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2018.06.08 14:36 입력 2018.06.08 21:55 수정 글·사진 정지윤 기자

해질 무렵에 도착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주택가 골목. 정환출씨(86)의 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축구장 3.5배 크기의 아파트 공사 현장 한 가운데에 집 한 채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수령 150년이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하늘 높이 자라 밖에서는 집이 잘 보이지 않았다. 대문을 열고 문간채를 지나서야 ㄷ자형 개량 한옥의 본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원에는 금목서, 태산목, 감나무, 단풍나무, 석류나무 등 50여 그루의 나무가 제각각 자라고 있었다. 이집에는 구순을 바라보는 정씨 내외와 아들 부부 그리고 고3 손녀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손자 이렇게 3대 여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이집은 그들이 5대째 일궈온 삶의 터전이었다. 정씨의 아들 철기씨(49)에게서 이 집이 아파트 공사장 한가운데 홀로 섬처럼 남게 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달 30일 드론으로 촬영한 LH의 광주광역시 화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모습.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한 정환출씨의 고택이 공사 현장 가운데 섬처럼 남아 있다./정지윤기자

지난달 30일 드론으로 촬영한 LH의 광주광역시 화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모습.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한 정환출씨의 고택이 공사 현장 가운데 섬처럼 남아 있다./정지윤기자

지난달 30일 드론으로 촬영한 LH가 시행중인 광주 화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모습.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한 정씨의 고택이 공사 현장 가운데 섬처럼 남아 있다. 500년 된 마을이 정씨의 집을 제외하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정지윤기자

지난달 30일 드론으로 촬영한 LH가 시행중인 광주 화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모습.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한 정씨의 고택이 공사 현장 가운데 섬처럼 남아 있다. 500년 된 마을이 정씨의 집을 제외하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정지윤기자

LH의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4월 드론으로 촬영한 광주 화정2구역 하동 정씨 세거지 모습.50여 가구가 살고 있던 마을은 주변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도심 속 전통 마을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정철기씨 제공>

LH의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4월 드론으로 촬영한 광주 화정2구역 하동 정씨 세거지 모습.50여 가구가 살고 있던 마을은 주변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도심 속 전통 마을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정철기씨 제공>

사건의 발단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화정동 120번지 일대 화정2구역은 광주 서구의 유서 깊은 주거지역이었다. 하동 정씨 문중(추선문회) 500년 세거지로 최근까지도 도심 속 전통 마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주민들이 몇 대에 걸쳐 혹은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2007년 서구청이 노후주택 밀집 등을 이유로 이 지역을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한 것이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도시저소득주민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정비기반시설이 극히 열악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이 과도하게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과거 무허가 판자촌 등을 정리하기 위한 임시조치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흔히 달동네 등에서 맹위를 떨쳤던 사업이다. 국가가 지정하고 강제수용을 전제로 한다. 이 지역은 누가 보아도 해당지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주민 일부는 소방도로를 개설하는 것으로 또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정도로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1973년 최초 계획된 소방도로가 30년 넘게 개설되지 않아 민원이 발생하고 있었다. 사업시행자로 지정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당시 주택공사)는 이곳에 임대아파트를 짓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LH는 부동산 경기침체와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10년 가까이 사업을 방치했다. 서구청은 시행사인 LH에게 기한을 연장해 주고 23억이 넘는 예산까지 안겨주었지만 LH는 사업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재산권 침해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 몫이 되었다. 매매는 실종되고 주택을 새로 짓는 것은 물론 제대로 보수조차 할 수 없었다. 그사이 고령인 분들은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한 정환출씨의 고택이 공사 현장 가운데 섬처럼 남아 있다./정지윤기자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한 정환출씨의 고택이 공사 현장 가운데 섬처럼 남아 있다./정지윤기자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한 정환출씨의 고택이 공사 현장 가운데 섬처럼 남아 있다./정지윤기자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한 정환출씨의 고택이 공사 현장 가운데 섬처럼 남아 있다./정지윤기자

강제철거 되고 있는 화정2구역 <정철기씨 제공>

강제철거 되고 있는 화정2구역 <정철기씨 제공>

정환출씨의 한옥 담장에 강제 철거 중단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정지윤기자

정환출씨의 한옥 담장에 강제 철거 중단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정지윤기자

정환출씨 가족과 친지들이 지난달 23일 고택에서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모친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정철기씨 제공>

