물이 나오고 베네수엘라 출신 열대어가 냇물에 살게 됐다니, 이 또한 ‘나비효과’다. 이나영 사무관은 “아무리 작은 구피 같은 생물이더라도 외래종을 함부로 풀어주면 어떤 결과를 부를지 모른다”면서 “시민들이 외래종이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을 몰라 방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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