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한국인 최초의 미슐랭 셰프 임정식

임정식 셰프가 지난 10일 ‘평화옥’에서 북의 평양냉면과 남의 매운 곰탕을 든 채 웃고 있다. 그는 “내년에 뉴욕 맨해튼에 북한음식 전문식당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임정식 셰프가 지난 10일 ‘평화옥’에서 북의 평양냉면과 남의 매운 곰탕을 든 채 웃고 있다. 그는 “내년에 뉴욕 맨해튼에 북한음식 전문식당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 후 열린 만찬의 꽃은 단연 ‘평양냉면’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류관에서 공수해온 냉면을 문재인 대통령과 먹는 장면이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전국은 ‘평양냉면 앓이’에 빠졌다. ‘평뽕’(평양냉면의 중독성을 빗댄 표현), ‘평부심’(평양냉면 자부심) 등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음식 하나로 남북이 이어지고 평화도 성큼 다가왔다.

이런 날이 올 줄 예견이라도 한 걸까. 올 1월부터 북의 평양냉면과 남의 곰탕 등 남북 음식을 세계인들이 오가는 인천공항의 ‘평화옥’에서 차려내는 셰프가 있다. ‘한국인 최초의 미슐랭 셰프’로 불리는 임정식 셰프(40)다. 미국의 요리학교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졸업 후 2009년과 2011년 서울과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정식당’(맨해튼 식당 간판은 ‘정식’)으로 각각 미슐랭 별 2개씩을 받은 실력파다. ‘뉴 코리안 퀴진(New Korean Cuisine)’을 내세우며 지난 10년간 새로운 스타일의 고급 퓨전 한식을 선보여온 그는 왜 갑자기 남북한 음식에 꽂혔을까. 지난 10일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평화옥’에서 임 셰프를 만났다. 쿡방·먹방시대에 스타 셰프들의 방송출연이 잦지만 그는 ‘은둔형 셰프’로 불릴 만큼 미디어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요즘 음식 트렌드는 ‘건강식’
간이 가벼운 북한 음식과 통해

남북 정상 평양냉면 회동에 감동
매장 이름처럼 ‘평화’ 현실로
평양서 옥류관 냉면 먹는 게 소원
음식 늘 변해, 정형화된 기준 없어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4층에 위치한 ‘평화옥’ 천장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조명이 설치돼 있다. 평화옥 제공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4층에 위치한 ‘평화옥’ 천장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조명이 설치돼 있다. 평화옥 제공

- 왜 남북한 음식인가요.

“어려서 함흥냉면을 먹곤 질긴 식감이 싫어 냉면을 안 먹었어요. 그러다 3년 전 우연히 평양냉면을 맛본 후 푹 빠졌죠. 2~3년간 전국 유명한 평양냉면집은 다 찾아다녔고, 직접 만들기를 반복했어요. 세계화가 가능하다 판단했죠. 작년 인천공항공사로부터 입점 제안을 받고 남북 요리로 승부를 걸자고 결심했어요. 더구나 공항은 세계인들이 드나드는 문이잖아요.”

- 평화옥에는 북한 메뉴로 어복쟁반도 있는데 북한 음식의 특징은 뭘까요.

“가벼우면서 간이 싱겁다고 할 정도로 심심한데, 그게 아주 매력적이에요. 세계적 트렌드가 건강식이잖아요. 세계인들에게 각광받을 거라 생각해요.”

- 개점 타이밍이 절묘했어요. 지난 4월 남북 정상이 평양냉면을 먹는 장면을 본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TV를 보면서 ‘이게 실화야?’ 했죠. 평화옥을 구상하면서 상상했던 일이 너무 빨리 실현된 거죠. 남북 평화를 염원하면서 매장 이름도 평화옥으로 짓고 이렇게 비둘기까지 달았으니까요.”

그가 손을 들어 가리킨 매장의 천장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모양의 조명이 가득했다. 객장 인테리어는 물론, 식기 하나까지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 평양냉면 집마다 메밀과 전분의 비율이나 육수·고명의 재료 등에서 차이가 나면서 어떤 게 진짜 평양냉면인가 하는 갑론을박이 있어요. 임 셰프가 생각하는 진짜 평양냉면은 어떤 것인가요.

“음식은 늘 변화해요. 정형화된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 요즘 옥류관의 평양냉면은 남쪽에서 맛보는 평양냉면처럼 면발이 툭툭 끊어지는 게 아니라 전분 함량의 차이로 좀 더 질기다고 해요. 통메밀을 사용해 면 색깔도 까맣고. 북한을 여러 번 다녀온 분들의 말씀으로는 옥류관 냉면 맛도 계속 바뀐다고 해요. 아마 3대 세습을 거치면서 지도자의 입맛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 옥류관 냉면을 맛본 적은 없나요.