정환출씨 가족과 친지들이 지난달 23일 고택에서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모친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정철기씨 제공>

2013년 LH는 수익성을 이유로 국민임대주택 건설 계획을 공공분양 아파트 건설 계획으로 변경했고 서구청은 이를 인가했다. 이때는 주민동의절차조차 없었다. 2016년 LH는 감정평가를 근거로 어처구니없는 보상가를 제시하며 주민들에게 협의를 요구했다. 시세의 1/2, 1/3에도 미치지 못한 금액이었다. 주민들은 그때서야 자신들에게는 이를 거부할 권한이 없는 강제수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서구청과 LH에 결렬하게 항의했다. “주민들 땅 헐값에 빼앗아 아파트 짓는 것이 주거환경개선이냐” “LH의 수익이 공익이냐”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박근혜가 와도 안 된다”는 공무원의 폭언뿐이었다. 주민들이 땅과 집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소송 밖에 없었다. 정보공개요청을 통해 이 사업의 부당성과 절차적 문제를 확인하고 특히 이 사업에서 유일한 주민동의 절차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이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LH가 주민들의 땅을 강제 수용할 수 있는 근거는 12년 전에 받은 동의서가 전부였다. 당시 인감증명도 필요 없고 아무나 대필해도 되는 동의서였다. 심지어 사업 내용도 보상 조건도 없었다. 단지 LH를 사업자로 지정한다는 내용뿐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아무도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철기씨는 이에 대한 당시 서구청 담당공무원의 답변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왜 우리가 그런 것까지 주민들에게 설명해야 합니까?” 그는 또한 언젠가 들었던 개발업자의 말이 교차된다고 했다. “인감증명을 첨부하라고 하고 강제 수용이라고 하면 누가 동의서를 써 주겠습니까?” 철기씨는 “합법적인 사기였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확인한 바로는 대필, 위조, 사망자까지 제대로 된 동의서가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민간은 이겨도 LH는 절대 못 이긴다” “소송에 참여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루머가 마을을 떠돌았다. 몇몇 주민들은 소송에서 빠지고 숨죽였다. 주민들은 승소를 확신했다. 누가 봐도 부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행정청과 LH의 손을 들어줬다. 루머는 현실이었다.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정환출씨가 집 앞 대문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고 있다./정지윤기자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정환출씨가 집 앞 대문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고 있다./정지윤기자

10년 넘게 집을 수리하지 못해 정환출씨댁 문간채 빗물받이에 잡초가 자라고 있다./정지윤기자

10년 넘게 집을 수리하지 못해 정환출씨댁 문간채 빗물받이에 잡초가 자라고 있다./정지윤기자

정철기씨가 외출을 하기 위해 공사장 안에 있는 집 대문을 나서고 있다./정지윤기자

정철기씨가 외출을 하기 위해 공사장 안에 있는 집 대문을 나서고 있다./정지윤기자

1심 판결 이후 주민들은 항소했지만 강제 수용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킨 것이다. ‘사업지연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한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LH의 논리와 ‘사업 인가 무효확인 항소심 선고까지 시간을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맞섰다. 결국 주민들이 하나 둘 떠났다. 집도 하나 둘 철거됐다. 1심 패소의 좌절감은 컸다. LH는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에게 명도 소송을 제기하고 철거 업체를 투입했다. 법원의 강제 집행도 시작되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쳐 살림살이를 빼내고 열쇠를 바꿔 집주인의 출입을 막았다. 모든 게 합법이었다. 끝까지 저항한 주민들은 가족들까지 손해 배상 등의 협박에 시달렸다. 배수관을 잠그고 수도꼭지만 훔쳐가는 도둑이 들고, 전기와 수도까지 끊었다. 수백 년 된 나무들이 파헤쳐져 절단되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정씨의 집 담장을 허물었다. 절차상 불법이었지만 실수라고 했다. 패소의 억울함보다 합법과 불법 사이의 공포가 마을을 지배했다. 지난달 5월 8일 철거에 항의하던 주민이 경찰에 연행되고 마지막까지 서 있던 두 채의 건물 중 하나가 철거되었다. 이렇게 500년 된 마을은 정씨의 집 한 채를 제외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씨의 집 담장 밖은 붉은 맨 살을 드러낸 채 금세 공사장으로 변했다. 대형 트럭이 하루에도 수 없이 오가는 출입구가 정씨 가족이 밖을 오가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정씨의 손녀와 손자는 굉음을 내며 땅을 파내는 굴삭기 옆을 위태롭게 지나며 학교를 다녀야했다.

