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2018.05.26 06:00 강윤중 기자

‘무지개집’ 입주자들이 지난 20일 밤 3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곳에는 13명의 입주자와 5마리의 반려묘가 함께 살고 있다. 일부 입주자와 고양이들은 촬영에 참석하지 못했다. /강윤중 기자

‘무지개집’ 입주자들이 지난 20일 밤 3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곳에는 13명의 입주자와 5마리의 반려묘가 함께 살고 있다. 일부 입주자와 고양이들은 촬영에 참석하지 못했다. /강윤중 기자

지난 20일 ‘무지개집’ 입주자들이 1층 공동공간에 둘러앉았다. 전날 이사 온 입주자가 공용주방에 내놓은 독일제 주방용품과 방대한 1인 살림살이로 얘기는 시작됐다. 입주하게 된 사연들, 간밤의 꿈, 사랑과 이별, 선거와 투표, 집 보수공사 등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한때 유기묘였던 반려묘 ‘온돌이(‘굴러온 돌’을 줄임)’가 옆에서 나른한 하품을 해대는 동안 시끌벅적 수다와 웃음 속에 밤이 깊어갔다.

서울 망원동에 자리 잡은 ‘무지개집’은 성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다. 이 주거 기획에 참여한 전재우씨는 2011년부터 성소수자들의 공동체와 공간 그리고 주거 문제를 고민했다. “기존 집의 기능이 성소수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꿈꿀 수 있는 집이 필요했어요.”

서울 망원동에 자리잡은 ‘무지개집’ 전경. ‘주거문제는 공동이 해결하자’는 함께주택협동조합과 조합원인 입주자들이 힘을 모아 지은 집이다.  /강윤중 기자

서울 망원동에 자리잡은 ‘무지개집’ 전경. ‘주거문제는 공동이 해결하자’는 함께주택협동조합과 조합원인 입주자들이 힘을 모아 지은 집이다. /강윤중 기자

‘무지개집’은 ‘함께주택 2호’다. /강윤중 기자

‘무지개집’은 ‘함께주택 2호’다. /강윤중 기자

전·월셋집과 고시원을 전전하던 이들이 전·월세금을 빼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전전긍긍하다 ‘주거문제를 공동이 해결하자’는 가치를 내세우는 ‘함께주택협동조합’을 만났다. 모두 조합에 가입하고 입주자격을 얻었다. 조합의 도움으로 사회투자기금 융자를 얻고, 부지를 찾아 집을 올렸다. 2016년 “안전한 곳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재밌게 살아보자”며 입주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 실험은 이제 만 2년을 넘어섰다.

현재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등의 성적 지향을 가진 13명의 사람들과 5마리의 반려묘가 함께 살고 있다. 전문직, 정당인, 예술가, 활동가, 취업준비생 등 직업도 다양하다. 나이는 20대에서 40대 후반까지. ‘생물학적’ 남녀 성비도 고려됐다. 지난 주말에는 성소수자가 아닌 비혼여성 영화인이 거주자 회의 끝에 ‘특례’로 입주했다. “잘 아는 분이라 모두 같이 살면 좋겠다고 하는데 비성소수자라 고민이었어요.” ‘킴(닉네임)’이 웃었다. 회의 결론은 이랬다. “비혼여성도 성소수자다!”

전재우씨(오른쪽)와 동거인 김철호씨가 반려묘 ‘구월이’ ‘첫눈이’를 안고 방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무지개집’의 기획에 참여했던 전씨는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공동체와 공간, 주거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전재우씨(오른쪽)와 동거인 김철호씨가 반려묘 ‘구월이’ ‘첫눈이’를 안고 방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무지개집’의 기획에 참여했던 전씨는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공동체와 공간, 주거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백팩’(닉네임)과 ‘킴’(닉네임) 커플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휴일 오후를 즐기고 있다. 백팩은 “이곳에서 2년 살며 안정감을 얻었고 개인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백팩’(닉네임)과 ‘킴’(닉네임) 커플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휴일 오후를 즐기고 있다. 백팩은 “이곳에서 2년 살며 안정감을 얻었고 개인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1인 가구로 구성된 2층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 오김현주씨가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입주 전 18년 동안 열 번이나 집을 옮겼다”는 그는 “가족은 아닌데 가족 같은 느낌이 참 좋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1인 가구로 구성된 2층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 오김현주씨가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입주 전 18년 동안 열 번이나 집을 옮겼다”는 그는 “가족은 아닌데 가족 같은 느낌이 참 좋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공동체와 공간을 깊이 고려한 ‘무지개집’은 구조가 복잡하다. 1층 ‘흥다방’은 회의, 파티, 바자회, 소규모 전시회 등을 여는 공용공간이다. 2층은 1인 가구들이 같이 쓰는 거실, 주방, 화장실과 5개의 작은 방이 미로처럼 배치됐다. 3층은 커플 가구와 위기에 처한 성소수자가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쉼터 ‘홍인재’가, 4·5층에는 2인 단독 세 가구와 공용세탁실이 있다. 누군가 집의 구조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아담하고 귀여우면서 답답하다.”

전재우씨가 4층 공용세탁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동안 반려묘 ‘온돌이’가 이를 바라보고 있다. ‘굴러온 돌’을 줄여 온돌이라 이름 붙였다. /강윤중 기자

전재우씨가 4층 공용세탁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동안 반려묘 ‘온돌이’가 이를 바라보고 있다. ‘굴러온 돌’을 줄여 온돌이라 이름 붙였다. /강윤중 기자

각기 다른 습관과 기대를 가진 이들이 어울려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집안 곳곳에 생활규칙과 청소당번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계단 및 공동청소와 쓰레기 수거, 외부인의 숙박, 세탁실과 공용공간 사용 등의 규칙을 세웠다. 그 외 필요사항은 입주자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썼다. 끝에 두 문장이 생활의 핵심이다. “시시때때 연중무휴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불편한 점이 발생할 경우에는 곧바로 소통한다. 각자 사생활을 존중하고 지켜준다.”

2층 1인 가구로 구성된 셰어하우스 공용거실에서 입주자들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2층 1인 가구로 구성된 셰어하우스 공용거실에서 입주자들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집 안 곳곳에 붙은 생활규칙. /강윤중 기자

집 안 곳곳에 붙은 생활규칙. /강윤중 기자

1층 공동공간 ‘흥다방’ 화장실. /강윤중 기자

1층 공동공간 ‘흥다방’ 화장실. /강윤중 기자

집 앞 화단. /강윤중 기자

집 앞 화단. /강윤중 기자

‘무지개집’ 사람들은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였다. 입주자들은 ‘성장’ ‘안정감’ ‘디딤돌’ ‘자양분’ ‘도전’ ‘꿈’ ‘기회’ ‘가족’ 같은 단어로 공동체의 삶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맏형인 전재우씨는 “시간이 지나, 이 집을 거쳐 간 친구들이 여기 살면서 얻은 것을 재산으로 멋지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공동체’가 무지개빛 꿈과 희망을 함께 일궈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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