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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은 산업계 쌈짓돈?…상위 10개기업 3000억원 챙겼다

2023.10.09 11:34 입력 2023.10.09 14:08 수정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상위 10개 기업

무상 배출권 판매해 3000억원 수익 내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경향신문DB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경향신문DB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유도하기 위해 설계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2년간 상위 10개 기업이 3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환경부가 기업에게 공짜로 부여하는 ‘무상 배출권’을 줄이고, 배출 허용 총량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기업별 탄소배출권 할당량과 실제 배출량 등을 8일 기후단체 플랜1.5와 경향신문이 함께 분석한 결과, 2021~2022년 2년간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배출권을 판매한 상위 10개 기업이 총 3021억원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2년간 각 기업이 받은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량에서 기업들이 배출한 온실가스와 다음 해로 이월한 배출권을 제외한 부분을 ‘판매량’으로 산정했다. 기업들의 이익 추정액은 판매량에 2021~2022년 평균 배출권 금액인 2만3000원을 곱한 값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해, 할당 범위보다 더 많이 감축한 기업에는 배출권을 판매하는 경제적 유인을 주면서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는 제도다. 환경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를 ‘제3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계획 기간’으로 정하고 무상할당 비율을 90%, 유상할당 비율을 10%로 정하고 있다. 남은 배출권은 다음 해로 이월할 수 있다.

배출권 판매량이 많은 상위 10개 기업은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에 포함돼 있다. 모두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하는 기업들이다. 지난해 산업부문의 잠정 온실가스 배출량 2억1390만t 가운데 철강산업은 9300만t, 석유화학·정유 산업은 6820만t, 시멘트 산업은 3430만t을 차지했다.

배출권 판매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쌍용씨앤이(508억원)는 시멘트 제조사다. 제철 산업의 포스코·현대제철과도 각각 473억원, 316억원의 배출권 판매 수익을 올렸다.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엘지화학, 지에스칼텍스도 각각 208억원, 192억원을 챙겼다. 시멘트 산업의 삼표시멘트(274억원), 성신양회(172억원)도 배출권 수입 상위 10개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환경부가 온실가스 배출권 대부분을 무상으로 할당하면서 배출권 거래제가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작용한 측면이 큰 셈이다.

하지만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태부족한 실정이다. 2015~2019년 동안 할당 대상 기업들이 환경부에 인정받은 ‘감축 실적’은 560만t에 불과했다. 연도별 배출권 할당량과 기업이 환경부에 인증받은 온실가스 감축 실적 총량을 비교해보면, 2015년~2019년 각각 0.05%, 0.19%, 0.21%, 0.23%, 0.28%에 불과했다. 할당받은 배출권에 비해 연도별 감축 실적은 0.5%도 되지 않았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배출권거래법)을 보면, 환경부는 할당 대상 업체가 배출권을 할당받기 전에 설비 투자 등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량을 인정 받을 경우 배출권을 추가로 할당할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투자한 내용을 보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시봉(김시현)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가 지난 12일 강원 삼척의 포스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사다리에 올라가 농성을 하는 방식의 직접행동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시봉(김시현)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가 지난 12일 강원 삼척의 포스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사다리에 올라가 농성을 하는 방식의 직접행동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삼성, ‘추가 감축 여력 있다’고 지적됐지만…불소계 온실가스 사용 상위 5개 기업 중 감축률 꼴찌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제1차 탄소 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은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플랜1.5 등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특히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에서 불소 계열 온실가스를 줄여 390만~590만CO2eq(탄소환산톤)을 추가 감축할 여력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불소계 온실가스 사용량 기준 배출량 상위 5개 기업은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LG전자 순이다.

이들 중 삼성전자의 불소 계열 온실가스 저감율은 76.3%로 5개 기업 중 ‘꼴찌’였다. 2021년에 비해 5.2%포인트 증가하긴 했지만, 주요 기업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에 비해 삼성 디스플레이, LG 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LG전자의 불소 계열 온실가스 저감율은 각각 97.7%, 92.2%, 97.4%, 94.8%에 달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온실가스 저감률을 95% 수준으로 높인다면 약 260만tCO2eq의 온실가스를 덜 배출할 수 있었다. 권경락 플랜1.5 활동가는 “다른 기업들은 비용이 들더라도 처리 효율이 99%인 온실가스 감축 설비를 도입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도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 배출권 가격…“할당량 줄이고, 유상할당 늘려야”

배출권시장 정보 플랫폼을 보면 최근 국내 배출권 가격은 지난 7월 21일 7800원을 기록하고, 3일 뒤에는 702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세계은행이 지난 5월 발간한 ‘탄소 가격의 현황과 동향 2023’ 보고서를 보면 한국 배출권 거래제의 가격 수준은 세계 주요국·지역(유럽연합, 뉴질랜드,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의 탄소세, 배출권거래제의 탄소 가격보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t당 약 84유로(약 11만9956원) 수준이다.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전 부문에서 55%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을 목표로 한다. 배출권 거래제 대상 산업계에는 2030년까지 배출량을 62%까지 줄이도록 하는 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한다. 배출권 총량은 2021년부터 연평균 4.2% 감소시킨다.

세계은행이 지난 5월 발간한 ‘탄소가격의 현황과 동향 2023’ 보고서를 보면 한국 배출권 거래제의 가격 수준은 세계 주요국·지역(유럽연합, 뉴질랜드,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의 탄소세, 배출권거래제의 탄소가격 수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보고서 갈무리

세계은행이 지난 5월 발간한 ‘탄소가격의 현황과 동향 2023’ 보고서를 보면 한국 배출권 거래제의 가격 수준은 세계 주요국·지역(유럽연합, 뉴질랜드,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의 탄소세, 배출권거래제의 탄소가격 수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보고서 갈무리

플랜1.5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허용 총량’을 너무 높게 설정했다고 봤다. 플랜1.5에 따르면 산업부문의 2015년에서 2021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은 21억 5000만t이다. 그러나 배출권은 22억t 수준으로 더 많게 책정됐다.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겠다는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 활동가는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경기가 침체한 와중에도 2021~2025년 배출허용 총량을 전기 대비 3.2% 상향하면서 배출권 과잉 할당으로 인한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다”라고 지적했다.

‘유상할당’이 너무 적은 것도 문제다. 플랜1.5에 따르면 명목상 제3차 배출권거래제 계획 기간 동안 할당 대상 업체의 유상할당 비율은 10%지만, ‘예외’에 해당하는 범위가 과도해 실제 유상할당 비율은 4.38%에 불과하다.

우원식 의원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배출권거래제가 환경부의 안이한 배출허용 총량 규제로 인해 오히려 탄소배출 공룡 기업들의 배를 불려주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라며 “제도 본연의 취지를 위해서라도 환경부는 의지를 가지고 기업에 대한 할당량을 조정하고 유상할당 비율을 대폭 높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 더 알아보려면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하면, 기후위기가 심화됩니다. 재난이 빈발하고, 이로 인한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한국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생긴 ‘사회적 비용’은 얼마로 추산되고, 이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대상들에게 ‘탄소 가격’으로 반영하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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