수령 150년 넘은 은행나무 2그루와 금목서, 태산목, 감나무 등 50여 그루의 나무가 정환출씨 정원에 제각각 자라고 있다./정지윤기자

수령 150년 넘은 은행나무 2그루와 금목서, 태산목, 감나무 등 50여 그루의 나무가 정환출씨 정원에 제각각 자라고 있다./정지윤기자

항소심 선고 당일인 지난달 31일 정환출씨의 집  담장 옆에서 아파트 기초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정지윤기자

항소심 선고 당일인 지난달 31일 정환출씨의 집 담장 옆에서 아파트 기초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정지윤기자

소송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이 항소심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마을에 마지막 남은 정환출씨의 고택에서 항소심과 관련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정지윤기자

소송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이 항소심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마을에 마지막 남은 정환출씨의 고택에서 항소심과 관련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정지윤기자

지난달 30일 정환출씨의 한옥 정원에 손자 희종군이 가지고 놀던 축구공이 놓여 있다./정지윤기자

지난달 30일 정환출씨의 한옥 정원에 손자 희종군이 가지고 놀던 축구공이 놓여 있다./정지윤기자

정씨의 아들 철기씨는 연로한 부모와 아이들만이라도 이주시키려 했으나 가족들은 완강히 반대했다. 어머니 이부님씨(87)는 “왜 내 집에서 내가 사는 것이 불법인지” 그리고 “국민들을 위한다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왜 이런 사업이 진행되는지” 물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의 역사였다. 이 땅에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최소한의 권리이며 자존심이었다. 철기씨는 운영하던 출판사를 접고 LH가 제기한 모든 소송에 대응했다. 올해에만 재판정에 10여 차례 출석했다. 생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120번지에서 5대째 살고 있는 정환출씨의 3대 여섯 식구가 한옥집 대청마루에 모여 앉았다. 왼쪽부터 손자 희종, 손녀 희람, 아들 철기씨, 며느리 박선욱씨, 아내 이부임씨, 정환출씨. 정씨 가족은 주거환경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개발사업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고택을 잃을 뻔 했다. 하지만 묵묵하게 버티며 소송을 통해 삶의 터전을 지켜냈다./정지윤기자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120번지에서 5대째 살고 있는 정환출씨의 3대 여섯 식구가 한옥집 대청마루에 모여 앉았다. 왼쪽부터 손자 희종, 손녀 희람, 아들 철기씨, 며느리 박선욱씨, 아내 이부임씨, 정환출씨. 정씨 가족은 주거환경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개발사업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고택을 잃을 뻔 했다. 하지만 묵묵하게 버티며 소송을 통해 삶의 터전을 지켜냈다./정지윤기자

정환출씨의 3대 여섯 식구가 한옥집 대청마루에 모여 앉았다. 왼쪽부터 아들 철기씨, 며느리 박선욱씨, 아내 이부임씨, 정환출씨, 손자 희종, 손녀 희람./정지윤기자

정환출씨의 3대 여섯 식구가 한옥집 대청마루에 모여 앉았다. 왼쪽부터 아들 철기씨, 며느리 박선욱씨, 아내 이부임씨, 정환출씨, 손자 희종, 손녀 희람./정지윤기자

포클레인과 불도저는 끝내 정씨 집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광주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서구청의 LH에 대한 화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 사업시행자 지정처분과 사업시행계획 인가처분이 적법한 주민동의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3년에 걸친 긴 법정 다툼이 일단락되었다. 정씨는 법원을 나서며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산권과 주거의 자유가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가면을 쓴 개발의 논리에 더 이상 짓밟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LH의 화정2구역 아파트 건설 공사는 중단되었다. 현재 일부 대도시에서 주거환경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주민들의 재산권을 박탈한 채 삶의 터전에서 내몰고 있는 공공사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헌법 제16조는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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