“제 소원이에요. 평양 가서 옥류관 냉면 맛보는 게….”

그는 평화옥을 열기 전 1년간 20회 넘게 팝업식당(새로 개발한 메뉴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한정된 기간 동안 판매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열어 맛을 수정했다. 그의 또 다른 업장인 정식당 지하 2층에는 그의 비밀 요리연구실이 있다.

- 평화옥 말고 인천공항 면세구역에서 평화국수라는 작은 식당도 같이 열었죠. 두 곳의 평양냉면 맛은 스스로 몇 점이나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점수를 받기엔 아직 맛과 식감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요. 보통은 매장에 제면기를 설치해 면을 뽑는데, 저희는 맛을 시스템화하기 위해 외부 공장에서 면을 만들어와요. 메밀이 예민한 식재료라 날씨와 만드는 이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맛의 변화가 심하거든요. 지금은 최고의 맛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대중들, 경험 못한 문화에 갈증
코리안 바비큐처럼 인기 끌 것

- ‘정식당’은 기존 한식 재료를 임 셰프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재해석한 퓨전 음식들이 주를 이뤘어요. 평화옥 메뉴에도 그런 특성이 가미돼 있습니까.

“이전까지는 흔히 아는 전통음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면, 이번엔 확실한 전통한식을 하자는 생각이에요.”

- 내년에 맨해튼에 북한음식 전문점을 개장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 ‘뉴노스 코리안 퀴진(New North Korean Cuisine)’을 표방하면서 평양냉면을 비롯한 북한음식들을 판매할 겁니다. 8월 중 매장을 계약할 계획이에요.”

- 뉴욕에 북한음식 전문점이 없나요.

“1999년 소호에 문을 연 평양냉면집 ‘우래옥’ 등이 있었는데 2011년 모두 폐업했어요. 우래옥은 올 11월 다시 연다는 소문이 있어요.”

- 북한음식이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어요. 작년에는 미사일을 쏘아 도발했고, 트럼프는 트위터로 김정은 위원장과 맞불을 놓았잖아요. 올해는 북·미 정상회담으로 긍정적 관심으로 바뀌었고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에 대한 갈증이 커요.”

그는 수년 전부터 ‘코리안 바비큐’가 미국 LA 한인타운을 넘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보수적인 유럽 도시에서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류열풍’ 등으로 한국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한국음식을 향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임 셰프는 “외국인들은 여럿이 고기를 불에 직접 구워먹는 행위 자체를 재미있게 생각한다”며 “한국의 국물요리도 충분히 승산 있는데 고기구이에 가려 아직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청담동 ‘정식당’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정식’에서 맛볼 수 있는 명란비빔밥, 양갈비, 디저트 음식인 돌하르방(왼쪽부터). 정식당 제공

서울 청담동 ‘정식당’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정식’에서 맛볼 수 있는 명란비빔밥, 양갈비, 디저트 음식인 돌하르방(왼쪽부터). 정식당 제공

서양식 배웠지만 한식으로 승부
한국에 재료가 없다는 편견 깨고
고급진 것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의 이력이 궁금했다. 나이 서른다섯에 얻은 ‘한국인 최초의 미슐랭 셰프’라는 명예는 거저 주어진 게 아닐 것이다. 그는 2009년 서울에 ‘정식당’을 차린 후 2011년 맨해튼의 맛집동네 트라이베카에 위치한 고급 한식당 ‘정식(JUNGSIK)’으로 2013년 미슐랭 별 1개, 2014년 별 2개를 받았다. 한국의 정식당도 ‘미슐랭 가이드 서울편’이 처음 나온 2017년 별 1개에 이어 올해 별 2개를 받았다. 권위를 인정받는 ‘아시아 최고 레스토랑 50’에도 이 식당은 2014년 이후 매년 10~26위를 오르내리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는 어떻게 깐깐한 세계 미식가들의 오감을 만족시켰을까.

- 어떤 환경에서 나고 자랐나요.

“경기도 수원에서 성장했어요. 아버지는 퇴직 후 삼성전자 부품 제조사를 세워 운영 중이세요. 아버지 고향이 강원도 양양인데 할머니가 시장에서 국수와 막걸리를 파셨다고 해요. 외할아버지도 인천에서 음식장사를 하셨고요.”

- 요리사의 DNA가 있는 거네요. 원래 셰프가 꿈이었나요.

“아니에요.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대학에 다니다 해병대에 자원입대하면서 제 적성에 맞는 일을 우연히 만난 거예요. 해병대 2사단에서 복무했는데 장기휴가를 떠난 취사병 대신 일병인 제가 2주간 취사를 맡았던 게 인생의 변곡점이 됐어요.”

