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속철(KTX)이 사고 발생의 위험을 안은 채 질주하고 있다. 고속철도가 개통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일부 구간에서 선로가 휘어지는 뒤틀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또 터널이 전용선에만 44곳이 있는데도 화재 대피 시설이 거의 없으며 선로보호 및 안전운행을 위한 울타리 등도 매우 허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옛 철도청)는 안전기준을 국제 수준보다 크게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경향신문 취재팀이 일본의 쾌속철 사고를 계기로 고속철도 시설 및 운행의 안전실태를 점검한 결과 18일 밝혀졌다.
철도공사는 KTX를 프랑스로부터 도입했으면서도 운행에 따른 안전규정은 프랑스 테제베보다 대폭 완화했다.
공사는 2003년 12월 ‘고속철도 운전 관계 규정집’을 만들면서 시범운행 때 적용한 ‘모터블록(전력변환장치) 고장 발생 때는 즉시 정차’ 조항을 뺐다. 테제베 규정에는 ‘모터블록에 장애·고장이 발생하면 가장 가까운 역에 정차시킨 뒤 점검·수리’하게 돼 있다. 하지만 공사는 종착역까지 그대로 운행한 뒤 검사토록 했다.
또 고속철도 개통 뒤 규정집을 3차례 고치면서 열차 이상 때의 속도제한 규정을 느슨하게 했다.
처음엔 규정집 제38조 ‘차체진동에 의한 속도제한’에서 열차 승차감을 저해하는 진동이 발생하면 시속을 220㎞로 낮추도록 했다. 하지만 올해 1월엔 시속 230㎞로, 4월엔 시속 270㎞로 제한속도를 높였다. 당초의 테제베 규정보다 제한속도가 50㎞나 더 높아졌다.
개통 초기에 당초 규정대로 운행하면서 잦은 정차와 감속으로 운행이 지연돼 승객의 불만이 높아지자 규정을 대폭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말이나 명절 등 여행 성수기에는 이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게 기관사들의 증언이다.
기관사 ㄱ씨는 “지난해 추석 때 충북 영동 인근 상행선에서 신호시스템 다운으로 신호기를 못 읽는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규정대로라면 시속 30㎞로 운행해야 하지만 특별수송기간이라며 시속 170㎞로 운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속도통제장치가 고장나 컴퓨터가 과속 여부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운전사령부의 ‘속도통제장치를 끊고 운행하라’는 명령에 따라 그대로 운행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공사의 왕연대 고속운전부장은 “매뉴얼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고쳤으며 프랑스측 기술진의 검토와 승인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