- 요리가 좋았나보군요.

“엄청나게요. 제가 상병 때 우리 부대는 강화도에서 배를 3~4번 갈아타야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외딴 작은 섬으로 이동해 복무했어요. 마을 주민이 6명밖에 없었고, 부대원도 14명뿐이었어요. 제가 취사병을 맡았죠. 비가 많이 오면 배를 못 띄워 부식을 못 받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1인당 부식비가 타 부대에 비해 10배나 많았어요. 매번 엄마한테 전화해 조리법을 물어 요리했는데, 주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할 만큼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가 갈 길이라고 직감했죠.”

- 아들이 요리사가 되겠다는 것을 부모님이 반기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제대 후 부모님께 제 속마음을 말씀드리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이런저런 음식점에서 알바를 했어요. 보다 못한 아버지가 사업체가 있는 미국 샌디에이고로 저를 보내 어학연수를 받게 하셨어요. 하지만 공부는 뒷전이었고 한국인 유학생들 밥 해주는 재미로 보냈어요. 이후 텍사스의 어학원으로 옮겨서도 그랬고요. 그러다 귀국해 복학했는데, 너무 재미없었어요. 안되겠다싶어 아버지께 요리를 업으로 삼겠다고 말씀드렸죠.”

- 반응이 어땠나요.

“의외로 기왕 하려면 일류가 되라고 하셨어요. 이후 얼마간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대학을 자퇴하고 2003년 CIA에 입학했어요. 그곳에서 칼 쥐는 법부터 다시 배웠죠. 너무 재미있었어요. 4~5개월간 인턴으로 실습을 나간 것도 유익했고요. 아쿠아빗이라는 이름의 스웨덴 식당에서 일했는데 셰프가 유명한 분이었거든요.”

이후 그는 1년간 뉴욕의 전설적인 식당으로 통하던 ‘블레이’ 등 3곳의 유명 식당에서 일했다. ‘블레이’에서는 이후 ‘셰프스 테이블 엣 브루클린 페어’라는 식당으로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셰프인 세자 라미레즈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리고 미슐랭 별점을 받은 식당을 찾아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으로 1년간의 미식여행을 떠났다.

- 미식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뭔가요.

“환상이 깨진 곳도 있지만 훌륭한 식당도 많았어요. 저도 미슐랭 별점을 받는 식당을 꼭 만들자고 생각했죠. 미슐랭은 단순히 맛으로만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경험을 따진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의 서비스, 인테리어, 식기, 음식 등 이 모든 것들의 만족도에 따라 별의 개수가 갈리거든요.”

- 정식당을 연 것은 2009년인데 그사이에는 뭘 했습니까.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다시 뉴욕으로 가서 2개월간 유명 식당을 돌면서 견습생활을 한 후 스페인으로 넘어갔어요. 프랑스와 접경지역에 있는 스페인 북부의 산세바스티안은 단위 면적당 미슐랭 별점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받은 미식의 도시거든요.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알켈라레에서 3개월 일한 후 다시 유럽으로 미식 여행을 갔어요. 미슐랭 식당에 취직했다가 또 미식여행을 떠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어요. 그런 후 귀국해 정식당을 연 거예요.”

- 배운 것은 서양요리인데, 왜 한식당을 차린 건가요.

“한국에 없던 한식 장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해외에서 공부한 선배들이 ‘한국엔 재료가 없다’ 등의 불평을 많이 했는데, 한국의 기존 재료로도 충분히 새로운 것, 고급스러운 걸 만들어내고 싶었죠.”

- 그래서인지 정식당 요리를 보면 개성이 넘치더라고요. 식전음식부터 디저트까지 하나하나가 식감도 좋지만 시각적으로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게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아요.

“우리의 전통적 식습관이나 문화를 제 나름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다시 만든 요리니까요. 파인다이닝을 가는 이유는 음식의 맛뿐 아니라 총체적인 경험을 즐기기 위해서예요. 오감 만족은 기본이죠.”

- 요즘 세계 음식계 트렌드는 뭔가요.

“일식이에요. 전 세계 셰프들이 도쿄로 미식 여행을 가는 꿈을 꾸며 일식을 숭배하죠. 일본 음식은 라멘, 스시, 야키도리, 돈가스, 가이세키 등 카테고리가 확실히 나뉘어 있어요. 서양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가면 일식의 뉘앙스라고 해야 할까, 터치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일식의 맛이나 질감, 아이디어 등이 모든 요리에 배어 있어요.”

색다른 스타일의 고급 퓨전 한식당 ‘정식당’과 대중식당인 ‘평화옥’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길은 명확하다. 한식의 세계화. 내년 뉴욕 맨해튼에서 선보일 ‘뉴노스 코리아’의 맛에 뉴욕의 미식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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